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군데 료칸을 돌아보니 아니더군요
원숭이 수십 마리를 만난 후, 이번에도 남자들과 여자들은 팀이 나뉘었다. 남자 셋의 빠른 걸음을 따라갈 수 없어, 딸과 나는 자연히 멀어졌다.
겨우 6대밖에 댈 수 없는 작은 주차장까지 내려왔건만 남자 셋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 갔지?' 싶던 그때, 바로 옆 카페에서 남편이 손을 흔든다. 올라올 때도 숲에 폭 갇힌 카페의 모습이 이뻐서 눈이 갔던 곳이다. 일본치고 크기가 작지도 않다. '관광객도 얼마 없는 곳 같은데 장사나 될까 모르겠네' 괜히 남 걱정을 하며 발을 옮긴다.
멀리서부터 달려온 하루라 이제는 숙소에 들어가고 싶다. 남편 말로는 여기서 30분 정도만 더 가면 된다고 했다.
원숭이가 있던 작은 마을을 벗어나니 좁은 길과 나무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길이 어찌나 고불고불한지 하필 뒤에 앉은 덕에, 차가 꺾일 때마다 소리 지르며 격정적으로 미는 아이들 덕에, 속은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내비게이션에서는 2km밖에 남지 않았다는데 차는 여전히 올라가고 있고, 나는 여전히 머리가 좌우로 흔들리며, 여전히 사방은 나무밖에 보이지 않는다. 길은 제대로 찾은 걸까? 예약한 주소를 잘 넣었나? 불안하지만 티는 내지 못한다.
1km나 남았을까? 더 좁은 길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커다란 건물이 보인다. 차도 많다. 잘 찾아왔구나 안심도 되고, 멀미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기뻤다. 내려서 한참 호흡을 하며 속을 가라앉혔다. 진한 유황 냄새 때문인지 쉽게 가라앉지는 않았다.
로비에 들어가자마자 맥주 따르는 기계가 보인다. 음료수도 놓여 있다. 가만 보니 집어먹을 수 있는 간식도, 아이스크림도 있다.
그리고 로비 한쪽에서는 사진관 배경 앞에 기모노를 입은 한 모녀가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니 찍히고 있었다. 앞에 선 사람의 카메라 크기를 보니 전문 사진사였다. 무료로 가족사진을 찍어주는 날이란다.
이곳은 모든 식사가 제공되는 곳이었다. 아침과 저녁은 뷔페고, 점심은 2개 메뉴 중 골라 먹는다. 밤 10시까지는 맥주, 음료, 간식이 계속 제공된다. 안에는 미니 골프, 다트, 포켓볼장, 에어하키 등 다양한 놀거리와 마시지 의자도 있었다.
미국에서 올인클루시브 리조트는 가봤어도, 료칸이 그런 곳이 있을 줄은 몰랐다.
여자 쪽 온천에 들어가니 샴푸와 린스가 주르륵 놓여 있다. 맥도널드 케첩 통 같은 작은 사이즈의 컨테이너도 준비되어 있었다. 작은 온천물에 몸을 담근다. 보이는 풍경은 산이다. 아무것도 없다. 그 산 가운데에는 연기가 계속 올라온다. 연기가 나는 구멍 주위는 노란색으로 물들어있다. 온천 많이 다녀봤지만, 내가 지금 담그고 있는 물의 출처가 이렇게 눈에 보이기는 처음이다.
이번에 알게 된 온천 제대로 즐기는 법은 이렇다.
(벽에 설명이 자세히 붙어 있었지만, 죄다 일본어라 남편이 설명해 주었다)
1. 먼저 새로 들어가는 뜨거운 온천물을 마신다. 다소 역하지만 참으면 먹을만하다.
2. 1차로 몸을 3분 정도 담근다.
3. 나왔다가 다시 3-5분 정도 담그길 반복한다.
이 료칸은 이번 여행에서 세 번째 료칸이자 마지막 료칸이었다.
첫 번째는 익숙한 하코네였고, 두 번째는 가나자와에 있던 곳이다.
하코네 온천 지역은 도쿄에서 가깝고, 교통이 잘 되어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온천물이 아니어도 주변에는 놀 것들이 꽤 많다. (이건 다음에 묶어서 올려보겠습니다!)
