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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 Dec 19. 2024

그의 첫 스타트업 실패의 사정

16년 만에 알게 된 진실


앞의 글에서 이어집니다


"근데 어떻게 갈라서게 된 거야?" 투자자가 도현에게 물었다. 


세 명이 눈이 모두 도현을 향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도현이 착잡한  표정으로 입만 달싹거리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복잡한 얼굴이었다. 

"승원이가 나빴지." 이윽고 도현의 입에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그걸로 끝. 


더 이상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질문했던 투자자는 다 알겠다는 듯 굳이 더 묻지 않았다. 그는 그 시절의 도현도, 그 시절의 승원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날 알았지만, 그의 투자자로서의 첫 포트폴리오가 바로 도현이 나온 그 회사였단다. 도현이 나온 후의 일이었다. 




16년이다.
도현을 통해 승원의 소식은 간간이 들어왔다. 우리가 캘리포니아 살 때, 멀지 않은 곳에 산다 들었다. 승원도 미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고, 잘 되고 있다고도 했다. 아이는 몇 살인지, 몇 번 만난 적 있는 승원의 와이프 이야기도 들었다. 


5년 전 즈음인가, 산호세에 살던 도현의 학교 선배 집에 놀러 간 일이 있다. 우리와 똑같이 아이가 셋인 데다가, 부부 모두 편한 성격이었고, 요리를 주로 남편이 하는 집이라 부담 없던 자리였다. 끊임없이 나오는 술에 나도 기분 좋게 취했던 그날, 승원을 만났다. 도현이 승원에게 연락했고, 그가 왔다. 원래도 마른 편인데 예전보다 살이 더 빠져있었다. 간헐적 단식을 한다고, 건강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대단히 서로 반가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근데 도현의 입에서 16년 만에 이런 이야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 

'도현이 나빴다'는 말이. 




술자리는 새벽 1시 30분까지 이어졌다. 나를 포함해 넷 모두 거나하게 취했다. 오고 가는 대화가 재미있어서 나도 많이 마신 탓이다. 자고 가라는 나와 도현의 만류에도 둘은 기어이 떠났다. 올 때 샌안토니오에서 우버로 달려왔던 둘은(2시간 30분 정도가 걸렸고, 700불 정도가 나왔다고 한다), 갈 때도 우버를 타고 떠났다. 그리고 3시간 후, 그들을 태운 비행기가 출발했다.

다음날 나는 하루 종일 속이 좋지 않았다. 점심까지는  물 한 모금도 들이키지 못했다. 소파에 누워있자니 천장이 크게 빙글 도는 게 느껴졌다. 이런 날이면 술 안 마신 사람이 제일 부럽다. 어쩐지 에너지 넘치던 20대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가끔 과음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그나저나 나는 집에 가만있어도 힘든데, 그 둘은 잘 갔을까? 비행기에서 뭐라도 쏟아내는 거 아닌가? 둘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날이었다. 





지난주에 도현과 오랜만에 식탁에 마주 앉았다. 나는 밥을 먹고 있었고, 그는 와인과 안주를 챙겨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오랫동안 궁금했던, 하지만 물어보지 못했던 '첫 스타트업 실패의 사정'을 물었다. 승원이 왜 나빴는지, 무슨 일이 있던 건지 궁금했다. (그래야 글을 쓰니까) 

"나 궁금한 게 있어. 그때 투자자들 왔을 때, 승원 씨 이야기 나왔었잖아."
"응, 그랬지."
"회사는 왜 나왔던 거야? 나, 그때 일에 대해서 듣질 못했어."


도현은 아주 찬찬히, 기억을 더듬어가며 그때의 일을 들려주었다. 첫 창업의 실패의 사정과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서. 이날 내가 새로 알게 된 사실은 꽤 많았다. 


1. 둘의 창업은 우리의 결혼 때문에 미뤄졌다는 점


승원은 더 빨리 하자고 했단다. 당장 회사를 나오라고, 미루지 말자고. 하지만 도현은 계획에 없던 나를 만났고, 순식간에 결혼 날짜까지 잡은 상황이었다. 결혼하기 전에 회사를 나오는 건 그에게도 부담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승원을 설득했고, 그들의 창업은 우리의 결혼식 한 달 후인 2007년 7월로 결정되었다. 


2. 둘의 갈등이 결정적인 이유였다는 점


사업 준비를 1년 반 정도 했단다. 예상보다 오랜 시간 준비했던 거다. 준비하면서부터 둘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도현도 굉장히 꼼꼼한 성격인데, 아마 정원이 더 심했나 보다. 내가 도현을 보면서 지치는 포인트를, 그도 똑같이 느꼈던 것 같다.

그만둘까, 이 친구랑 하는 게 맞는 걸까, 많이 고민했지만 그냥 Go를 외쳤다고 한다. 들인 시간이 아까웠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창업한 이후 싸움은 더 진해졌고, 후회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이 둘이 갈라선 결정적인 이유다. 


