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처럼
법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국가이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 법이 지나치게 복잡하고 많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 관료들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여 결론을 내리는
사법부 관료들과 판사, 검사, 변호사, 경찰
법을 연구하는 법학자들
이들의 판단 작용에 관하여
평범한 국민들의 의사 따윈 영향을 미칠 수 없다
법치국가에서 법은 본질적으로
권력자들과 지배계급(기득권)의
지배와 통치의 수단이며
한 번 만들어지면 바꾸기도 힘들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무슨 일만 생기면
법부터 만들라고 아우성을 친다
000 특별법
0000 특별법
00000 특별법
사회적 이슈가 생길 때마다
국회의원들 업적 과시용으로
대량 생산되는 법률들
법이 대량 생산되는 국가는
결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법이 있어도 정치적 세력에서 밀리면
아무런 쓸모도 없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란 말이 괜히 나왔을까?
법은 과학 법칙과 달리
해석하기에 따라 결과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대법원 판례나 헌법재판소 판례를 살펴보면
같은 법조문을 가지고도 법관마다 해석이
천차만별로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법이 대량 생산되는 만큼
찍어누르기식 끔찍한 관료주의,
효율 만능의 비인간적 시스템,
기계적 전체주의 등등
혜택보다는 해악이 심각해질 거라고 믿는다
만약 어떤 사회가 질서 있고 평화롭다면
법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그 사회 구성원들의 역량 때문이다
법은 건축물 같은 것이라
오래되면 반드시 균열이 발생하고
그 균열 속에 희미한 틈이 생긴다
사회가 양심적이고, 옳고 그름에 대해
예민하고 섬세한 지성과 지혜를 가진 채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늘 깨어있는 상태라면
그 틈을 그때그때 보수하여
법이라는 거대한 구조물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겠으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틈은 더욱 벌어지고
틈이 벌어질수록 균열은 더 자주 발생하게 된다
균열의 조짐을 알아챈 사람들이 아우성을 쳐도
아직 뼈대가 튼튼하다고 믿는 오만한 인간들은
붕괴의 위험 따위는 무시한 채
증축에 증축을 거듭한다
증축을 계속할수록
법의 외부 구조는 웅장해지고 화려해지며
범의 내부 구조는 난마처럼 복잡해진다
법의 내부는 마치 미로처럼 얽히고설켜
법의 내부에 발을 들인 사람들은
내부 설계도를 가진 법 전문가들을 만나지 못하면
미궁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그 안에서 죽는다
법을 신뢰하지 못한 사람들은 법을 빠져나오고
법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사람들은 법을 믿는
순진한 사람들에게 태연하게 사기를 친다
법을 증오하는 인간들은 법의 외부에서 법을
공격하고 법을 무시하며 법의 붕괴를 소망한다
바벨탑처럼 쌓아 올린 거대한 법은
무수한 틈을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붕괴된다
그 몰락의 과정 속에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수많은 절규와 고통의 몸부림이 무시무시한
구조물 잔해에 깔려 형체도 없이 으스러진다
무너진 자리에 흩어진 살덩이와 핏자국을
치우고 다시 법의 구조물을 쌓아 올린다
이번에는 결코 무너지지 않을 구조물을
만들 거라 호언장담하면서 설계도를 펼친다
가장 안전한 구조물은
소박하지만 부실 공사 없이
재료를 아끼지 않고 공들여 튼튼하게 지은
단층 건물이다
법의 바벨탑은 위태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