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370가지 음식은 먹지 않았을까
남편은 원래 미국에 있는 동안에는 저녁을 먹지 않았다.
아침엔 오트밀에 블루베리와 견과류를 넣어 먹었고, 배부르면 숟가락을 놓았다.
그렇게 건강한 몸을 만들어야 한국에 있는 동안 잦은 회식에도 몸이 견딘다고 했다.
(1년의 반 이상을 한국에서 지낸다)
하지만 일본 여행 후 그는 변했다.
아침에 아이들을 주기위해 (버터, 마요네즈, 치즈가 들어가는)그릴치즈를 만들고 있으면 옆에서 자기도 만들어 달란다. 애들 도시락 싸고 남은 제육볶음을 아침부터 먹고 있다. 사다 놓은 블루베리는 상해서 버렸다. 식당에 가면 배가 불러도 계속 먹는다. 생소하다.
"일본에서 너무 먹었더니 예전처럼 못 먹겠어"
그랬다. 2주간 우리 다섯 가족은 참 많이도 먹었다.
맛있는 게 너무 많았다. 배가 쉴 틈이 없었고, 조금이라도 비면 또 넣었다.
(글로 남길 작정이었다면 사진을 많이 찍어왔을 텐데, 쉬러 간 여행이라 사진이 많이 없다. 아쉬울 따름이다)
양쪽으로 빼곡한 나무 사이를 한참 지나자 시골길이 나타난다. 드문 드문 집이 보인다. 정리된 모습은 없는 그냥 쌩 시골이다. 점심 때는 지났고, 언제 음식점이 나올지 알 길이 없다.
"아무 데나 보이면 들어가자!"
그래서 들어갔다. 음식점이 보여서.
남편이 뭔가를 시켰고, 우리는 기다렸다. 곧 생선 무리가 등장했다. 가지런히 접시에 누워 입에 나무 막대기가 꽂힌 채 펄떡거리고 있었다. 아 뭔가... 미안했다. 방금 전까지 헤엄치고 있었을 텐데, 어느 커다란 손에 잡혔을 테고, 그 손이 너의 입에 무지막지하게 막대기를 꽂아 버렸겠지. 그리고 넌 곧 죽겠지...
내가 작은 죄책감에 젖어있을 때, 서빙하시는 분은 바쁘게 소금을 치고 있었다. 하얀색 알갱이들이 물고기 위에 거칠게 내려앉았다. 어쩐지 움직임이 더 격해진 느낌이 들었다.
물고기들은 작은 구이 기계에 하나 둘 들어가 누웠다. 뜨거운 불이 기다리는 그곳에 무력하게. 그리고 잠시 후 펄떡거림이 멈췄다. 생생하던 눈은 하얗게 변해 있었다. 한 생이 끝나버렸다.
짧은 애도를 표하고 내 앞에 놓인 한 마리를 해체했다. 크기는 작고, 뼈는 많고, 내장은 썼지만 살은 맛있었다. 그랬다.
그리고 고등어 초밥은 더 맛이 있었다. 그래서 먹고, 또 시켰고, 또 시켰다.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을 때까지 먹었다.
우리는 세 군데의 료칸에 머물렀다. 특색도, 위치도 모두 달랐던 곳들. (이건 후에 따로 이야기하기로)
A는 저녁은 정통 음식을, 아침은 뷔페를 제공했다. 서양 호텔은 아침에 오믈렛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지만, 여기는 계란말이를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다른 한 손으로는 3종류의 생선을 구우면서.
하나하나 정성이 가득했다. 맛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멈출 수가 없었다.
B는 아침저녁이 모두 뷔페였다. 뷔페는 조절이 어렵다. 위험하다. 아침 먹은 게 아직 위장에 남아있었지만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카레나 냄비국수 중에 골라야 했다. 뷔페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로비에는 늘 간식이 있었고, 복도에는 생맥주를 따라 마실 수 있었다. 사육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C는 쿠폰을 줬다. 8개쯤 있는 식당에서 한 사람당 3,000엔만큼 먹을 수 있었다. 먹고 싶던 텐신항은 고작 780이었다. 다음날이 되면 돈이 사라지기에 우리는 15,000엔을 채우기 위해 무리했다. 배달해 주는 로봇은 우리 테이블을 향해 끊임없이 다가왔고, 나는 목구멍까지 먹었다. 미련하게도.
규동이 종종 생각났다. 고슬고슬한 밥에 가득 올라간 얇은 고기들, 거기에 곁들여먹던 따스한 미소국까지. 그 아침 한상이 종종 그리웠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규동은 먹고 싶었다. 라면도, 스시도 아니고 규동만은 먹고 싶었다.
운이 좋았다. 첫 숙소 근처에 규동집이 있었기에 첫 아침을 규동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숙소 근처에도 규동집이 있었기에 마지막 아침식사도 규동으로 마무리했다.
