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7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간판

by 두두 Feb 20.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다온나, 다이소, 다파라치아
웃음이 나온다

지하철 역마다 다이소가 있는데
장전역 근처 '다온나' 가게 아저씨는
무슨 생각으로 다이소와 컨셉이 겹치는
가정용품들을 팔 생각을 했을까?
다이소에게 밀려 Die 되는 건 아닐까?
'다 온나~'라고 애타게 불러도 손님들이 다 와줄까?

대연역 근처 다파라치아 가게
주인장은 지금도 매일 매장의
물건들을 다 팔아치우고 있을까?
다 팔아치우다 치우다 지쳐
자기 삶과 건강, 심지어 목숨마저
다파라치운 건 아닐까?
 
서민의 친구, 우리 다이소는
노동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자동 결재 시스템을 도입했고
사람들은 양치기 개에게 몰려
털 깎는 목동 앞에 줄지어 선 양 떼처럼
두 손 가득 천 원의 기쁨을 안고
계산대 앞에 옹기종기 줄을 서 있다

다이소가 생긴 이후
동네마다 있던 작은 잡화점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편의점이 암세포처럼 도시 곳곳에 퍼진 후
동네마다 하나씩 있던
작고 하찮은 구멍가게들은 모두 멸종했다

'Die소'는 '다 있다'가 아니라
'죽었소'란 의미 아닐까?
잔챙이 소자본가들아~
너희들 '다 죽었소'!! 라고 외치며
핏빛 붉은 간판으로 온 도시를 압도한다

이 찬란한 물질문명의 진화

GS(개소)는 25시간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충직한 개와 우직한 소처럼
부지런히 물건을 판다
매장 안에는 개와 소의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고 불철주야 뺑이를 치는
점주와 알바가 있다

'당신이 보고 싶다'가 아니라
25시간 쉬지 않고
'나, 너를 지금 감시하고 있다'
라는 의미처럼 여겨지는
See You(CU)는

행운인지 불행인지
행운의 숫자 7과 마주 보며
헤벌레 웃고 있다
7 옆의 11'븐'이 왠지
악마의 두 뿔처럼 보인다

이 눈부신 일중독자들의 세계

소유하고 싶은 물건을
도시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세련되고 깨끗한 매장에서
25시간 언제 어느 곳에서나
내 돈만 있으면 마음대로 살 수 있다

이 세계 안에서
E-편한 세상 안에서

저녁 5시면 우리 모두
상점과 회사의 문을 닫고
각자 자기의 보금자리로 돌아가
맛있는 저녁을 함께 먹으며
가족과 사랑을 나누고
반려묘 반려견과 추억을 만들고
애인과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친구와 우정을 돈독하게 다지는

그런 삶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그런 꿈만 같은,
작은 외침은
소리 없이 묻힌다

작가의 이전글 이사의 슬픔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