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바꿨던 '그' 여행. 그리고 강사가 되기까지.
2023년 11월, 수능이 끝나자마자 저는 바로 여권을 만들러 행복센터에 찾아갔습니다. 2023년 1월에 영어 회화 실력을 늘리고 싶어서 시작한 화상영어 튜터를 만나러 미국행을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두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영어로 몇 번 대화를 해 보았고, 동갑이라는 이유만으로 저는 비행기에 혼자 몸을 실었습니다. 여권이 나오자마자 비행기 표를 샀는데, 여태 모아두었던 용돈인 전 재산 400만 원가량을 털어 비행기 값에만 썼던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11월 30일에 미국 땅을 밟게 됩니다. 그렇게 2주간 그 친구의 집에서 함께 먹고 자며 관광이 아닌, 정말 미국 생활을 살았습니다.
수능 성적도 미국에서 확인했었고요. 화투도 알려주고 함께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기도 했고, 운동도 했습니다. 정말 한국어 하나 없는 미국 시골에 나 홀로 떨어진 느낌은, 온몸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혼자 해외여행은 처음이고, 외국인과 이렇게 직접적으로 대화를 길게 나누는 것은 처음이라 처음에는 조금 겁을 먹었지만, 나중에는
'나는 외국인이고, 너희는 현지인이니 너희가 내 말을 알아들어야 해.'
하는 마인드로 살았습니다.
생존에 가까운 영어였습니다. 마트를 갈 때나, 그 친구의 가족들과의 대화는 전부 영어였기 때문이죠. 그렇게 저는 영어가 늘었다기보다는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하나 늘어서 왔습니다. 바디랭귀지를 해서라도, 쉽게 풀어서라도 설명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다시 물어볼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되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수능이 다 끝나고, 성적을 확인하고 더 이상 내 인생이 어디로 풀리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마주한 채 펑펑 울던 날이었습니다. 상황을 친구의 어머니가 듣고는 해 주시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
L두 개가 모이면 W가 된다는 것입니다. 루저는 절대 루저로 남아있지 않고, 언젠가는 위너가 된다. 너는 너의 삶을 살아가는 중이기 때문에 많은 것을 하지 않아도 잘해 나가고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
그리고 그 따뜻하고 큰 포옹은 절대 잊을 수가 없는 밤이었습니다.
그렇게 1차 상담이 끝나고 난 후에, 이제 뭘 해 먹고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친구에게 하소연을 하자, 친구가 "너는 한국인이고, 영어도 잘하니까 한국어를 가르쳐 보는 것은 어때?"라고 제안을 했고, 저는 평소에 누군가를 가르치던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기에, 그 제안을 덥석 물어버렸습니다.
그렇게 현지인인 그 친구가 저의 어색한 프로필을 손봐 주었고, 그렇게 미국에서 돌아오고 난 뒤에도 수업이 잡히지 않아 낙담했습니다. 그러나 무슨 용기인지, 저는 벤치마킹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벤치마킹이라는 의미도 몰랐고, 그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아서 했던 것이었습니다. 비슷한 금액대인 튜터 중 고객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튜터의 프로필 5-6개를 뒤져가며 공통점을 찾고, 저의 스타일로 프로필을 다시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12월 말에 첫 수업이 잡혔습니다.
첫 수업은 제게 정산이 되지 않는 시스템으로, 24년 1월 1일의 수업부터 제 강사 인생은 시작되었습니다. 첫 고객은 영어를 할 줄 모르는, 한국어 하나 모르는 프랑스인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불어는 봉주르밖에 몰랐고요. 하지만 그 학생은 아직도 함께 수업을 하고 있으며, 유일하게 영어 없이 한국어로만 대화가 가능한 학생입니다.
여러 차례 삶에 대한 고민을 하고, 새로운 일들에 도전을 하면서 저의 삶은 점차 바뀌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행이 제 인생을 180도 이상 바꿔놓았습니다. 저는 아직도 성장을 열망하고 있습니다.
제 도전 이야기와 제가 하는 생각, 그리고 지난 미국 여행기는 제 블로그에 실려 있습니다.
미국 여행기 하나를 붙이겠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제가 24학번으로 입학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