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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 만에 딸을 만났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떨어져 있었다 

by 자몽 Aug 19. 2024



그녀가 짐을 차곡차곡 싸서 남편의 손을 잡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2학년을 마치고 여름방학 한지 3일 뒤, 6월 2일이었다. 


까만색 트렁크 안에는 서점에 가서 산 책 3권, 엄선해서 고른 옷들, 양말과 삔, 곱셈놀이판, 피아노 악보 2권, 워크북 2권 등이 들어있었다. 


한국에서 친구가 보내준 사진



앞서 말했듯, 나는 괜찮았다. 


갑자기 하게 된 이사로(6월 10일), 혼자 그 짐들을 정리하느라, 가스 연결이 끊어져서, 아들 둘 도시락을 싸대느라, 매일 2시간씩 라이드를 해야 했기에, 휴스턴에 닥친 허리케인 덕분에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뇌가 생각을 담아내지 못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날들은 딸과 통화하기 위해 1
2시까지 기다려야 했고, 새벽 6시에 알람을 다시 맞췄다. 앞은 하교 시간에 맞춘 것이고, 뒤는 태미가 잠들기 전이다. 덕분에 아이들 학기 중보다 더 잠이 부족했고, 그만큼 머리는 흐릿했다. 그래서 더 괜찮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새벽에 일어나 통화하는데 아이가 "엄마 나 미국집 지금 가고 싶어"라는 거다. 새 집은 어떤지, 자기 방에 침대는 어떻게 놓았는지, 정리는 얼마나 했는지 매일 보고해야 했다. 시간이 갈수록 미국에 오고 싶다 말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급기야 "엄마가 가라 그래서 온 거잖아"는 말이 가슴을 후볐다. 미안해졌다.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도. 


처음 학교에 갔던 날


그 뒤로 나는 아이가 자기 전에는 통화하지 않으려고 했다. 왜냐하면 저 말은 대부분 자기 전 통화에서 나온 말들이고, 진심이긴 하겠지만 '자기 싫어서'도 다분히 섞여 있는 걸 알았기 때문. 

하교 시간에 맞춰 전화하면 아이는 바빴다. 친구와 놀아야 해서, 학원에 가야 해서, 그냥 노느라고. "엄마, 나 놀이터 가는 길이야. 빠이-" 라며, '엄마가 보고 싶다던 아이'는 전화를 끊었다. 친구가 많아질수록 더 그랬다. 그러니 사실 잘 지냈다-고 보는 쪽이 맞다. 






그래, 괜찮긴 했지만 나도 엄마인지라 딸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7월 28일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태평양 바다 어딘가의 위를 날고 있을 때, 아니 그보다 나리타 공항에 먼저 도착해 딸을 기다릴 때 설레었다. 


나와 아들 둘(9학년 첫째와 6학년 둘째)은 30분 차이로 공항에 먼저도착했다. 수속을 마치고, 2개의 가방을 찾은 후 출구 구멍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자 수십 개의 눈이 이쪽을 향한다. 가족을 기다리는 듯한 설레는 눈, 출장 온 사람을 맞는 듯 건조한 눈, 여행객을 맞이하려는 지친 눈이 뒤섞여 어지럽다. 


나는 곧 그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번에는 내가 기다릴 차례다. 설레는 눈을 하고. 

비행기가 멈췄다는 연락은 받았다. 아이는 어떤 표정으로 날 바라볼까, 어색해하지는 않을까, 준우와 승우는 동생을 보며 뭐라고 할까, 남편은 피곤한 상태일까, 가방은 몇 개 들고 갔더라, 뭘 입고 오려나, 그나저나 이 출구가 맞나? 30분 남짓의 시간 동안 참 많이 두근거렸던 것 같다. 



열린 문으로 남편이 보인다. 앞을 가로막았던 여자가 발걸음을 옮기자 딸도 보인다. 까만색 트렁크를 밀고 있다. 사진으로만 보던 보라색 유니클로 치마에 하얀색 셔츠, 반 정도만 파마한 머리는 풀고 있다. 처음 보는 머리띠에, 내 친구가 사줬다는 캔버스 신발. 떠날 때 두르고 갔던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순간 아주 조금은 낯설었던 것 같다. 

"자기야! 태미야" 남편이 두리번거린다. 나를 본다. 환하게 웃으며 "어, 엄마 저기 있다!"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다. 아이의 고개가 바쁘게 돌아간다. 다시 한번 아이를 부른다. 드디어 눈이 마주친다. 2개월 만이다. 환하게 웃으며 나를 본다. 다가와 나를 안는다. 그 순간, 아이는 눈을 피한다. 입꼬리도 어색하게 올라간 것이, 엄마가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나 보다. 


그 순간 조금 미안했다. 내가 한국으로 밀어낸 것 같아서. 아이 마음은 생각하지 않고 보낸 것 같아서. 

그래도 괜찮다. 앞으로 2주간 우리는 내내 살 맞대고 붙어있을 거니까. 그리고 그 뒤로도 내내 같이 살 거니까.


7월 28일, 그렇게 우리 다섯 가족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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