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기차역이나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술 한 잔 하는 것을 좋아할까?
어딘가로 늘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일까?
왜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에서 열차나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좋은 것일까?
그 짧은 시간이 왜 나의 영혼과 마음을 치유해 주는 것일까?
왜 그 시간들이 달콤하게 여겨지는 것일까?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란 책에서, 찾고자 하는 것을 자신의 현실에서 찾을 수 없을 때, 우리는 여행을 하고 싶어진다고 한다. 우리가 현실의 공간에서 찾을 수 없는 것들을 낯선 공간에서 발견할 때, 우리는 경탄하게 된다. 낯선 사람들과 낯선 문화, 낯선 풍경. 사람들은 이런 것들 때문에 여행을 가는 것 아닐까?
우리는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자기 자신이 갑자기 낯설어지는 것을 경험하기 위해 돈과 시간을 쓰면서 여행을 한다. 익숙한 것들 속에서는 삶에 대한 감사와 반성, 성찰의 사유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모든 낯선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진다. 그 익숙함 속에서 인간의 감정과 사유는 메마르게 된다. 새로운 생각이나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은 떠나는 것들과 도착하는 것들이 모두 한 곳에서 만나는 곳이다. 여행의 시작이자 동시에 끝을 암시하는 장소이다. 이런 장소들은 독특한 매력이 있다.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에서 우리는 각자 모두 어딘가로 떠나며 또한 떠났던 곳으로부터 다시 돌아온다. 떠나는 사람과 돌아온 사람들이 한 곳에서 만난다. 살아있는 동안 우리는 반드시 어딘가로 떠나야 한다. 그리고 떠난 것들은 살아있는 상태로 돌아오던지, 이미 세상을 떠났다면 추억으로 돌아오던지 어쨌든 반드시 돌아온다. 우리는 우리도 알 수 없는 어떤 곳에서부터 이곳으로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언젠가 다시 우리가 온 곳으로 돌아갈 운명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떠나갈 곳과 떠나온 곳을 알 수 없다.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은 마치 중천과도 같은 곳이다. 사람은 죽으면 천상과 지상의 중간 지역인 중천에서 49일 동안 머문다는 말이 있다. 떠날 사람들과 돌아갈 사람들이 모여 잠시 기다리는 곳이 바로 중천이다.
천국도 지옥도 아니며 이승도 아닌 곳.
난 왜 그런 공간이 좋은 것일까? 떠나면서 동시에 돌아오는 삶. 무한히 반복되는 만남과 헤어짐. 무한히 반복되는 삶과 죽음. 모든 것들이 무한히 떠나고 또 무한히 돌아온다. 물론 모두 같은 떠남과 돌아옴은 아니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유랑에 길들여진 동물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잊힌 유랑의 추억이 집단 무의식처럼 인류의 유전자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고 시간만 나면 돌아다니는 것도 바로 그런 유랑벽 때문이 아닐까?
바쁜 일상 속에 길들여져 매일 망각한 채로 살아가지만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떠나야 함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떠난 것들은 또다시 돌아와야 할 숙명을 가졌음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교서적이나 신비체험을 다룬 책들을 보면 내 생각이 그럴듯하게 설명이 된다.
난 전생이나 윤회,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다. 신도 믿지 않는다. 하지만, 밤하늘을 바라볼 때 가졌던 그 신비한 느낌이나,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을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보면 분명 이 세상에는 내가 도무지 알 수 없는 거대한 신비가 숨어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기차역 플랫폼에 앉아 역으로 다가오는 기차를 바라본다. 역을 떠나가는 기차를 바라본다. 버스터미널 대기실에 앉아 떠나가는 사람들과 도착하여 돌아오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분주히 떠나가고 돌아오는 그들을 바라보며 난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과 우주의 노랫소리를 떠올린다. 그들을 바라보는 순간과 밤하늘을 바라보는 순간에 느꼈던 감정이 아주 많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아련하고 숨이 막힐 듯 가슴이 먹먹하지만, 한편으로는 따뜻하고 유쾌한 느낌. 너무 아득하여 손이 닿지 않을 것 같지 않는, 실체를 알 수 없는 삶과 죽음의 거대한 신비. 만남과 헤어짐의 인연을 설계한 오묘하고 정교한 공식. 풀리지 않고 파악할 수 없어 더욱더 끌리는 이 세상의 압도적인 신비.
떠나면서 돌아오는 모든 것들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고
돌아오며 떠나는 모든 것들은 눈이 아리도록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