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날로 기억하기
유린기를 만들었다. 닭가슴살을 사고, 양상추를 사고, 다시 홍고추를 사는, 재료를 하나씩 모으다시피 준비해서 유린기를 만들었다. 유린기를 만들게 된 계기는 한 예능프로그램 때문이다. 닭고기를 바삭하게 튀겨 소스와 곁들여 먹는데 어찌나 맛있어 보이던지 꼭 만들어야지 하고 다짐을 했었다.
유린기를 처음 접한 건 한 식당에서였다. 튀긴 고기에 채소가 같이 나왔는데 맛있어서 이름을 기억해 뒀었다. '유린기'라고 하는데 닭고기를 튀겨 채소에 소스를 뿌려 먹는 음식이다. 이름도 낯설고, 잘 보지 못하던 음식이라 만들기 어렵겠거니 했는데 닭고기만 있다면 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였다. 그때는 또 먹을 수 있겠지라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생각보다 유린기 파는 곳도 많지 않고 비싸서 그 이후로는 먹지 못했다. 지금처럼 TV프로그램에 만드는 법이 나오지 않았다면, 요리하기에 재미를 붙이지 않았다면 평생 못 먹었을지도 모르겠다.
고기를 잘 먹지 않는 나에게 닭고기는 유용한 단백질 공급처다. 거기다 닭고기는 맛이 좋아서 삶아서, 구워서, 볶아서 잘 먹고 있다. 맛있는 고기를 먹지 못하는 건 아쉽다. 하지만 닭고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 유린기가 닭고기로 만들어졌으니 안 만들 이유가 없었다. 오래전에 사둔 냉동 닭가슴살 먼저 꺼냈다.
닭가슴살을 해동하는 동안 양상추를 씻었다. 양상추는 바닥에 푸짐하게 깔아 먹음직스럽게 만들고 아삭한 식감을 주기 때문에 빠지면 안 되는 재료다. 양상추는 물기가 빠지도록 체에 두고, 양파를 씻어 채를 썰었다. 조금 덜어서 잘게 다져 양념장용으로 덜어두고 대파와 청양고추도 꺼내 잘게 썰었다. 양파, 대파의 상큼함과 청양고추의 매콤함이 양념장의 풍미를 높여주니 귀찮더라도 꼭 넣는 걸 추천한다. 해동한 닭고기는 얇게 저며서 다진 마늘과 소금을 뿌려 밑간을 한다. 갑자기 치킨이 생각나면 이렇게 구워 먹기도 하는데 꽤나 맛이 좋다. 양념장은 다진 마늘, 진간장, 식초, 참기름, 꿀, 레몬즙, 물을 약간 넣고 다져둔 대파, 청양고추, 양파를 넣어서 잘 섞으면 된다.
전분물을 만들어서 밑간 한 닭고기를 담가 옷을 입힌 후, 오일을 두른 팬에 앞, 뒤로 노릇하게 굽는다. 유린기는 닭고기를 튀겨 만들지만 오일을 넉넉히 부어 구워도 충분하다. 중불에서 고르고 충분히 익히면 된다. 닭고기가 익었으면 넓은 그릇에 양상추와 양파를 깔고 닭고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가운데 올린다. 그리고 양념장을 끼얹어주면 완성이다.
만들기 시작할 때는 간단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다. 양상추를 씻어 물기를 털고, 양념장용 양파와 파, 고추를 따로 쫑쫑 썰어야 한다. 닭고기는 따로 밑간을 해서 전분물에 담갔다가 구워야 하니 단계가 많았다. 바삭하게 굽기도 꽤나 오래 걸려서 하마터면 크게 화를 낼 뻔했다.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려 배가 더 고파져서인지 유린기는 꿀맛이었다. 오랜만에 한 끼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 이것이 닭고기의 힘인가 싶기도 하다. 거기다 노릇하게 기름에 튀기듯 구웠으니 맛이 없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맛있는 걸 먹고 나니 기분도 좋아졌다. 유린기 만드는 날은 유린기만큼 특별한 날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