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몽 Sep 18. 2024

이 정도면 동물원 아닌가요

대체 몇 마리가 사는 걸까 

차는 어느덧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시골이어서인지 다른 차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뒷자리, 왼쪽 창가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다. 넓은 들판 뒤로 나무가 빼곡하게 박힌 산이 보인다. 드문 드문 집도 보인다. 하지만 마을이라 부를 수는 없다.
텍사스나 여기나,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이 궁금하다. 뭘 하고 사는지, 외롭지는 않은지, 장을 보려면 얼마나 나가야 하는지, 그래서 장은 며칠에 한 번씩 보는지, 혹시 위험한 일이 생기면 도와줄 사람은 있는지, 동물이 갑자기 나타나지는 않는지.... 


그때였다. 동물이 한 마리.. 두 마리.. 도 아니고 열 마리 정도가 우다다 달려온다. 

원숭이다! 심지어 엄마 배에 매달린 채 고개를 뒤로 뺀 채 쳐다보는 아기도 있다. 

아니 난 원숭이를 상상했던 게 아니다.

그냥 내가 아는 그런 동물을 상상한 거다. 사슴, 토끼, 들개 같은. 

너무 순식간이라 식구들에게 미쳐 말도 못 했다. 다 지나간 후에야 말했다. 

"나.... 원숭이 봤어. 그것도 떼로!" 


좀 더 천천히 지나갔으면 좋았을 텐데.. 차는 빨랐고, 그들이 나에게 닿기엔 너무 멀었다. 

살면서 또 이렇게 야생 원숭이를 떼로 볼 일이 있을까? 








있다.
그것도 진정한 원숭이 떼 말이다. 


두 번째 료칸을 가는 길에 '원숭이 공원'이 있다고 했다. Snow Monkey라나? 

(정확한 명칭은 나가노 지고쿠다니 야생 원숭이 공원입니다) 

야생이니 있을지 없을지 확실히 알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운 좋으면 보겠지 뭐' 너무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싶지는 않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차를 대고 한참 걸었다. 이런 오르막 하이킹이 얼마만인지. 예전에는 산에서 날아다녔는데... 숨이 찬다. 힘들다. 다리가 아프다. 세 남자를 먼저 보내고 말하느라 느린 딸과 속도를 맞췄다. 막내라도 있어 다행이다.




걷다 보니 집 같은 게 나온다. 옆에서는 퐁퐁 온천물이 솟아오른다. 아름다운 경치에 나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어... 저기 뭐 움직이는데?" 원숭이었다!  
지붕 구석에 벌러덩 누워있는 아이도,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아이도 있었다. 무려 7마리나. 

'야생이라더니 정말 이렇게 사는구나' 마냥 신기해서 멀찍이 떨어진 집을 한참을 바라봤다. 더 가면 없을지도 몰라. 지금 봐야지, 하며. 


하지만 메인 무대는 따로 있었다. 사방이 원숭이 천지였다. 사람을 하도 봤는지 아는 척도 안 한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는 녀석은 꼼짝 않고 누워있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던 어미는 아이가 장난치다 굴러 떨어지자 얼른 주워 안는다. 

한 어미가 아이를 가슴에 붙이고 느릿느릿 엉덩이를 든다. 그녀를 따라 느릿느릿 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눈에 띈 건 장난꾸러기들 무리다. 원숭이 세계에도 공동육아가 있나 보다. 다른 건 애들끼리만 있다는 정도? 
크기가 고만고만한 넷과, 조금 더 큰 하나가 어울려 있었다. 큰 녀석이 괴롭히는 모양새였지만 작은 녀석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뭐든 재밌으니 붙어있을 거다. 




그 옆엔 온천이
있다. 지금은 여름인지라 몸을 담그고 들어앉아있는 아이는 없었지만, 한 마리가 물에 들어갔다 몸에 털을 척 붙인 채 나왔다. 김이 모락 올라오는 모양이 꽤 따뜻할 것 같다. 

교토에서는 숨이 턱 막힐 만큼 더웠는데 이곳은 높은 고도 탓에 약간 서늘하기까지 하다. 동계 올림픽이 근처에서 열렸던 만큼 겨울이 되면 상당히 춥겠지. 그때가 좀 궁금하긴 하다. 다들 온천에 들어가서 앉아있으려나? 모르겠다. 



그때 한 남자가 등장한다. 파란색 플라스틱 통을 들고 표정 없이 나타난다. 
남자의 표정과 달리 원숭이들이 생기를 머금고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리 아래에 있던 애들은 위로 올라오느라, 산 위 어딘가에 있던 애들은 절벽을 타고 내려온다. 다급함이 느껴진다. 




남자는 파란색 통을 몇 번이나 비웠다. 온천 쪽을 돌아다니며 뿌리기도 했고, 다리 옆쪽에도 뿌렸다. 그리고 산과 이어지는 돌계단은 좀 많이 뿌렸다. 으르렁거리며(느낌상 그렇다는 이야기다) 독식하고 있는 덩치 큰 아이도, 조금이라도 먹어볼까 팔랑거리며 다니는 아이도, 싸우는 어른들도. 사람의 세계나 동물의 세계나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나저나... 이 정도면 이건 그냥 야생 동물원이라 불러야 하지 않나 싶다. 이렇게 많을 줄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