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이었는데!
며칠간 참 바빴다.
미국 시간으로 월요일 저녁, 혹은 화요일 오전에 연재글을 올렸어야 했는데 놓쳤다. 월요일도, 화요일도 저녁엔 쓰고 잘 시간은 있었지만 에너지가 없었다. 눈도 흐려서 뭘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요일 아침인 지금에서야 이 글을 쓴다. 반성한다.
사실 푹 자고 난 오전에는 머리가 좀 맑아야 하는데, 워낙 피곤한 상태가 지속되던 중이라 지금도 상태가 좋지는 않다. 보통은 주방이라도 싹 치우고 상큼한 마음으로 글을 쓰는 편인데, 폭탄 맞은 주방을 뒤로하고 의자에 나를 앉혔다. 이틀 내내 '아, 글 올려야 하는데.'가 따라다닌 덕이다.
오늘 해야 할 일 때문에 머리도 복잡하다. RV 관련된 일도 처리하고, 장도 보고, 주방도 치우고, 빨래도 돌리고... 게다가 오늘 새벽에 '1월에 투고하기 위해 12월에 해야 하는 일들'을 쭉 적어본 뒤로 마음이 방망이질 치고 있다. 캘린더는 촘촘하고, 리스트는 하나도 지우지 못했는데, 기력이 없다.
뭐 구구절절 말하는 이유는 이런 상태인데도, 내가 의지를 가지고 연재를 이어가고 있다는 일종의 변명이다. 큭큭.
(여기까지는 서론)
궁금하다. 보통 와이프들은 남편에게 몸무게를 오픈할까?
나는 이제까지 굳이 말한 적은 없지만, 그가 알 줄 알았다. 이유는 확실하다. 이렇게 연재를 하면서 내 몸무게를 매주 올리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내 브런치 주소는 여기저기 오픈하고 다녔기 때문에, 남편이 매일 들여다보는 내 스레드에도 떡 하니 주소를 붙여놓았기 때문에. 그래서 당연히 그가 알 거라고 생각했다.
"나 오늘 55킬로그램 대로 내려왔어!" (하루만이었습니다 ㅠㅠ)
라는 내 말이 남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본다.
잠시의 침묵.
뭐지? 이 싸한 분위기는 대체 뭐지? 당신은 왜 그렇게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는 건데? 이러지 마. 나 지금 자랑하는 거잖아!
뿌듯함을 한껏 품고 한 말이었다. 내 요지는 다이어트가 순항 중이라는 거다. 무려 2.6kg이나 빠졌고, 56kg 아래로 겨우 떨어졌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거다. "와 너무 잘하고 있네." 까지는 아니어도, 이런 표정으로 나를 볼 줄은 몰랐다.
그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원래 몇 kg이었는데?"
제길! 생각나는 대로 말하지 말란 말이다.
앞뒤 맥락을 파악하고, 내 표정을 살핀 후 말을 하면 좀 어떤가!
당신의 궁금증을 해결하는 동안, 와이프 심장에 기스가 나는 건 생각 못한단 말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 순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그가 내 브런치를 일절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사실. 내 스레드는 그렇게 보지 말라 그래도 들여다보면서, 클릭 한 번만 해도 볼 수 있는 내 글은 보지 않고 있었다. 큰 수확이다. 여기에 무슨 말을 해도 남편은 모르겠구나. 앞으로 좀 더 자유롭게 써야겠구나. 에헤라디야.
머릿속에서 생각이 복잡하게 흐르는 사이에도 남편은 나를 바라본다. 답을 알려달라는 눈빛을 하고서. 대체 얼마나 쪘었길래 그 정도를 빠졌다고 자랑하는 건지 제발 알려달라는 눈빛이다.
"음... 요즘 많이 쪘었지."
나름 최선의 답을 했다.
며칠 전,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이 날 보자마자 "살 빠졌어요?"라고 말도 해줬는데, 부러운 표정으로 말했는데, 그 말은 꺼내지도 못했다. 흥.
오늘 몸무게는 56.05kg이다.
부지런히 글을 쓰고 있는데, 남편이 지나가다가 묻는다.
"오늘 연재하는 날이야?"
응. 맞아. 하지만 지금처럼 관심을 끊어줘. 여기만은 청정지역으로 좀 놔둬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