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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도록 아름다운

by 두두 Mar 12.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부산 동래구
어떤 성형외과 간판을 바라본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성형외과

혼자 미친놈처럼 한참을 웃었다
 
잊고 있던 노래
20대 때 자주 듣고 불렀던 노래
K2 김성면의 '슬프도록 아름다운'이란
노래가 생각났다

특색 없는 간판들 사이에서
독보적으로 눈에 띄는
특이한 이름의 간판이다

의사는 무슨 생각으로
자기 병원 이름을 저렇게 지었을까?

K2의 노래 '슬프도록 아름다운'을
아는 나와 비슷한 또래인가?

히말라야 K2만큼 극복하기 어려운
마음 성형이 얼굴 성형과 가슴 성형을
슬프도록 아름다운 수술로 만드는 걸까?


한국 소총 K2의 연발 사격처럼

시끄러운 외모 지상주의자들의

낯 뜨거운 광고에 속아 넘어가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세상 때문일까?

성형을 원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면
괜히 마음이 슬퍼지긴 하지만
일단 아름답게는 뜯어고치기 때문일까?

성형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슬픔을 안고 병원을 찾았다가
자기 손에 의해 아름답게 개조되어
나가기 때문일까?

고치고 또 고쳐도
만족하지 못하는 환자들을 보면
의사 본인의 마음이 슬퍼지기 때문일까?

외모지상주의 사회 속에서
살기 위해 고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슬프도록 아름다운 세상을
절절하게 느끼기 때문일까?

아름답게 바뀐 얼굴 이면에 도사린
성형이 되지 않는 추악한 내면을 보면
슬퍼지기 때문일까?

과거의 얼굴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
과거의 얼굴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

돌아갈 수 없는 과거와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는
모두,
시간의 풍화작용에 의해
기억의 침식 과정을 거쳐
아름답게 각색되기 마련이다

슬프도록 아름답게 성형된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병원 간판을 보며 나도,
슬프도록 아름다웠던
뜯어고칠 수 없는 지난

내 젊은 시절을 추억한다

돌아갈 수 없기에 그립고,
돌아가고 싶지 않기에 슬프고
그렇기에 아름답게 느껴진다

슬프도록 아름답게 성형된다

한 번 떠나면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이 세상은
아니, 아니, 아니, 두 번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은 이 세상은

매번 아름답게 성형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걸 발전이라 말하지만

도시의 화려함과 웅장함은

허와 허무로 가슴이 텅 빈

빈 집 같은 아름다움이다


세상이 쓴 형형색색의 가면 아래

가려지지 않는 추악한 민낯이 보이기에

내게 이 세상은 몸서리치게

슬프도록 아름다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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