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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Feb 24. 2024

새가 내게 다가온 순간들

새를 보는 따뜻한 눈


새는 내게 한 번에 다가오지 않았다. 아주 서서히 다가왔다. 몇십 년에 걸쳐 스며들 듯 들어와 내 마음 한 곳을 차지했다. 먹고사는 것이 급해 새는 물론 자연에 관심 없던 시기도 있었으며, 한동안 잊고 지내다 겨울 철새들이 오는 겨울에만 관심을 두기도 했었다. 금강이 가까운 곳으로 삶터를 옮긴 이후 더 관심 두고 관찰하고 있다.


오늘 겨울 철새를 관찰하러 나갔다가 바람만 휑한 강을 바라보는 아쉬움을 이겨내려 지금껏 렷이 남아 있는 새에 대한 기억을 되새겨 보았다. 아득한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 스미듯 다가온 순간이었다. 잊고 싶지 않고 떠올리면 그리운 소중한 기억들이다.

    

가장 오랜 기억은 참새와 제비다. 내 어린 시절엔 참새가 참 많았다. 떼로 몰려와 막 익어가는 벼를 까먹어 가을 농부에겐 미운 새였다. 논에서 참새를 쫓는 일은 나 같은 꼬맹이에게 맡겨졌다. 이쪽 논둑에서 쫓으면 저쪽으로 갔고 저쪽 논둑으로 달려가면 이쪽으로 몰려왔으니 어린 다리로 그것도 날개를 쫓아다니기엔 많이 모자랐다. 그래도 우두커니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는 허수아비보단 나았을 게다.

    

제비는 봄이면 진흙 덩이로 처마 밑에 집을 지었다. 흙집 아래 판자를 대어 똥이 마루에 떨어지지 않게 하였다. 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참새와 달랐다. 어미가 먹이를 물고 오면 붉은 입을 크게 벌리며 목청을 높이던 새끼들도 크고 강남으로 갈 때면 수백 마리가 전깃줄에 줄지어 앉아 있었다. 마치 출정식을 하며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듯 했다.

    

노고지리로 불리던 종다리(종달새)는 하늘 높이 날아올라 숨을 참아가며 길고 높은 소리로 울어댔다. 수컷은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더 오래 날아다니며 소리치며 노래해야 했다. 종달새의 긴 울음소리가 높은 하늘에 가득하면 봄이었다. 지금은 개체수가 급감하여 그리운 새가 되었다. 내 어린 시절을 함께한 참새와 제비, 종다리 기억하고픈 순간들이다.

     

가창오리의 군무는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고향에서 설을 지내고 귀경길에 한적한 국도를 달리다 우연히 보았다. 어둑한 하늘을 휘몰아치듯 갖가지 형상을 만들어 놀라웠고 붉은 노을과 어울려 아름다웠다. 잊지 못해 금강 하굿둑을 일부러 찾아갔으나 보지 못했다.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보고 싶다.

    

당황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아파트 발코니에서 키우던 딸기를 직박구리가 쪼아 먹은 후 이 녀석을 또 오게 하고 싶었다. 홍시를 좋아하는 습성을 이용했다. 발코니 밖 철재 난간에 홍시를 놓아두었다. 마침 먹이가 부족한 겨울이라 금방 날아왔다. 내놓는 홍시가 늘어났고 모여드는 직박구리도 많아졌다. 숲 속의 수다쟁이답게 시끄러웠고 다툼도 벌어졌다. 다투다 밀려 발코니 안으로 들어오면 나가려다 유리창에 잇달아 부딪치면서 발버둥질했다. 열린 문을 스스로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놀란 새의 눈과 마주치면 나도 같이 어쩔 줄 모른다.

     

내륙에서 바닷새인 재갈매기를 만나는 의외의 순간도 있었다. 갈매기 비슷한 새가 있어 도감으로 동정하고 인터넷 검색으로 확인했다. 강 하구에서 서식하는 갈매기류가 서해에서 한강이나 금강을 따라 내륙으로 는 사례가 단다. 태풍이나 기후변화로 본래 서식지나 이동경로를 벗어난 길잃은새는 아니었다.

      

해가 갈수록 철새가 줄어든다. 개체수가 감소한 건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갔는지 모르지만 더 좋은 터로 갔으면 좋겠다. 보통 백조로 부르는 큰고니는 몸이 크고 발이 검어 바로 알 수 있는데 예년에 보던 장소에 한동안 오지 않았다. 아침에 출근하는데 큰고니 20여 마리가 활공하며 무논에 내려앉았다. 급하게 오후에 조퇴하고 망원경을 챙겨 갔는데 그때까지 무논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다. 와줘서 반가웠고 기다려줘서 고마웠다. 반갑고 고마운 순간이었다.

     

사실 이 사람을 말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 새 관련 책을 검색하다 우연히 발견한 책 “시민과학자, 새를 관찰하다”의 저자다.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새를 보는 가장 따뜻한 눈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많은 사람이 이런 눈으로 새를 바라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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