외할아버지(1)
저 제목은 제가 엄마에게 전해 들은, 어쩌면 할아버지가 직접 말씀하신 것을 몇 번 목격했을지도 모릅니다. 먼저 사연을 말해보자면 이렇습니다.
저의 외할아버지는 청소부 일을 하셨습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주위 사람들은 할아버지를 하대하며 막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도 한 성깔 하셔서 매일 화를 내고 맞대응을 하셨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시장에 가면 쓰레기 더미 주위에 그냥 가게 사장님들이 쓰레기를 마구잡이로 던져놓는다는 식으로 예의 없이 할아버지를 대했던 것이죠. 그러면 할아버지는 화를 내고 욕도 하시고 신경질을 엄청 부리다가 오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할아버지는 본인의 성격을 싹 바꾸시기 시작합니다. 할아버지 언어로 ‘간과 쓸개를 방 안에 걸어두고 신발을 신었다’라고 표현하셨습니다.
그러고 난 후에 같은 상황을 목격하더라도 할아버지는 허허~ 웃으시며
‘다음부터 거기다 놓지 말고 똑바로 세워서 좀 놔주세요’
라거나
‘그거 버리실 거면 여기다가 넣어 주시겠어요~?’라는 식의 쿠션 화법을 써 가며 말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시장 사람들은
“전에 오던 아저씨보다 훨 낫네~”
그러시며 커피도 한 잔 하고 가라며 손에 쥐어 주시기도 하고, 먼저 쓰레기를 잘 정리해 주신다거나 하는 식으로 할아버지께 예의를 차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말과 태도를 바꿨을 뿐인데, 단지 자신의 고집과 성질을 집에 두고 나왔을 뿐인데 사람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가 바뀐 것을 할아버지는 아셨을 것입니다.
한국전쟁 시기에 태어나셔서 국민학교가 최종학력인 우리 할아버지는 그런 인품을 어디서 배우셨을까요. 그 방법을 어떻게 아셨을까요. 알아도 실천하기 쉽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사과를 해야 하거나,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야 한다던가 등 자존심이 센 사람들은 쉽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할 때는 나라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가면을 쓰고 생활을 하면 본인에게 더 큰 이득이 온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외할아버지가 청소부였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적을까 말까 고민을 했었지만, 정작 할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고, 저 또한 외할아버지를 존경하기에 당당하게 적었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사회생활 하는 법과, 자신의 직업을 대하는 법.
먼저 밖에 나갈 때는 간과 쓸개를 방에 걸어놓고 나가라는 말은, 사람들을 대할 때는 자존심과 나의 본능은 다 내려놓고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본다면 호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미 자존심을 내려놓고 나갈 정도라면 자신의 가치관이 명확하기 때문에 호의에서 끝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존심은 어찌 보면 가장 쓸데없는 감정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뭐라도 되는 양 행동하다 보면, 사람들은 항상 나에게 맞춰주지는 않으면서 내 성에 안 차게 행동한다고 느낄 수 있죠. 그러다 보면 나의 기분 역시 하루 종일 망칠 수 있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기 전에, 그런 감정이 생길 만한 것들을 원천차단하면, 나의 기분과 다른 사람을 서로 대하는 태도 역시 긍정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더 나아가 여유까지 가질 수 있죠.
다음으로는 직업에 귀천은 없다 하더라도 자신이 가진 직업에 대해서는 프라이드를 갖는 것입니다. 자부심이죠.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에 열중하는 사람은 매력 있게 보입니다. 소위말해 본업 천재라고나 할까요. 자신이 맡은 일을 얼마나 성실하고 잘 수행하는지, 그리고 그 일에 애정이 얼마나 있는지를 보이는 것은 타인의 잣대가 아닌 나의 시선으로 나의 직업을 평가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불법적인 일이 아니라면, 어떤 일이든 당당하고 그 일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주위 사람들도 그 일을 존중하거나 그 일을 하는 나를 존중할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직업을 선택할 때는 ‘내가 잘하고 사랑할 수 있는 일을 하는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엄마의 말씀, 외할아버지의 말씀을 항상 떠올리고 세길 때마다 그땐 왜 그랬을까 후회가 되지만, 그 후회의 빈도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나아지고 있구나, 좋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구나를 느낍니다.
오늘도 좋은 어른에 한 발짝 더 가까워졌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