3. 사업 자금이 5천만 원이나 들어간 점


그때 우리가 양가에서 받은 결혼자금은 합해서 6천만 원이었다. 그리고 그가 창업 자금으로 따로 모아둔 돈이 5천만 원이었다고 한다. 집에서 따로 지원은 없었으니, SK텔레콤 다니던 4년 동안 최소한의 돈만 써가며 모은 돈일 거다. 승원과 둘이 1억으로 시작해 오피스텔을 얻고, 용돈 정도의 월급을 받으며, 그렇게 회사를 꾸려간 것 같다. 20대에 5천만 원은 큰돈이다. 4년을 갈아 넣은 돈이다. 그 돈은 어떻게 됐을까? 


4. 회사를 먼저 나오게 되면서 돈을 날린 점


도현 말로는 이런 경우는 없단다. 하지만 창업 초보인 둘이 계약서를 만들 때, 한 명이 먼저 나가면 돈은 돌려주지 않는다는 조항을 적었단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그때는 잘 몰랐으니까." 착잡한 표정으로 도현이 말한다.


결과적으로 서류상 5천만 원을 돌려받는 것으로는 보여주어야 했기에, 이체를 통해 5천만 원을 받은 후, 추적이 불가하도록 현금으로 뽑아서 돌려줬다고 한다. 그리고 도현은 서류상 받은 돈 때문에 세금까지 부담해야 했다고 한다. 몰랐다. 승원이 나쁜 게 맞았다. '최소한 세금은 빼고 달라고 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너무했다. 


4년간 모은 돈을 날렸다. 

준비 기간까지, 3년의 시간도 날렸다. 

거기에 세금까지 추가로 내야 했다.

함께하던 친구와도 등을 돌렸다. 


5. 정리하는 데까지 고작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던 점


급격하게 갈등이 심해지고, 네가 나갈까 내가 나갈까를 오가던 중, 도현이 나가는 걸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이미 한차례 양보해 승원이 51%, 도현이 49%의 지분을 가져간 상황에서 더 이상의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지칠 만큼 지쳐서 4년 모은 돈을 날리는 것도,  함께한 시간도 더 이상 아깝지 않았던 것 같다. 


결정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도현이 실제 짐을 싸서 나오기까지 일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아무런 대책 없이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백수가 된 셈이다. 

6. 후에 이 회사는 상장을 했다는 점


홀로 남은 승원은 나름 열심히 회사를 꾸려갔던 것 같다. 몇 년이 더 지난 후에, 회사는 상장했다. 그리고 둘은 후에 만나 섭섭했던 부분을 이야기하고 푸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이 날 승원은 어느 정도 도현의 마음을 받아주었던 것 같다. 승원의 회사에서 도현에게 일을 맡기는 형태로, 도현은 3천만 원을 받았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이 또한 나는 모르는 일이었고. 


이 남자의 심정은 어땠을까?

1년 반을 준비했다. 그 사이 한 여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어깨가 무거워졌다. 4년간 아껴가며 모은 5천만 원을 쓸어 넣어 사업을 시작했다. 꿈은 원대했을 거다. 하지만 동업자와의 갈등은 심해지고, 결국 한 푼도 건지지 못하고 홀로 나와야 했다. 


결혼 후 1년 반 동안 한 번도 월급을 집으로 가져가지 못한 그에게, 그간 어딜 가나 똑똑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살던 그에게, 이 실패는 꽤나 쓰라렸을 거다. 


그래서일 거다. 도현은 그 당시 나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돈을 날렸다는 사실도, 첫 도전이 실패로 끝났다는 것도, 앞으로 뭘 해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는 것조차 말할 수가 없었을 거다. 나까지 걱정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을 거다. 그 옆에서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출퇴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힘들어!"의 투정만 부리고 있었다는 게 지금 와서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시 20대로 돌아가면 뭐 하고 싶어?"


"사업을 더 빨리 하고 싶어."

"대신, 혼자."



나는 그때로 돌아가면 당신의 다친 마음을 보듬어주고 싶어. 

사업은 좀 어떤지, 힘든 점은 없는지 가끔은 물어보고 싶어.
당신의 이야기를 더 들어주고 싶어. 

어디가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내가 들어주고 싶어. 

실패하고 돌아온 당신의 어깨에 손을 얹고,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 


그때 그렇게 못해서 미안해. 



하지만 말이야, 그냥 쉽게 좀 살자고 말해보고도 싶어. 

당신은 앞으로 16년이 지나도 여전히 한숨을 폭 쉬며 여러 가지 고민 덩어리를 짊어지고 있을 거라고, 그러니 좀 쉽게 가자고 말해보고도 싶어. 말을 들을 사람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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