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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와 간판의 세계

by 두두 Mar 18. 2025

온라인 세계와 오프라인 세계

두 세계 모두를 점령한 광고는

끊임없이 인간 내면에 도사린

욕망과 공포를 자극한다.


집을 나서면 간판들이

빽빽한 숲처럼 도시를 장악한다.


광고와 간판은 이 사회의 욕망과 공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도시마다 즐비한 광고판과 간판은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개별자들의 집은 광고판이 없다.
개인의 집 옥상에는 마르지 않은 빨래나
이미 말랐지만 걷는 것을 깜빡한
주인에 의해 방치된 옷가지들만 걸려 있다.
아니면 주인장이 키우는 작은 화분과
텃밭 작물들이 자라고 있다.

개인이 거주하는 공간은
자신을 드러내고 광고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소유임을 알 수 있도록 해 주는
문서와 전자기록만 있으면 충분하다.

익명의 공간 속에서 휴식을 취한 개인들은 다음 날,
잠에서 깨어나 광고판이나 간판이
걸린 공간으로 들어가 생계를 위해 하루를 쓴다.

출근과 퇴근의 과정 중에도
그들은 광고판 또는 간판과 만난다.

간판에 적힌 상호와
광고판의 전화번호와 인터넷 주소는
이 사회에서 자신의 이름을 끊임없이 알리고
자신에게 연락을 하도록 만들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음을 보여준다.

복잡하고 바쁜 세상 속에서
하루라도 이름과 연락처를 알리지 않으면
빠른 시일 내에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자신을 소비자의 필요에 맞게 가공하여
세련되게 포장하여 팔아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간판 숲에서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녹아내린 젤리처럼 거리로 흘러나온 사람들은
흐물흐물한 반고체가 되어 광고판이 걸린
건물로 흘러들어가 물을 쓰듯 돈을 쓴다

간판과 광고를 보며 욕망을 저울질하던
소비자는, 다음날 아침이면
좀 더 유혹적인 간판과 광고를 위해
골머리를 싸매고 고심하며
자신의 심신을 깎아 돈을 조각해 내는
예술적인 생산자가 된다.

자신을 알려 다수의 사람을 유혹하거나

그들에게 공포를 심어주어야 생존이 가능하다.  
짧디 짧은 이 생에서
잠재적 먼지인 육신을 끝까지 유지하기 위해
유혹과 공포의 이전투구에 거침없이 뛰어든다.

유사한 것들을 팔아야 한다면
남들과 차별되는 독특함이 있어야만 한다.
아니면 남들과 다른, 육신과 영혼을 모두
갈아 넣은, 미칠 듯한 노력이 필요하다.

계산과 계산이  
이익과 이익이
이득과 손해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야만
그 교묘한 교차점에서
마침내 바라고 또 바라던 돈이
쉼 없이 떨어져 나온다.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열기와
타인의 성공이 곧 나의 패배가 되는
냉혹한 현실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기 어린 차가운 냉기가
기묘한 화합물이 되어
도시의 대기를 적시고 있다.
 
도시의 밤을 밝히는 광고와 간판을 보면,

가상의 공간에서 끝없이 나를 부르는 그들을 보면,
쓸쓸함과 공허함이 밀려 들어온다.
그것들은 짠하고 불쌍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기괴하고 징그럽다.

화려한 자극이 끊임없이 감각을
쑤시고 찔러대는 도시의 밤.

가혹하고 냉혹한 삶이
압축되어 뜨겁게 빛나는
광고와 간판의 밤.


하늘에서 떨어진 별이라고 광고하는 세상에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존귀한 존재라 홍보하는 세상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간판의 숲 속에서


개인은 각각 하나의 간판이 된다

간판을 꾸미기 위해 스펙을 쌓는다

개인은 각각 하나의 광고가 된다

광고를 위해 자기를 홍보해야만 한다

 

전기처럼 짜릿한 돈이 입금되면

광고와 간판은 계속 빛날 수 있다

전기 공급이 중단되면 간판은 빛을 잃는다

광고는 중단되고 카피라이터는 침묵한다


임대 현수막이 나부낀다

낡어버린 임대 표지판은 묘비처럼 낡아간다

인수 합병 그리고 매각을 강요당한 간판은

다른 간판이 되어 기존 간판이 있던 자리를 대신하고

자기를 팔아야만 살 수 있는 간판들은

또다시 광고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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