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을 시키지 않는 그 '자만심'에 대하여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에게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는다.
아이의 발달단계를 무시하지 않겠다는 교육학 전공자의 나름대로의 철학.
아이의 공부정서를 해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
( 임작가의 '완전학습 바이블'이라는 책에서 공부정서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아주 크게 공감했었다.)
내 아이는 내가 알아서 적당한 속도로 가르쳐도 잘할 것이라는 조금의 자만심이 뒤섞인 선택이었다.
아이는 수학 문제집 한 권 풀어보지 않고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학교에서 교육과정에 따라 배우면서 학습에 흥미를 갖기를 바랐다.
그동안 억지로 공부시킨 적이 없으니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학습 결손이 생기지 않게 아이의 학습상태를 확인하며 복습만 시킬 생각이었다.
선행학습에만 집중해서 의외로 여기저기 학습결손이 생기는 경우를 종종 봐왔었다.
덧셈, 뺄셈이 제대로 안 되는 아이에게 곱셈, 나눗셈을 시키니 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운동화 끈이 풀렸는데 다시 묶을 생각은 하지 않고, 무조건 빨리 뛰라고 재촉하고 다그치니
자꾸 넘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긴 호흡으로 가야 한다.
그래야 아이도 나도 힘들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아직은 아이가 귀여웠다.
한글 받침을 모조리 틀리게 쓰는 아이의 지렁이 같은 글씨가,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덧셈, 뺄셈을 하는 아이가 사랑스러웠다.
너무 빨리 커버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2학기가 되었고, 받아쓰기를 한다는 담임선생님의 안내를 받았다.
처음 받아쓰기 연습을 시켰고 60점이 나왔다.
틀린 글자를 알려주고 다시 한번 써 보라고 했다.
그게 끝이었다. 그 정도 연습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잘할 줄 알았다.
나는 초등학교 때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깨우치는 아이였다.(물론 초딩 때 한정)
처음 입학하고 공부가 너무 재밌었다. 새롭게 알게 되는 모든 것들이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그 어린 나이에도 받아쓰기를 틀리거나, 구구단을 못 외워서 나머지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당연히 엄마와 받아쓰기 연습 같은 건 해본 적 없어도 늘 100점을 받았었다.
그런데,
첫 받아쓰기를 하는 날 담임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아이가 받아쓰기를 너무 못해서 교실에서 많이 울었다고 했다.
도대체 얼마나 못했길래 울기까지 했는지...
퇴근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서 확인하니 믿을 수 없는 점수였다.
40점.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의 내가 그렇게 이해할 수 없었던 받아쓰기 40점 받는 아이
교사가 된 내가 왜 받아쓰기 연습을 안 시켜서 보냈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그 학부모
그것이 바로 '우리'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