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경력은 부활했고, 나는 백수가 되었다
'정말 면접을 보게 되는 건가?'
옷장을 뒤져보니 적당한 옷이 없다. 작은 옷장을 뒤지고 또 뒤지다 보니 까만색 반팔 원피스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적당히 정장 느낌이 나지만, 중간이 풍성한 모양이라 잔뜩 부푼 내 배를 가려줄 수 있는 원피스.
'하... 잘할 수 있을까?'
면접 준비라고는 자기소개를 일본말로 달달 외운 것이 전부다. 한국 회사라고 해도(네이버 제팬에서 면접을 봤고, 라인 서비스를 준비하던 중이다), 일본에서 일하려면 일본말은 필수일 텐데, 더 이상은 무리였다. 단기간에 언어가 어마 무시하게 늘기도 어렵고, 나는 언어에는 또 재능이 매우 없는 편이니까.
일찍 도착했다.
초행길이라 헤맬 시간 계산해서 일찍 나왔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지하철 입구를 나오자마자, 바로 눈앞에 통유리로 된 깔끔한 높은 건물이 보였다. 시간이 많이 남아 1층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앉았다. 창가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 쪽으로 시선을 두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일본에서 이 배를 하고 면접이라니. 내 배를 보고 면접도 필요 없다고 하면 어쩌지. 낮 시간인데도 사람이 꽤 있네. 다들 회사원일까? 일본인들은 정장만 입고 일하는 줄 알았더니, 이 건물은 IT 쪽 회사가 많은가? 복장이 자유로워보이네. 나도 여기 섞여서 일하게 될까. 잡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여러 번 시계를 확인하다, 적당한 시간이 되었을 때 일어났다. 긴장된 탓인지 커피는 반도 마시지 못했다.
안내받아 들어간 곳은 6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작은 회의실이었다. 얌전히 자리 잡고 앉으니, 아마도 내 이력서일 것 같은 종이를 들고 곧 두 명이 따라 들어온다. 한 명은 남자고, 한 명은 여자다. 남자 쪽이 팀장으로 보였다.
근데, 저 남자. 내가 아는 사람이다.
네이버 카페를 처음 만든 사람이라고 들었다.
'재혼을 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 순간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남의 사생활이 떠올랐다.
"자기소개는 일본말로 준비하셨을 것 같으니까, 다른 걸 물어볼게요."
아.. 망했다. 똑똑한 사람 같으니. 내가 이것만 준비한 줄 어떻게 알고. 그다음엔 일본어로 뭔가를 물어봤고, 나는 뭔가를 대답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이제 기억도 나질 않지만 분명 엉망이었을 거다.
그래도 초반의 질문이 지나자, 한국말 면접이 시작됐다. 다행이었다. 직군은 UI였다. 대학원에서도 UI와 UX를 공부했고, 경력도 쌓아둔 터라 일 자체는 자신 있었다.
다만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일본어를 잘 못하는 상태라는 것, 다른 하나는 임신 중이라는 것. 그것도 출산을 고작 두 달 앞둔 상황이었다. 사실 내 배는 꽤 부른 상태라(임신 5개월부터 일본 지하철에서 양보를 받았다. 일본인들이 배가 작은 건지, 내 배가 큰 건지, 원래 부른 상태에서 시작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앉은 자세에서 배에 얹어놓은 손만 잘 봐도 눈치챌 수 있었다. 내가 이렇게 보란 듯이 티를 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두 사람은 모른다. 끝까지 임신에 대한 질문이 없다.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질문 있어요?"
"저... 사실 제가 지금 임신 중입니다."
남자도, 여자도 눈이 커진다. 동시에 시선이 내 배로 향한다.
"지금 임신 8개월이라 예정일이 4월 말이에요."
"헉..."
남자가 이번엔 놀란 티를 감추지 않는다.
"아이를 낳고도 일할 수 있어요?"
"네, 저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진심이었다. 일이 하고 싶었다.
남편이 공식적인 백수가 된 후, 우리에겐 많은 일이 있었다. 남편은 느닷없이 일본에 있는 게임 회사에 취직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그러면서 한 마디를 덧붙인다. "가족은 함께해야지." 어, 그래야지. 하지만 너무 갑자기 아닌가? 나는 결혼 후 이직한 'NCsoft'를 너무나 잘 다니고 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게임도 실컷 하면서. 야근이라고 말하고 회사에서 게임하다가 늦게 가도 당신이 몰라서 얼마나 좋았는데) 게다가 당신은 게임을 싫어하잖아? 근데 게임 회사라니.
그랬다.
그는 일본에 취직했고, 곧 짐을 싸서 떠났다. 가족은 함께해야 하니까, 나는 혼자 남자 짐을 정리했다. 고작 태어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냉장고는 부산 시댁으로, 차마 버리지도, 배를 태우지도 못할 쓸데없는 잡동사니들은 서울 친정으로 보냈다. 고이 싼 짐이 일본으로 가는 배에 실린 후, 나도 떠났다.
그는 경력은 부활했고, 나는 백수가 되었다.
그리고 낯선 일본 땅에서 나는 예비 엄마가 되었다.
"제가 지금 아기가 백일이 됐어요. 낳기 전에는 몰랐는데, 생각보다 아이 키우는 것이 쉽지가 않더라고요. 아이를 낳고, 그때도 일 할 생각이 있으면 연락 줘요." 남자 면접관이 말했다.
원래 절차라면 그 자리에서는 '추후 연락드리겠습니다' 정도만 들어야 한다. 나는 달달 떨면서 결과를 기다리고, 팀장은 팀원과 상의해 결정을 내리고 통보를 해왔겠지. 하지만 나는 특수한 배를 가지고 있었으니, 면접 결과도 바로 듣게 된 셈이다.
'너 마음에 들지만,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어?'라는.
첫 아이를 낳을 때도, 그 아이가 조금씩 커갈 때까지 나는 '네이버 제팬'에 미련을 붙들고 있었다. 100일만 되면 나가야지, 어린이집은 어딜 보내지? 하며. 하지만 결국 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라는 이메일을 보내야 했다.
아이를 낳아보니 너무나 소중해서, 아이를 두고 일하러 나갈 수가 없어요- 따위의 이유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일을 하고 싶었고, 할 방법을 찾으면 된다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이 모든 것을 바꿔놓는다.
"도현 씨, 저랑 회사 하나 합시다."
남편의 대학 선배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