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사각지대
대화의 사각지대
"이렇게 사는 건 지옥이야."
"왜 그렇게 말해요? 무슨 일 있으세요?"
딸이 묻는다.
80대 어머니는 얼굴을 찡그리며 시선을 남편 쪽으로 돌린다.
"왜, 아버지가 어머니 힘들게 하세요?"
50대 딸은 거실 소파 한가운데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아버지를 힐끗 쳐다보며 다시 묻는다.
"아니, 몸이 아파서 그래. 온몸이 쑤시고 다 아파."
"병원은 다녀오셨잖아요."
딸은 어머니의 통증 앞에 무력감을 느낀다. 자신이 뭘 어찌해 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내가 드는 생각이..."
어머니의 시선이 과거의 시간 속을 더듬듯 천천히 떠올라, 한 곳에 머문다.
"나도 네 나이 때 네 할머니를 모셨잖아. 그때 나는 시어머니가 너무 싫었고, 빨리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내가 지금 딱 그 시어머니가 된 것 같아."
"왜, 며느리가 어머니를 힘들게 해요?"
딸이 살짝 과장된 말투로 묻는다.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나도 그때 시어머니를 모시는 게 힘들고 지겨웠는데, 지금 우리 애들도 그런 생각을 하겠지 싶어서. 혼자서 해본 생각이야."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말했다.
"어머니, 왜 그런 생각을 해요? 그때의 할머니랑 어머니는 다르잖아요. 그리고 노화로 인한 통증은 누구나 오는 거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조금 더 기분 좋은 생각을 해보면 어때요?"
딸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기분 좋은 일이 있어야 하지. 네 아버지는 낮에는 온종일 저렇게 소파에 앉아서 자다가, 밤에는 잠이 안 온다고 불평만 하셔."
어머니가 남편을 불만 가득한 눈빛으로 힐끗 보더니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게 뭐 어때서요? 아버지도 할 일이 없고, 기력이 달려서 그러시는 거잖아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두고, 어머니는 지켜보기만 하면 안 돼요?"
"어떻게 지켜보기만 해? 밤새 잠 안 온다고 나한테 잔소리하고 귀찮게 구는데."
어머니는 답답한 얼굴로 대답한다.
"그러면 그냥, '나는 잠이 와서 자야 하니까, 쉬세요'라고 말씀드리면 되잖아요."
이제는 딸의 목소리에도 짜증이 묻어난다.
"넌 참, 모르는 소리만 하네. 네 아버지가 남의 말을 듣는 사람이니? 평생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아왔고, 그게 안 되면 낮이고 밤이고 버럭버럭 소리 지르는 사람인 거 몰라?"
소설 속 노부부는 1940년대에 태어났어. 그들은 가난한 시절에 태어나 평생을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며 살아왔지.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이제는 온몸이 성한 곳이 없어. 하지만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대화가 중요한 정서 문화가 아니었어.
남자는 생계를 책임지고, 여자는 가정을 돌보며, 아이들은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렸던 시절. 그저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때였거든.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살다 보니, 가족 간에도 서로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어.
대화는 삶을 지탱하는 도구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전달 수단에 불과했지.
소설 속 할머니는 평생 생계를 주도한 할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고충을 숨기며 살아왔어. 자식들에게조차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았지. 고통이 쌓여가도, 그걸 말할 줄 모르는 세대였던 거야.
그렇게 마음을 꾹꾹 눌러 담다 보니, 지금에 와서는 표현하는 방법조차 잊어버린 듯해.
소설 속 할머니는 늘 자식 앞에서 말하지.
“몸이 아파… 온몸이 쑤셔.”
그런데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어.
아프다는 말 뒤에 숨어 있는 건 외로움과 불안이었던 거야.
하지만 그 마음을 말로 꺼내지 못하지. 오랫동안 쌓인 감정들이 단단하게 굳어버려서 쉽게 풀리지 않는 거지.
겉으로는 통증만을 이야기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누군가 자신의 고충을 알아주길 간절히 바라는 거야.
