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보내는 쪼~금 긴 메모 33

오늘도 영감님 노쇼(No-Show)…그래도 쓴다.

by 김현정

아주 오래 전, 작가 강연에 참석한 적이 있어. 참석자는 모두 작가들이었는데, ‘작가들 앞에서 강연하는 작가는 무슨 말을 할까?'라는 호기심에 귀를 쫑긋 세웠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집중해서 강연을 듣던 중, 예상치 못한 순간이 찾아왔어.

강연을 진행하던 작가는 하루 일과가 단순하다고 말했거든.

밥 먹고, 운동하고, 나머지는 전부 글을 쓴다고 했어.

그리고는 1년에 책 출간과 관련된 수입으로 연봉 1억 원을 번다고 덧붙였지.

그 말에 객석에 앉아 있던 작가들도 모두 우와! 하고 감탄했어.

그런데 그녀는 갑자기 우리를 둘러보며 질문을 던졌어.


"여러분 중에 저처럼 글을 치열하게 쓰면서 연봉 1억 원을 버는 사람이 있나요? “


강연장을 가득 메운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 서로 다른 연령대의 작가들은 잠시 웅성거렸지만, 이내 무거운 정적이 흘렀어.

그러자 그녀는 자기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다시 물었지.

"정말 아무도 없나요?"

나는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라.

그녀는 민소매 상의를 입고 있었는데, 가녀린 팔을 당당하게 들어 올리며 묻던 그 표정이 지금도 잊히지 않아.


그 모습은 당당함이었을까, 아니면 오만함이었을까? 그녀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그때 그녀의 이야기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어.

'어떤 부분에서?'라고 궁금하지?


사실 나도 그동안 열심히 글을 써왔어. 그런데 이번에 연재 중인 ‘아들에게 보내는 조금 긴 메모’만큼 이를 악물고 치열하게 써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은 무슨 글을 써야 하지?"라는 고민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글을 예약 발행한 후에야 겨우 안도할 수 있었지.

‘오늘도 무사히 글을 썼다.’


사실, 나는 글을 쓸 때 지구력이나 성실함보다는 ‘그분(영감)’이 오셔야만 글이 써진다고 믿었어. 그리고 그분은 아무 때나 오지 않더라고.

그래서 아, 그분(영감)은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만 온다고 혼자 생각했지.

그래서 친구를 만나고, 여행도 다니면서 영감을 기다렸지.


그런데 연재를 시작하고 보니까, 그분이 오실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더라. 무조건 자리에 앉아서, 어젯밤에 떠올린 키워드를 붙잡고 글을 써야만 했어.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지.

‘고작 A4 한 장 분량이잖아. 매일 일기를 7년 넘게 썼는데, 그 정도쯤이야!’

그렇게 자신감을 다잡으며 시작했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글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어.

일기처럼 내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쓴 게 아니었으니까.

읽는 사람을 고려하면서 이야기의 소재와 주제를 잡아야 했거든.


그러다 문득, 그 강연자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어.

그녀는 우리에게 매일 같이 지구력 있게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자신의 하루 일과에 글쓰기와 운동밖에 없다고 한 말은, 그만큼 글쓰기에 온전히 집중했다는 의미였을 거야.

사람도 거의 만나지 않으면서, 모든 주의력을 글에 쏟아부었다는 걸 강조한 거지.

그렇게 치열하게 글을 써야만, 비로소 ‘연봉’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려 했던 것 같아.


“너네 엄마는 뭐하시노?”

“음, 그게…”


네 친구의 질문에,

네가 당황하며 대답을 망설였다고 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엄마는 직장인이었고, 세탁편의점 점주였고, 어린이집 선생이었지.

전업주부이기도 했고, 책을 썼으니까 작가이기도 했어.

도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는 말에 웃었지만, 또 씁쓸하기도 했어.

요즘 말로 하면, 나는 참 오랜 시간 N잡러였던 것 같아.

작가라는 한 가지 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거든.

그래서 나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살았고, 그 와중에 작가는 나의 부캐였던 셈이야.


그런데 그 강연장의 그녀는 나와는 달랐어.

그녀의 본캐는 오직 작가였지.

그렇게 치열하게 글을 썼고, 그 노력은 그녀의 행동과 말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던 거야.

"N잡 없이, 오직 본캐만으로 살아가는 사람."

그 모습이 그토록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

이번 연재를 하면서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는 정말 작가가 본캐일까? 아니면, 그저 내가 하는 많은 일 중 하나일까?"

어쩌면 이번 연재가 그 답을 찾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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