온천이 있는 산 자락에는 무수히 많은 료칸이 있는데, 이번에 간 곳은 제법 규모가 큰 건물이었다. 6개 층, 건물은 2개를 쓰고 있어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주차는 모두 발렛이었고, 일본 어디나 그렇듯 친절했다. 또 이곳 대부분이 그렇듯 영어는 잘 통하지 않았다.
예전에 일본 살 때 하코네의 여러 료칸을 다녀왔지만 이번에도 느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녁 식사는 전통 식사였는데, 3가지 메뉴 중 고를 수 있었다. 자리에는 코스가 적힌 종이 한 장이 놓여있다. 온통 일본어라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대접받는 기분도 들고, 몇 가지가 더 나올지 배의 공간을 분배해 둘 수도 있어 좋았다. 게다가 우리는 식구가 다섯이라 세 가지 메뉴를 한 번에 맛볼 수 있어 눈도 즐거웠다.
저녁을 마치고 방에 들어가면 정갈하게 이불이 깔려있다. 완벽한 식사의 마무리다.
아침 뷔페는 세 곳 중 가장 퀄리티가 높았다. 종류도 많았고, 즉석 해서 만들어주는 내 사랑 달달한 계란말이와 생선구이도 일품이었다. 그래서 한 끼에 쑤셔 넣을 수 없는 양을 끊임없이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도무지 점심시간이 되어도 배가 꺼지지 않을 만큼.
두 번째는 가나자와에 있는 곳이었다. 호텔인지 료칸인지 찜질방인지 정체를 알 수 없던 곳이다. 이유는 이렇다.
- 물은 온천물이 맞지만, 대중목욕탕과 똑같았다.
- 옷을 주긴 하지만 찜질방 옷을 준다.
- 이불을 와서 깔아주지도 않는다.
그리고 식사도 참 신기한 시스템이었다.
이곳에서는 밥을 미리 주문받는 대신 개인당 3,000엔 크레딧을 준다. 그러면 7개쯤 되는 식당에서 3,000엔까지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 5명을 합하면 15,000엔이다. 미국 달러로 환산하면 1인당 20불, 5명 합해도 100불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은 미국에 비해 음식이 훨씬 싸다. 내가 먹고 싶던 계란에 소스 씌운 음식은 700엔밖에 하지 않았고, 그건 달러로 5불도 되지 않는다. 가장 비싼 음식을 골라도 3,000엔이다. 빼곡한 메뉴를 보고 있으면 아무리 계산을 해도 15,000엔 채우기가 쉽지 않다는 걸 금세 깨달을 수 있다.
(당일에 쓰지 않으면 사라진다)
사람 심리가 버려지는 게 괜히 아까운지라 우리는 배가 터지기 직전까지 시켰다. 넓을 홀을 오가는 배달 로봇이 신나게 소리를 내며 우리 테이블로 향했다. 민망할 정도로 계속.
신기한 곳이었지만, 아니 첫인상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지만 여기도 나름 매력이 있었다.
일반 온천은 딸이 좋아하지는 않았다. 뜨겁고 작은 탕만 덩그러니 있으니까. 이런 대중목욕탕 분위기에서는 아이가 할 게 많았다. 그래서 다른 료칸에서는 금세 나갔던 딸이 꽤 오래 놀았다.
밥도 생각보다 다 맛있어서 잘 먹었고, 우리네 목욕탕처럼 입구에서 신발을 보관해야 했기에 맨발로 다니는 재미도 있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관광지들이 많아서 놀기도 좋았다.
우리 다섯 가족의 2주 여행은 도쿄에서 시작되었다.
그 뒤엔 컵라면 박물관이 있던 요코하마를 커쳐 하코네로 갔다. 여기가 첫 번째 료칸이다.
(시즈오카시와 요코하마시 사이에 있는 동그라미)
그 후엔 교토와 나라를 거쳐(지도에서는 왼쪽 아래로 더 가야 한다) 가나자와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마지막 료칸은 나가노시 근처의 산이 있었다. 이곳이 일본의 알프스라나?
이번 여행을 하면서 사진을 많이 찍지 않았다. 먹고 즐기는 데 너무 몰두한 탓이겠지.
돌아온 이후에 그게 좀 아쉬웠다.
하지만 글로 기록하기 시작하니 나는 아직도 여행 중인 기분이 든다.
아직 할 이야기가 참 많다. 그래서 행복하다.
아직 많은 이야기가 남았지만,
브런치북으로 만들어 공모전에 내려다보니 일단 끊어가게 되었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추후 올려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