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리오 퓨로랜드 이야기입니다만
시작은 실내화였다.
딸의 한국 초등학교 입학이 정해지자, 친구가 친정으로 실내화와 젓가락을 보내줬다. 거기엔 동그란 얼굴에 뾰족한 귀를 한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왜인지 화난 표정이었고, 해골이 이마에 박혀 있었다. 처음 보는 캐릭터였지만, 친구 말로는 요즘 2학년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란다. (쿠로미다)
딸이 좋아할지 알 수는 없었다. 자기 주관이 워낙 뚜렷한 아이라 살짝 걱정 됐지만 어쩌겠는가.
나중에 엄마가 보내준 사진에 아이가 실내화를 신고 웃고 있길래 '싫어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아이가 그 이후에 그 못되게 생긴 캐릭터에 빠져들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제까지 캐릭터를 좋아하던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두 달 후 딸을 만났을 때, 그 못되게 생긴 캐릭터는 그녀의 컵, 노트, 펜, 열쇠고리 등에 들러붙어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두 달 동안 단단히 홀린 게 분명했다. 혹은 숨은 매력이 있거나.
그래서 이번 일본 여행의 중요 일정 중 하나가 바로 '산리오 퓨로랜드'였다. 반드시, 꼭 가야만 한다니 그런가 보다 했다. 뭐 하는 데인지도 몰랐다. 산리오가 뭔지, 캐릭터는 뭐가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퓨로랜드. 이 이름은 외워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글 쓰느라 다시 검색했다, 이제는 외워지려나)
나가노 쪽 료칸을 떠나던 날, 우리는 아침부터 서둘렀다. 마지막 숙소가 있는 도쿄까지 가는데만 6시간이 걸리는데 중간에 퓨로랜드를 가야 했으니까. 꼭, 가기로 약속했으니까. 여행 내내 이 날을 기다려온 딸에게 "너 말고 아무도 원하지 않는데 꼭 가야 할까?"라고 물어볼 수는 없으니까.
분명 서둘렀지만 점심도 먹고, 휴게소도 한 번 들러줬더니 3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들어가는데 의의를 두고 있으니 괜찮았다. 6시에 문을 닫으니 3시간이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도쿄랑 거리도 있는 여기에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산리오 캐릭터를 보러, 평일 이 시간에, 사람이 얼마나 오겠나 싶었다.
남편은 근처에 나와 딸만 내려주고 떠났다. 가기 싫다는 아들 둘을 산리오 캐릭터 세상에 집어넣을 명분이 없었다. 차는 급하게 떠났고, 일본어도 못하는 여자 둘만 남았다. 손을 꼬옥 잡고 서로 의지한 채 사람들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갔기에 방향을 찾기는 쉬웠다. 이 시간에 굳이 여기까지 온 게 우리만이 아니었다.
미리 예약해 둔 티켓을 보여주고, 지도를 받고, 입장을 했다. 하긴 했는데 어지럽다. 넓지 않은 공간은 어둑했고, 사람이 미어터지게 많았으며, 무슨 줄인지 모를 줄도 어마어마했다.
나는 말이다. 산리오는 애들만 좋아하는 캐릭터인 줄 알았다. 그래서 부모들이 애들 데리고 오는 곳인 줄 알았다. 이렇게 어른들이 삼삼 오오 산리오 캐릭터로 무장하고 나타나는 곳인 줄은 몰랐다. 당황한 나와 달리 딸은 인상을 찌푸린 채 말한다. "거봐, 내가 (쿠로미처럼) 그 까만색 옷 입고 온다고 했지"
3시간 동안 우리가 한건 별로 없다.
산리오샵에 가서 구경을 했고, 계산줄 6개 중 하나에 섰으며, 25명쯤 기다린 후에야 지갑을 꺼낼 수 있었다. 딸이 손가락으로 타고 싶은 걸 지목한 덕에 지하에서 시작해 2층까지 이어진 줄 끝에 섰고, 그렇게 겨우 하나를 탈 수 있었으며, 다른 긴 줄은 아이 스스로 포기했다.
대신 사람이 적은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안내에 따라 들어가니 거울방을 지나 사진 찍는 곳이 나왔다. 좋아하는 연예인인지 애인인지 남자 사진을 꺼내서 찍는 여자들도 있었고, 오늘 산 듯한 산리오 물건들을 테이블에 꺼내놓고 찍는 여자들도 있었다. 어찌나 신중했는지 A컷이 나올 때까지 우리는 한참 기다려야 했다.
산리오는 헬로키티 덕에 유명해진 회사라고 한다. 고양이처럼 생겼지만, 고양이는 아니라는 헬로키티 말이다. 막상 퓨로랜드에 헬로키티는 별로 보이지 않았는데, 아마도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아닌 듯했다. 마이멜로디, 쿠로미, 시나몬롤 등은 많았다.
나중에 보니 다이소에 가도, 길거리에도 시나몬롤 캐릭터가 많았다. 아니까 눈에 들어온다. 인기가 정말 많은 캐릭터였던 것.
아마도 이 캐릭터 산업은 애초에 어린이들만을 위한 건 아닌 것 같다. 그런 생각이 그냥 들었다. 한국에서 자라서인지 캐릭터는 아이들만 좋아하는 건 줄 알았나 보다. 진심을 다해 좋아하는 어른 여자들을 보니 뭐랄까, 행복해 보였다. 어른이어도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을 수 있고, 그걸 솔직히 표현하는게 좋아 보였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토토로를 좋아한다!
열쇠고리도 토토로고, 차 백미러에도 토토로가 달려 있으며, 트렁크에는 스티커도 붙어있다. 까만색 콩알만 한 먼지는 차 여기저기 붙어있다. 감쪽같이. 주차장에서 내 차를 찾을 때면, 나는 토토로부터 찾는다. 내가 좋아하는 토토로.
아, 남자들도 그들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퓨로랜드 앞쪽에는 쇼핑몰이 있었고, 셋은 한 파친코 매장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어둑해진 시간에 다섯 명은 합체했고, 아들의 얼굴에서 나는 행복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당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는 무엇인가요?
예전에는 어떤 캐릭터를 좋아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