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가족 화합도 있지만
이번 일본 여행 가이드는 남편이었다.
일정도, 렌터카와 숙소 예약도, 비행기 티켓 예매까지 모두 남편이 담당했다. 남편은 나에게 미리 국제면허증으로 바꿔 놓으라고 했었지만 하필이면 '깜빡' 잊는 바람에 운전도 남편만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남편밖에 없으니 그는 자연스럽게 통역까지 맡게 되었다.
한마디로 이번 여행은 데려가는 대로 따라만 다니면 되었던 '단체관광'이었던 셈. 내가 정할 수도 없이 아기새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단체관광 스타일이 과연 좋았느냐고? 100% 만족했다! 어른들이 왜 그렇게 가는지 이번에 제대로 이해했으니까.
여행 갈 때 계획이 있어야 할까?
나는 원래 여행 갈 때 계획 잡은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신혼여행도, 결혼 초 남편과 둘이 한국에서 여행할 때도, 둘이 제주도에 갔을 때도, 미국에서도 우리 여행에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편이었다.
늘 그런 건 아니다. 평소에는 할 일 리스트를 만들어 지워나가는 데에 희열을 느낀다. 하지만 여행만큼은 '해야 할 일'과 거기에 맞춰 '기한안에 지워야 하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여행은 쉬러 가야 하는데 촘촘한 계획이 들어가는 순간 그저 일에 불과해졌으니까.
하지만 일본 여행은 그럴 수는 없었다. 숙소를 미리 잡아놔야 했다. 그러려면 일정이 나와야 했고, 일정을 짜라면 '뭘 할지'가 정해져야 했던 것. 평소와 달리 남편이 나에게 물었다.
"일본에서 제일가고 싶은 데가 어디야?"
귀찮다. 그냥 알아서 해주면 좋겠다. 바쁘기도 했다. 그래서 대답했다. "나는 먹으러 가는 거니까 어딜 가도 다 좋아"라고.
원래 일본은 먹으러 가는 곳 아닌가요?
첫째가 어렸을 때 1년 정도 일본에 살았다. 처음에는 임신 중이었고, 한국에서 출산하고 돌아간 뒤로는 아이가 어렸다. 그래서 별로 한 건 없다. 지금 내 기억에는 '먹었던 것'으로만 꽉 차 있다.
1. 집은 미조노구치라는 지하철역에서 내려 15분 걸어야 했는데, 그 역에는 마루이 백화점이 있었다. 지하 음식 코너에 수십 개의 상점이 입점정해 있었는데, 모양도 훌륭하거니와 뭘 집어도 맛있었다. 폐점 시간이 다가오면 할인을 시작하던 그곳. 한 바퀴 돌면 80%로, 다시 한 바퀴 돌면 50%로 쭉쭉 내려갔다. 남편은 종종 그곳에서 저녁을 사 오곤 했다. 반 값하는 것으로 한 봉지 가득 채워서.
2. 집 앞에는 15층 정도되는 큰 건물이 있었는데, 그 안에 여러 회사들이 있었다. 점심시간만 되면 5층 레스토랑에서 일제히 점심 도시락을 가판에 놓고 팔았다. 2010년 당시 거기에 있던 모든 도시락은 500엔이었다. 종종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을 하는 척 가판대가 열리길 기다리기도 했다. 역시나 뭘 먹어도 맛있었다.
3. 그 큰 건물 맞은편에는 1층짜리 건물이 있었다. 라멘집이었다. 임신 중 종종 가서 사 먹었는데 한 번도 그릇을 다 비워보질 못했다. 미소, 쇼유, 돈코츠 라멘을 다 다루었는데도 뭐든 다 제대로였다. 그 집이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며 마지막 영업을 알리자 매일 줄이 늘어졌다. 앞에 서있던 한 아이가 선물을 전해주는 걸 봤다. 카운터를 보니, 그 아이만 선물을 준비했던 건 아니었나 보다. 동네 라멘집은 라멘 국물만큼 뜨끈한 정이 있었다.
그래서 '일본'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곧 '먹는 곳'이었던 거다.
그중에 뭐가 제일 먹고 싶냐 물으신다면
남편이 또 물었다.
"뭐가 먹고 싶은데?"
"그 뭐..... 아무 데나 들어가서, 아무거나 먹어도 맛있지 않나?"
진심이다. 막연하게 소바나 라멘이 먹고 싶긴 했다. 아침 식당에서 파는 규동 생각도 났고, 일본의 제대로 된 초밥을 맛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렇긴 해도 이건 반드시 먹어야 해! 는 아니었다.
내 혀는 음식에 까다로운 편이 아니다. 남이 해준 음식은 다 좋다. 여행지에서는 특히나 마음이 너그워져진다. 그냥 맛있게 먹을 마음의 준비는 이미 다 마친 셈.
게다가 '뭘 먹겠다' 정해놓는다고 그대로 되기도 어렵지 않은가?
애가 있으면, 특히 애가 셋 정도 되면 더 그렇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눈앞에 있는 아무 식당에 들어가야 하는 일이 많다. 보기가 여러 개라고 내 취향대로만 선택할 수도 없다. 취향이 제각각인 5명의 의견을 조율하다 보면 조금씩 지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무거나… 대충 먹자…'의 마음이 솟아난다.
그래서 이번에 어땠을까? 뭘 먹었으며, 정말 다 맛있었을까?
(다음 이야기는 음식 사진들로 채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