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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May 12. 2024

꽁지 빠진 새

꽁지는 방향타이자 위엄이고 유혹이다

그림은 혜원 신윤복의 투계도(鬪鷄圖)다. 붉은 수탉이 목 깃털을 곧추세운 채 기세 있게 거리를 좁혀오고 이에 굽히지 않고 검은 수탉은 자세를 낮추어 공격 자세를 취하는 형국으로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살아 움직이듯 표현되었다.

    

이 그림 묘사처럼 수탉들은 우두머리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싸운다. 싸움에 진 닭은 볏이 찢기고 피로 물들며 더러 꽁지의 털도 빠진다. 꽁지에서 털이 빠지면 볼품이 없어지고 힘을 잃는다. 그런 모습에서 “꽁지 빠진 수탉(닭, 새)”이라는 볼품이나 위신이 없어 보임을 비유하는 말도 생겨났다. 이처럼 수탉에게 크고 멋진 꽁지는 수컷으로서 징표이며 한편으로는 위세의 상징이다.

    

또한 수컷 공작에게 꽁지는 번식기에 과시와 구애의 수단이 된다. 꽁지의 화려한 장식깃은 포식자의 눈에 쉽게 띄어 생존에 불리할 수 있으나, 암컷 눈에는 매력으로 작용하여 결과적으로 자손을 많이 퍼트릴 수 있다는 다윈의 성선택 이론을 설명하는 사례가 된다. 이럴 때 새에게 꽁지는 품격이자 유혹이다.

     

꼬리와 꽁지는 구분 없이 같은 의미로 흔히 사용되나 사전적 의미는 다소 다르다. 꼬리는 “동물의 꽁무니나 몸뚱이의 뒤 끝에 붙어서 조금 나와 있는 부분”인데 꽁지는 “새의 꽁무니에 붙은 깃”을 뜻하므로 새에 국한된 단어이다. 새는 날기 위해 몸을 가볍게 하는 방향으로 진화되었고 그 과정에서 꼬리뼈가 점차 퇴화하고 깃이 대신하게 되었다. 꼬리와 꽁지는 사회적 신호 전달 수단이며 달리거나 날 때 균형을 잡는 등 유사한 기능을 가진다.

     

꽁지는 꽁지깃과 꼬리덮깃으로 구성되며, 꽁지깃은 날개깃과 마찬가지로 비행할 때 공기를 강하게 밀어내야 하므로 깃털이 튼튼한 맞물림 구조로 되어 있다. 많은 새가 12개의 꽁지깃을 가지며 중앙꽁지깃과 바깥꽁지깃으로 구성된다. 중앙꽁지깃은 깃대를 기준으로 좌우대칭이며 바깥꽁지깃은 비대칭으로 중앙에서 먼 꽁지깃일수록 더욱 비대칭을 이룬다. 꼬리덮깃은 꽁지깃을 위와 아래에서 덮고 있는 깃털이며 공작의 꼬리 장식깃은 위꼬리덮깃이 크고 화려하게 발달한 것이다.

<꽁지를 구성하는 부위별 명칭>


꽁지의 형태와 크기, 색깔과 무늬도 각양각색이다. 일반적으로 비행을 위해 유선형에 넓고 평평하다. 꽁지 크기도 가지가진데 바다오리, 팔색조, 물총새와 뜸부기는 짧은 편에 속하고 까치, 꿩, 긴꼬리딱새는 몸에 비해 긴 편이다. 제비의 꽁지는 끝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어 공기역학상 이점으로 작용해 빠르게 비행하는 데 도움 된다. 색깔은 대부분 몸과 비슷하나 다르기도 하며 다양하다.

    

기능도 다양하다. 비행 시에 방향을 조정하며, 착지할 때는 넓게 펴서 속도를 줄이고 멈추게 하므로 방향 조종과 속도 조절 등 비행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땅에서 걷거나 나뭇가지에 앉아 있을 때는 몸의 균형도 유지한다.

     

딱따구리는 나무에 기어오르거나 구멍을 뚫을 때 꽁지로 지지대 삼아 몸을 지탱해야 하므로 꽁지는 뻣뻣하며 다소 거칠게 사용되어 빠르게 마모된다. 나무발바리도 딱따구리처럼 꽁지로 몸을 지탱하여 나무에 오르며 먹이를 찾는다.

    

의사소통과 경고 신호에도 이용된다. 딱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있을 때 꽁지를 위아래로 흔드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포식자가 근처에 있을 때 더 자주 흔들어 위험을 인지했음을 표시한다. 이런 경고와 위협 신호로 굴뚝새는 꽁지를 치켜드는 습성이 있으며, 할미새와 도요새 무리는 꽁지와 함께 몸통까지 위아래로 흔들어 마치 춤을 추는 듯하다. 이런 행동은 주로 경계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으나 아직 밝혀지지 않는 다른 의도도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공격받거나 두려움을 느낄 때 꽁지깃을 뽑아 빼고 도망가기도 하는데 꿩이 놀라 푸드덕 날아갈 때 간혹 깃이 빠지는 걸 볼 수 있다. 꽁지 빠지게 도망간다는 말도 그냥 생겨나지 않았다.

    

새는 지구 모든 곳에서 살고 1만여 종에 이를 정도로 번성하고 먹이도 다양하여 먹이사슬의 상위 포식자이기도 하다. 이렇게 특별한 존재가 되는데 깃털이 큰 몫을 했고 거기에는 꽁지 역할도 빼놓을 수 없이 중요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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