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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 Sep 10. 2024

5인 가족에게 필요한 화장실 개수는

몇 개라고 생각하시는지? 

<우리 집 가족 구성원>
1. 마흔 중반 나
2. 마흔 중반 남편
3. 고등학생 아들 (14살, 9학년)
4. 중학생 아들 (11살, 6학년)
5. 초등학생 딸 (8살, 3학년) 



화장실 2.5개


미국 온 지 9년. 

캘리포니아의 첫 번째 집은 화장실이 2.5개, 두 번째 집은 2개였다. 텍사스 와서 살았던 첫 집은 다시 2.5개가 된다(손님용 화장실은 0.5개로 친다). 


5인 가족이 살기에 샤워기 2개는 넉넉하지는 않아도 충분한 개수다. 하지만 만약 1개를 못쓰게 된다면(쓸 수는 있지만 수압이 약하다고 아무도 쓰지 않았다), 그래서 몸은 변신했으나 정신은 충분히 자라지 못한 아들과 그냥 어린 딸이 같이 써야 한다면, 그건 문제가 된다. 



투명한 샤워부스 안에서 아들이 샤워를 하는데, 옆에서 딸이 양치를 한다거나. 

아들이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있는데, 딸이 오빠의 그곳을 쳐다본다거나. 

딸이 샤워를 하는데 아들이 지나다닌다거나. 

그런 일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매일 말이다. 


안 되겠다! 애들 더 크기 전에 화장실 더 많은 집으로 가자!! 





화장실 4.5개 


새로 이사한 집은 화장실 4.5개다. 세면대는 7개, 가장 중요한 샤워기는 5개다. 


이제는 아무 문제가 없다. 막내는 자기 방에서 씻고, 1호와 2호는 그들의 방에서 차례로 씻는다. 샤워를 각자 방에서 하니 양치도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방에서 하기 시작했다. 이제 안방 화장실은 오롯이 남편과 나만 쓰며, 내 세면대는 나 혼자 쓴다. 9년 만이다. 


게스트용 화장실과 안방 화장실 (샤워부스가 없다!)






5인 가족이 화장실 1개 집에 산다면?


2주간 일본 여행을 하며 6곳의 집에서 살았다. 에어비앤비 2곳, 료칸 3곳, 호텔 1곳. 경험할 수 있는 숙박의 형태는 거의 다 해봤지 싶다. 이 중 화장실이 두 개인 집은 한 곳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1개였다. 

물론 예전에도 호텔에 묵을 때면 화장실이 1개이긴 했다. 수건은 여기저기 정신없이 널려있고, 순서를 기다렸다가 씻어야 했다. 시크릿 하게 옷 갈아입을 공간도 없었다. 


그래도 일본 여행은 그때와는 뭔가 느낌이 달랐다. '화장실 1개'는 어떤 상징처럼 다가왔다. 2주라는 긴 기간은 처음이서였을 수도, 워낙 자그마한 사이즈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첫 숙소는 도쿄의 에어비앤비였다. 큰 도로가에 있는 8층짜리 작은 멘션이었는데, 그중 7층에 숙소가 있었다. 방 2개에 매트리스가 5개라 넉넉한 편이었지만, 딱 방만 넉넉했다. 

주방 겸 응접실은 킹 사이즈 매트리스 하나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다. 거기 한편에는 자그마한 세탁기가, 다른 한쪽 벽에는 4인 식탁이 붙어있었다. 다섯 식구의 세면도구, 화장품, 약, 기타 자잘한 것들이 식탁 위와 주방 개수대에 올라가면서 식탁의 본래의 용도를 잃었다. 옆에는 건조대가 있었는데 펼칠 자리가 없었다. 


응접실 겸 주방



화장실도 작았다. 작은 욕조와 세면대가 전부였는데, 물건 놓을 자리가 거의 없었다. 공간도 좁아서 세면대 앞에 서서 한 바퀴 돌기도 버거웠다. 한 명이 씻고 나면 꿉꿉해서 들어가기도 싫었다. 치약, 칫솔, 치실은 점점 싱크대 옆 작은 공간에 쌓이기 시작했다. 


모두 불편했겠지만 그래도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루종일 돌아다니다 피곤하게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가위 바위 보를 하고, 진 순서대로 씻었다. 싱크대 옆 작은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옷걸이에 옷들을 끼워 싱크대 위 개수대에 나란히 널어놓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서 양치도 요리조리 빨래를 피해 가며 해야 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우리는 작은 집에 자연스럽게 맞춰서 살고 있었다. 






미국에 와서 늘 마당 있는 집에 살았다. 애들이 크는 만큼 집도 점점 커졌다. 텍사스로 온 뒤로는 수영장과 극장이 기본이 되었다.
종종 남편 입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느니, 일본에 가서 가느니 하는 말이 나올 때마다 나는 생각했었다. '이렇게 살던 애들이 과연 좁은 집에 가서 살 수 있을까?'라고.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공간에 함께 들어와 보니 조금 그림이 그려졌다.

'만약 정말 우리가 일본으로 집을 옮기면 어떨까?' 
이렇게 작은 집을 얻지는 않을 거다. 
5인 가족에 적당한 집을 구할 테고, 그러면 나쁘지는 않겠구나. 살아볼 만하겠구나 싶어졌다. 



실제로 교토의 에어비앤비는 도쿄보다 상황이 훨씬 좋았기에 그런 생각이 굳어졌다.




일단 깨끗했고, 더 넓었다. 그리고 이뻤다. 2층 단독주택이었는데, 1층에는 응접실과 주방, 세탁실, 화장실, 작은 마당이 있었고, 2층에는 방 2개와 화장실이 있었다. 

1층 화장실은 욕조가 널찍했고 물을 받아놓으면 물 온도를 설정할 수 있었다. 욕조에 몸을 담갔다가 낮은 의자에 앉아 몸을 씻을 때면 기분이 참 좋았다. 세면대는 밖에 따로 있었고, 수납할 공간도 넉넉했다. 2층은 세면대와 샤워할 수 있는 공간이 함께 있었다. 그리고 각 층에는 변기만 있는 공간이 따로 있었다. 

이 정도 집이라면 우리가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화장실은 많을수록 좋다. 살아보니 그렇다. 

청소는 다 어떻게 하냐고 나 대신 걱정해 주신 분들이 계셨는데, 나는 그리 깔끔한 성격은 아니다. 게다가 분산되어 사용하다 보니 한 번씩 쓱 닦으면 유지가 된다. 결정적으로 투명 샤워부스 청소가 제일 힘들었는데(하얀색 석회 때문에), 이 집은 샤워부스가 없다! 


어쨌든 일본에 2주 살아보니, 화장실이 하나라고 대단히 불편한 건 아니었다. 
게다가 변기세면대샤워할 수 있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던 교토의 집은 5명이 지내기에 여유롭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전에 집의 진짜 문제는
'투명한' 샤워부스와 세면대가 한 공간에 있어서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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