사실, 소설 속 할머니는 늘 생각하고 있었어.
‘만약 내가 치매에 걸리면 어쩌지? 남편이 먼저 아프면 어떡하지? 자식들한테 폐만 되는 거 아니야?’
그리고 그 뒤를 잇는 또 다른 걱정.
‘내가 남편 돌보는 게 힘들다고 말하면… 자식 내외가 나를 지겨워하면 어떡하지? 혹시 나도 예전에 시어머니를 싫어했던 것처럼, 그들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이런 불안이 겹겹이 쌓여,
결국 소설 속 할머니는 아프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거야.
딸은 자신의 어머니에게 속마음을 묻곤 하지만, 할머니는 자신의 불안과 외로움을 털어놓았을 때, 돌아오는 반응이 상처라면 차라리 침묵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딸은 그런 어머니를 보며 무력감을 느껴.
사실, 딸도 어렴풋이 알고 있어. 어머니의 고통이 단순한 육체적 통증이 아니라는 걸.
그러나 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
모든 문제는 결국, 당사자가 해결해야 하거든.
소설 속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 고단한 삶을 스스로 견뎌왔고, 딸 역시 그 희생 위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왔어. 하지만 결국, 각자의 삶은 개별적인 거야.
서로를 걱정하고 보살핀다고 해도, 문제를 해결하는 건 온전히 개인의 몫이거든.
딸이 아무리 이해하고, 공감한다 해도 어머니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드러내고, 해결 방안을 함께 모색하자고 요청하지 않으면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지.
소설 속 할머니도 알고 있어.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또 한숨을 내쉬며 생각하는 거야.
‘내가 자식들한테 내 고충을 이야기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이쯤에서 넌 어떻게 생각해?
내가 만든 소설 속 인물들에게 필요한 건 뭘까?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난 고속도로 운전을 하다가 큰 사고가 날 뻔한 적이 있었어.
어쩌다가? 싶지.
초보 운전자로서 운전할 때 미처 사각지대를 보지 못했거든.
분명 백미러를 보면서 안전하다고 느끼고, 깜빡이까지 켜고 차선 변경을 했는데, 사각지대에 다른 차가 있었던 거야.
그 작은 공간 하나를 확인하지 않았을 뿐인데, 예상치 못한 충돌이 일어날 뻔했지. 실제 사고가 났다면, 어쩌면 너를 자식으로서 만나지도 못했을지도 몰라.
그런데 사람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보지 않으려 했던 감정, 들리지 않던 속마음은 대화의 사각지대에 갇혀 버리는 거야.
서로의 목소리가 전달되지 않고, 답답한 침묵만 남은 채 말이지.
소설 속 할머니의 불안과 외로움도 그 사각지대에 숨겨져 있었던 거야.
말하지 않으면 괜찮아질 거라 믿으며 외면했지만, 결국 그 작은 사각지대 속 불안과 외로움은 정신적 육체적 통증을 더 강화시키는 거지.
‘치매에 걸리면 어쩌지, 자식 내외가 자신을 지겨워하면 어쩌지… ’
그런 불안들이 그 사각지대에 숨어 있었던 거야. 누군가 들어주기만 하면 좋겠는데, 그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 거지.
하지만 운전 중에 사각지대를 보려는 작은 노력 하나가 사고를 막듯, 대화의 사각지대를 마주하려는 용기 또한 관계를 구할 수 있다고 믿어.
비록 완벽한 해결책이 없더라도, 그 공간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순간 변화는 시작되거든.
그리고 그 모든 변화의 시작은 고통을 겪고 있는 당사자인 할머니로부터라고 생각해.
소설 속 할머니가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대화의 사각지대를 인지하고, 작은 고개 돌림을 시도하는 것으로 시작된다고 생각해. 그리고 그건 우리 모두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인 것 같아.
대화의 사각지대를 외면하지 않는 작은 용기, 그게 변화를 만드는 시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