미국에선 아침에 별로 들어가지도 않더니 일본에 오니 입맛이 돌았다. 아침부터 밥을 먹기는 참 오랜만이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술술 잘 넘어갔다.
'그래 이거지!'
역시 규동은 내 취향이었다. 마지막 날 먹었을 때는 작은 팬에 고기가 구워져 나온 것을 선택했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불맛이 살짝 들어가 일반 규동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거기에 얇게 썬 양배추로 만든 샐러드와 미소국까지. 행복했다.
이렇게 한 상이 5불이다. 미국이었다면 15불은 되었을 것 같은데, 5불이다.
메뉴를 매일 바꿔가며 한 달 내내도 먹을 것 같다.
일본 회전초밥 체인점 '쿠라스시'는 미국에도 있다. 캘리에 살 때도 있었고, 휴스턴에도 있다. 아이들이 초밥을 좋아해서 종종 가는데 '음... 그닥'이다. 가격은 갈수록 오르고, 퀄리티는 조금씩 떨어지는 것 같다.
미국 쿠라스시랑, 일본 본토의 쿠라스시랑 비교해 보자!
그래서 가봤다. 나는 이 체인점이 일본에서도 흥한 곳인지는 몰랐다. 일본 내에서도 가성비 덕에 인기가 많았던 모양이다. 입구 밖에 서있던 기계에 인원을 입력하니 대기만 1시간이 넘었다. 200명은 족히 들어갈만한 커다란 홀에는 이미 먹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고, 옆에 대기석에도 자리가 없었다.
3명, 2명으로 나눠서 다시 대기를 걸었다. 마찬가지로 1시간 이상. 하지만 5명보다는 줄이 금방 줄 것 같았고, 우리는 꽤 빨리 들어갈 수 있었다.
생각보다 다양하진 않았지만(일본 쿠라는 종류가 100개는 있는 줄) 맛있었다. 가격도 착해서 가성비 생각하면 감동할 지경이다.
딸과 내가 둘이 먹고 낸 돈은 1,790엔이며, 환율 계산하면 13불도 되지 않는다.
(아, 그렇다고 쿠라에서만 스시를 먹었던 건 아니다)
나는 내가 일본 ‘음식’을 그리워하고 있다 생각했다. 그래서 가서 먹고 싶은 리스트에는 '한 끼 음식' 생각만 했다. 하지만 이번에 가서 깨달았다. 내가 그리워 한 음식에는 간식도 포함이었다는 걸. 그래서 간식 배도 남겨두었어야 한다는 걸.
장어덮밥이 조금 먹어보고 싶긴 했다. 마침 교토 숙소 옆에 장어덮밥 집이었다.
비가 막 그쳤던 어느 날 저녁, 우리 다섯은 가게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작은 곳이었다. 장어덮밥은 일본에서 먹은 음식 중 비싼 축에 속했는데, 맛은 있었다. (실제로 시장에 가보니 장어 자체가 비싸다)
처음 규동을 먹고, 다음날은 빵집에 갔었다. 일본은 빵이 맛있으니까.
그리고 그다음 날엔 다시 규동집에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규동집으로 가던 길 발견한 소바집!! 테이블 몇 개 없는 낡은 가게가 마음에 쏙 들어왔다. 아저씨는 열심히 아침 장사를 준비하며 튀김을 하는 중이었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시켰다. 나는 찍어먹는 소바를 시켰다. 그게 그리웠다. 이후에도 소바를 몇 번 먹긴 했지만 이 가게에서 풍기는 사람 냄새가 가장 좋았다.
일본 가기 전에는 전혀 떠오르지 않던 음식 중 하나가 함박 스테이크다. 어느 쇼핑몰의 레스토랑 리스트에서 사진을 보는 순간, '이건 또 먹고 가야지' 싶었다. 막상 그때는 먹지 못했지만, 나중에 기회가 닿는다. 소스와, 치즈가 올라간 함박 스테이크가 어우러진 맛이 일품이었다.
아이들 유리공예 체험을 하러 갔다. 바로 시작할 수가 없어 바로 앞에 있던 소바집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배가 부른 상태였던 터라 가볍게 시켰다. 가츠동과 우동 소바 같은. 가츠동은 집에서 가끔 만들어주던 메뉴지만 이런 우동은 일본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게 아닐까?
다 담지는 못했다.
음식으로 하나의 글을 채운다는 게 애초에 말이 안 된다. 심지어 라멘 사진도 없지 않은가?!
그래도 이렇게 어느정도 한 페이지에 모아두니 여간 뿌듯한 게 아니다. 앞으로 나는 일본 여행이 그리워지면 이 페이지부터 열어볼 것 같다. 일본여행은 먹으러 간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