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 잡채의 변신
길었던 설 연휴가 지나고 일주일이 흘렀다. 친척들을 만나며 즐겁게 보낸 시간이 생생한데 저번주 일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설이 지나간 것이 가장 실감 나는 건 냉장고 속 풍경이다. 평소에는 잘 먹지 않는 음식들이 있기 때문이다.
손이 많이 가서 평소에 잘 만들지 않는 각종 전과 엄마가 듬뿍 만드신 나물들, 양조절을 실패해 먹어도 줄지 않는 잡채까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중 전과 잡채는 갓 만들어서 먹을 때는 정말 맛있지만 먹다 보면 느끼해서 점점 손이 안 가게 된다. 그래도 빨리 먹어야 하니 그동안 이런저런 요리를 해서 먹었다. 전은 전찌개로, 잡채는 계란을 넣어 전으로 부쳐 먹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마저도 당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만두가 떠올랐다. 만두는 고기, 당면, 각종 채소를 넣고 얇은 피에 싸서 먹는 음식인데, 고기와 당면은 전과 잡채의 주재료이니 그대로 사용하면 맞겠다 싶었다.
우선 전과 잡채를 잘게 잘라야 한다. 큰 볼에 넣고 가위로 잘랐는데 도마에 놓고 칼로 다지는 것을 추천한다. 양이 작아서 가뿐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밀도가 있어서 자르기 힘들었다. 손가락이 아파서 몇 번이나 도마를 꺼낼 뻔했다. 전과 잡채에 많은 재료가 들어있어 충분하지만 만두에 빠지면 안 되는 재료가 있다. 바로 두부와 김치다. 두부는 부드러운 맛을 내주고 김치는 아삭한 식감을 더해주기도 해서 넣는 것이 좋다. 혹시나 짤 수 있는 간을 맞춰주기도 하기 때문에 같이 넣는 것을 권한다. 간은 진간장, 참기름, 깨소금을 넣어 맞추고 반죽이 많이 질다면 계란이나 밀가루를 넣어 농도를 맞춘다. 맛을 봤을 때 짭짤한 정도의 간이 좋다. 생강즙이 있다면 손톱 반만큼 넣어주면 깔끔한 맛을 낼 수 있다.
이제 잘 치대서 빗기만 하면 된다. 만두피 가장자리에 물을 발라 가운데 만두소를 넣고 반으로 접어 주름 잡아가며 빗는다. 찜기에 물을 넣고 끓인 후, 김이 올라오면 만두가 서로 붙지 않도록 잘 떼서 가지런히 놓고 뚜껑을 닫아 익힌다. 속재료는 다 익은 상태라 만두피만 투명해지면 불을 끄면 된다.
맛을 보니 전과 잡채의 풍부한 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말을 안 하면 재활용한 음식이라는 걸 모를 정도로 그럴싸했다. 만두는 원래 재료 하나하나를 다듬고 다져야 한다. 당면과 숙주는 따로 삶거나 데쳐서 헹군 후, 잘게 잘라서 넣어야 하기에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명절음식을 활용하니 순식간에 만두를 만들 수 있었다. 찜기에 물 올려놓고 만두를 빚어가며 바로 찌면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만든 자리에서 뜨거운지도 모르고 손으로 후후 불어가며 10개를 먹어치웠다. 오랜만에 만두를 먹은 탓일까, 갓 만들어서 맛있었던 것일까. 너무 만족스러워서 일부러라도 전과 잡채를 만들고픈 마음이었다. 돌아오는 추석에 전과 잡채가 남으면, 아니 꼭 만들어서 따로 빼서 만두를 빚어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