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몽 Oct 12. 2024

일본에서 세상에 하나뿐인 컵라면을 만들다

아이가 있다면 추천합니다 


"여기 갈 수 있어?"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니 이제는 본인이 가고 싶은 곳을 말한다. 아이 손에 들려있는 휴대폰에서 웬 컵라면 동영상이 흘러나온다. 뭐지? "여기서 컵라면을 만들 수 있대" 생각하지 못한 곳이다. 역시 유튜브에는 다 있고, 아이들은 그걸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원래 계획은 애초에 모른다. 남편이 모든 계획을 짰고, 이전에 말했듯이 나는 느긋한 관광자의 모드로 작정하고 따라만 다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우리 집 9학년의 느닷없는 발언으로 '컵누들뮤지엄'이 스케줄에 추가되었다. (위치는 요코하마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어딜 가나 대중교통을 많이 타고 다니는지(일본은 주차 공간을 증명해야 차를 살 수 있다) 30대도 들어가지 않는 작은 주차장은 거의 비어 있었다.
사실 이번 일본 여행에서 한 번도 주차가 어려웠던 적이 없다. 어느 건물에 들어가도 주차는 쉬웠고, 도로가 좁긴 하지만 차가 심하게 많은 것도 아닌 데다가 대부분 양보도 잘해주었다. 게다가 작은 주차 공간이 어디를 가든 아주 흔하게 있었다. 그러니 여기도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여느 때처럼 건물에 편하게 주차하고, 천천히 뮤지엄 입구 쪽으로 발을 옮겼다. 





하얀색 홀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왔다. 천장은 매우 높았고, 꼭대기에는 창이 둘러져 있어 환했다. 넓은 계단은 2층까지 시원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 계단을 따라 똑같은 옷을 입은 어린이들이 무더기로 뛰어 올라가고 있었다. 여기가 소풍도 오는 그런 곳이었나 보다. 

매표소에도 줄이 길었다. 역시 내가 모른다고 남들도 모르는 게 아니다. 체험이 두 종류였는데, 하나는 이미 마감이었다. 젠장.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도 미리 예매를 해야 했다니. (마감된 건 직접 국수를 만드는 체험 같았고, 도쿄 여행을 하며 이미 여러 번 '매진'의 벽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다시 넓은 홀이 나온다. 동그란 테이블 수십 개에 사람들이 둘러앉아 열심히 뭔가를 칠하고 있다. 얼추 어림잡아보아도 200명 가까이 될 것 같다. 규모에, 사람들의 까만 머리 물결에 사실 조금 압도되었다. 이 정도라니. 1층에 그나마 사람이 적었던 건 우리가 늦게 와서였나 보다. 
안쪽에는 동그란 통유리에 공장 같은 게 보인다. 바로 거기가 라면을 만드는 곳이다. 직원 여럿이 바쁘게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진다. 뒤쳐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줄이 더 길어지기 전에 빨리 해치워야 할 것 같다.




직원이 내민 종이를 보니 순서는 간단하다. 


1. 빈 컵라면 통을 500엔에 구입한다. 
2. 아무 데나 빈자리를 꿰차고 앉아, 거기에 놓인 마커로 컵라면 통의 겉을 꾸민다. 칠하든, 그리든 내 마음이다. 막상 앉으니 빈 도화지에 뭘 그려야 할지 모르겠다. 창의적인 머리가 굳어버렸나 보다. 거침없이 그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다 나도 뭔가 칠한다. 

3. 다 칠한 컵을 들고 라면으로 변신하는 줄에 재빨리 서야 한다. 

4. 그때부터는 직원이 시키는 대로 한다. 처음 장면은 면들이 행진해서 들어오는 모습이다. 그중 하나가 내 것이 된다. 직원은 열심히 일본어로 설명을 해가며 면을 거꾸로 놓고, 컵을 그 위에 씌울 것이다. 눈치껏 내 앞에 튀어나온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 면을 품은 컵이 스르륵 돌아갈 거다. 
5. 이번엔 직원이 토핑을 고르라고 할 거다. 맛은 3가지 중에서,  토핑은 12가지 중에 또 몇 개를 고른다. 나는 결정장애가 있어서 가장 마지막에 했다. 앞서 4명이 하는 동안 열심히 고민했다. 

6. 이제는 직원이 해주는 마지막 단계다. 바로 비닐이 씌워지는 단계. 이것까지 하면 진짜 파는 라면과 똑같아진다. 

7. 이제는 스스로 포장하는 단계다. 납작한 비닐 사이에 라면을 넣고 바람을 불어넣으면(입으로는 아니다)거대 진공 포장이 된다. 빨간 줄도 달려 있어서 목에 걸고 다니면 아주 치렁치렁해지고 부피를 차지한다. 






사실 여긴 말 그대로 뮤지엄이다. 그래서 전시관이 따로 있다. 처음에 어떻게 컵라면이 시작 됐는지, 이 기술을 왜 다른 사람들과 공유했는지 등 많은 스토리를 보여준다. 결과적으로는 닛신 컵라면 창업자를 칭송하는 뭐 그런 느낌인데 꽤 재미있다. 
다른 층에는 여러 가지 나라의 면 요리를 먹어볼 수도 있었으며, 아이들용 놀이공간도 있었다. 






한 달 후, 우리는 각자 자기가 만든 컵라면을 챙겨 주방에 모여 앉았다. 

조심조심 비닐을 뜯어내고, 뚜껑에 붙어 있던 종이의 한 면을 뜯어냈다. 내가 뭘 넣었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덕에 손에서 설렘이 느껴졌다. 반쯤 뜯어내자 내용물이 훤히 보인다. 내가 만든 컵라면에서는 해물향이 풍겼다. 그 안에는 마른 옥수수, 병아리 모양이 그려진 납작한 무언가, 새우, 파가 들어있었다. 


보글거리는 물을 붓고 다시 뚜껑을 닫은 후 기다렸다. 2분 여가 지나 열었을 때는 적당히 면이 익은 뒤였다. 말라있던 옥수수, 새우, 파도 통통하게 불어나 있었다.
옆에서 아이들은 서로 한 입씩 나눠 먹고 있었다. 내 거가 더 맛있네~ 하면서.  


컵누들뮤지엄, 기대 없이 갔다가 나도 참 재미있었는데 마무리까지 완벽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