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리셋버튼
그렇게 저는 고등학교를 자퇴한 이후에, 두 번의 수능을 봤습니다. 자퇴 후 6개월 후에 검정고시를 볼 수 있고, 검정고시를 보고 나서야 수능 원서 접수를 할 수 있었지만, 운이 좋아 다음 해의 수능을 접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수능은 동갑내기 친구들이 고3일 때 저도 같이 보게 된 21학년도 수능입니다. 학원 하나 없이, 스스로 문제집만을 가지고 공부를 했다곤 하지만, 사실 많이 놀고 많이 잤습니다.
성적이 나오자마자 M사의 대학예측기에 넣어 돌려봤는데, 지방대가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덮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날을 두고두고 후회할 줄은 꿈에도 몰랐었습니다. 수능 성적이 나온 당일에는 아무도 그 예측기를 믿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몰랐었습니다. 심지어 21 수능이 약간 어려웠던 수능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기에, 원서만 잘 쓰면 서울에 이름은 들어본 대학을 갈 수 있는 성적이었기 때문에 저는 그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죠.
친구도 없었고, 입시 정보를 어디서도 구할 수 없었던 터라, 사실 안 찾아보고 공부만 했다는 말이 더 맞겠죠. 공부만 하고 성적이 나오면 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원서 접수 직전까지 고민하고 써야 하는 것을 원서였다는 것을 당시에는 몰랐었습니다. 그렇게 21 수능 성적표가 나온 당일, 저는 노트북을 덮자마자 다시 한번 수능을 준비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며,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수능의 체계가 많이 바뀌었고, 특히 수학 가/나형이 미적분/확통/기하로 갈라지는 일이 일어나 공부를 다시 처음부터 그 체제에 맞게 공부를 했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 번 했다는 것을 믿고 나댄 덕분이었는지 두 번째 수능은 성적이 더 떨어진 채고 이과에서 문과로 교차지원을 하여 경기대학교 관광학부에 입학을 하게 됩니다. 추가합격 마지막날, 마지막 시간에 전화가 와서 등록을 무사히 할 수 있었고, 나머지 두 장은 상향으로 써버려서 대기 번호가 뜨지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1년, 학교를 다니다 보니, 분명 저는 문을 닫고 들어왔음에도 꾸준히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학부라서 인원이 많아 비율을 많이 줬을진 몰라도 두 학기 모두를 장학금을 받고 나니,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나는 이 학교를 문 닫고 들어온 줄 알았는데, 매일 통학 4시간씩 하는데 장학금을 받는다니. 심지어 안 노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동아리, 학생회 하나 안 하고는 첫 축제날 제가 친구들을 불러 모아 함께 술을 마시자고 했더니 약 30명이 넘는 인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렇게 방학 때는 외식조리학과를 지망하는 동기들과 함께 개강맞이 칵테일파티를 하기도 했었고요, 공강 시간에는 서울이다 보니 근처 회사들 구내식당 밥 먹으러 가거나 옆 동네인 연대 학식을 먹으러 자주 놀러 가기도 했었습니다.
사람을 많이 싫어하는 줄 알았었는데, 22학번으로 살았던 경험으로 많은 공포증들이 해소되고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년, 겨울이 되자 회의감은 더 크게 몰려왔고, 몸과 신체가 모두 건강해진 것을 느끼자 저는 제가 원하던 과를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엄마의 동의하에, 다시 한번 수능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블로그와 유튜브를 시작했습니다. 유튜브는 핸드폰 사용을 막기 위해서 타임랩스를 찍은 후에 일기 식으로 해서 매일 업로드를 했고, 블로그는 국어 문제와 수학 문제 등을 풀이하는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그렇게 활동을 하다 보니, '스튜디오 샤'라는 서울대 학생들이 운영하는 채널에서 출연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면접을 보고 촬영을 하려던 찰나, 결과물도 없는데, 내가 그렇게 나가서 떠든다면 전 국민 망신밖에 당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여 철회했습니다.
그러고 2학년 3월은 학교를 나가 수업을 병행하며 수능 준비를 했습니다. 그 덕에 많은 친구들을 잃었고, 등록금 한 학기를 통으로 날렸습니다. 이 모든 일은 휴학 처리 기간을 놓친 저의 잘못이었기 때문에, 저는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학사경고장을 받아보았습니다. 짜릿했습니다.
그렇게 세 번째 수능은 24학년도 수능이었는데, 또 체제가 바뀌어 국어를 선택하도록, 그리고 융합형 지문이 생기는 등 여러 변화가 있었으며 대통령께서 킬러 문항을 없앤다 선포하셨던 그 해였기에 우왕좌왕하며 공부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22학년도 수능과 비슷한 성적을 받고는, 3 카드 모두 간호학과를 적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그중 두 군데에서 합격을 했고, 기숙사를 사용할 수 있고, 실습을 서울로 나오는 곳을 원하여 지금의 학교에 등록을 하게 되었습니다.
등록을 하자마자, 합격자 발표일이었겠죠, 저는 바로 대학으로 달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조교님을 뵙고 자퇴원을 냈습니다. 그렇게 저는 인생 두 번째 자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심심할 때마다 입에 자퇴라는 말을 달고 살지만, 자퇴를 하고 난 이후에 제가 얼마나 망가지고 힘들어했는지를 알기 때문에 이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다시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하고 비전이 있다면 저는 자퇴를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닌 도피성이라면, 그리고 빨리 졸업하고 싶다는 생각이라면, 저는 반대할 것입니다.
중간중간에 빠진 이야기들이 많아 매끄럽게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자퇴는 하면 할수록 계속하고 싶어 집니다. 인생을 리셋하는 버튼 같거든요. 하지만 그 리셋하는 버튼은 인생을 리셋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시간을 사용해 다시 재자리로 돌아가는 행위일 뿐입니다. 발전하지 못할 리셋 버튼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휴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도피하는 곳에 희망은 없습니다. 희망은 점점 더 작아질 뿐입니다.
그 리셋 버튼에 계속 손을 댄다면, 수능 중독처럼 평생 그곳에만 머물러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세 번을 도전하고 난 뒤에도 그 일이 풀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가 열심히 할 생각이 전혀 없거나, 내가 열심히 했다면 그것은 내 길이 아니라고 판단해 빠르게 다른 길을 찾는 것이 아주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는 제 유튜브의 이름을 '인생은 삼세번'이라고 지었고, 그게 애칭처럼 불리다 보니 인삼으로, 의미를 부여하니, IN삶이 되었습니다.
제 인생을 새롭게 살게 해 준 하나의 이야기가 끝이 났습니다. 이제는 제가 성장하는 이야기, 제가 저와 비슷한 분들께 해드리고 싶은 조언 등을 적어 내려 가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