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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이니율 2시간전

나도 놀라는 내 모습

조카와 있으면 다른 사람이 된다

조카가 너무 예쁘다. 뚱한 표정도 뒤뚱뒤뚱 걷는 뒷모습도 너무 귀엽다. 이유를 모르고 칭얼거리면 당황스럽고 엄마만 찾을 땐 조금 서운하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존재 자체로도 내게 너무 많은 기쁨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조카와 있으면 나도 달라진다. 내가 모르는 모습이 나올 때면 나도 깜짝 놀란다.




나는 평소에 차분한 편이고 목소리도 중간톤인데 조카와 있으면 말도 많아지고 목소리 톤도 높아진다. 서비스를 할 때 한다는 계이름 '솔'톤이 나온다. 단어 선택도 평소 쓰던 단어가 아니다. 조카를 부를 때 '까꿍', 조카를 놀라게 할 때 '오잉', 무엇을 줄 때 '짜잔~'이라고 한다. 생각도 해보지 않은 단어들이다. 발음도 이상해진다. '어디 있어'라는 말은 '오디 있어'로, '맛있어?'라는 말은 '맛있오?'로 혀 짧은 소리를 낸다.


조카는 문을 여닫는 동작에 재미를 붙여 문만 보이면 자꾸 열고 닫으려고 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방에 들어가 문을 닫힐래 문을 열고 나도 모르게 '까꿍'이라는 단어가 입밖에 나왔다. 조카가 배시시 웃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쁘던지 팔이 아픈 것도 잊고 까꿍이라고 말하면서 문을 수십 번 열고 닫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카의 점점 반응이 느려지고 내 눈도 반쯤 감기기 시작했다. 집에 돌아갈 때는 잠이 쏟아져서 혼났다. 도착해서는 뻗어버렸다. 하루에 써야 할 에너지를 조카와 놀면서 다 써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하이톤으로 말하고 조카에게 맞춘다고 에너지가 더 바닥이 난 것 같았다. 어떨 때는 뒷날까지도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체력을 키우겠다고 다짐했지만 조카와 제대로 놀아줄 만큼 키우기엔 갈 길이 먼 것 같다.


한숨 자고 일어나 조카를 찍은 영상을 봤다. 영상 속에서 '까꿍'이라는 소리가 나오자 옆에 있던 엄마가 누구 목소리냐고 물어보셨다. 내 목소리라고 하니 놀라셨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딸의 목소리니 그럴 만도 하다. 나도 조카 영상 속에 녹음된 내 목소리가 낯설었다. 하지만 계속 듣다 보니 익숙해졌다.


내 일상도 이렇게 하이톤이면 좋겠다. 그렇다고 하루가 바뀌진 않겠지만 적어도 기분 좋게 보낼 수는 있을 것이다. 내게도, 주변에 있는 소중한 분들에게도 조카에게 하는 반이라도 한다면 세상이 더 환해지지 않을까싶다. 조카를 만나면서 나도 몰랐던 모습을 보게 되었고 깨닫는 점도 생긴다. 조카는 내게 복덩어리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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