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에게 무해한부모가 되고 싶네.
북앤콘텐츠페어에 출간 작가로서 전시에 참여한 적이 있어. 그때 나는 강연자로 무대에 서기도 했고, 내 책을 소개하는 부스에도 자리했지. 행사장에는 다양한 출판사들이 참여했고, 내가 속한 출판사는 1인 신생 출판사였어.
그 출판사는 자신의 이미지를 대표할 두 가지 로고 시안을 준비했고, 관객들이 그 로고를 보고 마음에 드는 곳에 스티커를 붙이는 투표 이벤트를 열었지.
하나는 책을 들고 있는 클래식한 디자인이었고, 다른 하나는 귀엽지만 출판사 이미지와는 다소 동떨어진 캐릭터 로고였어. 출판사 대표와 나는 당연히 책을 들고 있는 로고가 더 많은 표를 받을 거라고 생각했지. 아무래도 전문적이고 신뢰감을 주는 이미지니까.
그런데 결과는 예상과 달랐어. 귀여운 캐릭터 로고가 압도적으로 많은 선택을 받은 거야. 왜 그런지 궁금해서, 나는 관객들에게 직접 물어봤어.
어린 친구들에게 이유를 묻자, 대부분이 같은 대답을 했지.
"그냥 귀여워서요."
성인들에게도 이유를 물었어. 그랬더니 뜻밖의 답이 돌아왔지.
"무해한 매력이 있어서요."
그때 알았어. '무해해서 좋다'는 감각이 사람들이 편안하게 느끼는 어떤 특별한 힘이 있다는 걸.
자극적이지 않고, 편안하고, 그저 곁에 두고 싶어지는 에너지 말이야. 그 무해한 매력이 사람들 마음속에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그때 처음 깨달았어.
그 경험을 통해 내 폭망(?)한 유튜브 채널들이 떠올랐어.
너도 기억하지? 내가 두 번이나 도전했던 채널들.
첫 번째는 ‘동요마스터 HJ’라는 이름으로 만들었지.
네가 "이 이름은 너무 올드하고 무겁다"라고 했는데, 내가 우겨서 그대로 진행했잖아.
그 후, 정말 심혈을 기울여서 동요 영상을 만들었는데, 결국 나를 아끼는 몇몇 지인과 친구들만 구독했지. 결국 그 채널은 나만 보는 채널이 되고 말았지.
포기하지 않고 두 번째 도전했는데, 상황은 더 나빠졌어. 이번엔 친구들조차 구독하지 않더라.
그러던 어느 날, 믿기 어려운 일이 생겼지.
내가 그냥 고양이 야니와 있었던 작은 해프닝을 편집 없이 짧게 찍어 올린 숏폼 영상이 2,400회 조회수를 넘긴 거야.
https://youtube.com/shorts/4Ao_TUILuG0?feature=shared
너무 어이가 없더라. 그건 정말 편집도 없이 그냥 툭 올린 영상이었거든.
나는 생각했어.
‘내가 심혈을 기울인 동요 콘텐츠는 조회수 20, 30을 넘기지 못했는데, 이 짧은 야니 영상이 이렇게 사랑받다니…?’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영상이 사랑받은 이유도 무해력 덕분이 아닐까 싶더라.
아무런 책임을 요구하지 않고, 그냥 웃으며 볼 수 있는 편안함. 그게 사람들이 원했던 것 같았어.
그런데, 사람들은 왜 무해한 콘텐츠를 찾을까?
"너의 엄마 채널 영상을 보고 있으면, 세상이 너무 조용하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때 네 친구가 전해준 말이 아직도 기억나.
내 자식인 너조차 보지 않던 내 채널을,
구독을 해놨더니 동영상 알고리즘이 자꾸만 동요만 들려준다고,
결국 구독 취소를 해버린 그 채널을,
네 친구가 찾아서 보며 그런 말을 해줬다는 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
어쨌던, 그 말을 곱씹을수록 드는 생각은.
'정말로 사람들은 일상에서 많은 피로를 느끼고 있구나'였어.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와 치열한 경쟁, 뉴스 속 사건 사고, SNS에서의 비교, 직장과 학업에서의 스트레스…
그 복잡한 일상 속에서, 내가 만든 동요 콘텐츠나 고양이 야니의 일상이 작은 피난처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더라.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어.
왜 내 동요 콘텐츠보다 고양이 야니 콘텐츠가 더 많은 관심을 받았을까? 둘 다 무해한데 말이지.
그건 아마도 야니의 영상은 그저 웃으며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는 모습만으로 편안함을 주는 것.
반면에 내 동요 콘텐츠는, 어쩌면 보이지 않는 요구가 있었을지도 몰라.
"동요가 좋아요. 동요 좀 들어주세요!"
라는 묵시적 메시지가 숨어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런저런 나의 조각난 생각들이 맞는지 확신이 없어서 무해력에 대해 조금 찾아보았지.
놀랍게도 심리학적으로 무해한 콘텐츠는 사람들의 안정감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고 하더라.
마치 아이들이 애착 인형을 꼭 안고 자듯, 어른들도 무해한 콘텐츠를 보며 심리적 안정을 찾는 거야.
어린 시절 우리가 애착 인형을 손에서 놓지 못했던 이유가 단지 '귀여워서'가 아니라, 그 인형이 주는 편안함과 안전함 때문이었던 것처럼 말이야.
그래서 사람들은 경쟁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 대신, 평화롭고 부드러운 장면에 끌리게 된다는 거야.
결국, 아무 요구 없이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의 힘을 무의식적으로 원하는 거지.
무해력에 대한 내 모든 경험이 수렴하는 곳은 결국 ‘평온’이라는 단어로 귀결되는 것 같아.
복잡한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잠시라도 편안히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찾아 헤매는 것 같아.
그곳이 고양이 야니의 일상일 수도 있고, 아무런 맥락 없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영상일 수도 있지.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지는 그런 무해한 것들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안식처가 되어주는 것 같아.
그런 의미에서 나도 너에게 무해한 안식처로서 존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