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과 말은 있어도 화장실은 없던 곳으로요
* 이 글을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 넣습니다. 스타트업 이야기는 언제 하나... 서론이 너무 긴데... 싶어서요. 하지만 이미 써놓은 글, 버리기 아까워서 넣어봅니다 :)
도현과 나, 우리는 종족은 서로 달랐지만 여행에서만큼은 잘 맞는 편이었다. 둘 다 아주 조금 특이하달까.
결혼식 다음날 우리는 중국 북경으로 떠났다. 딱 거기까지, 그 이후는 정해놓지 않은 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007년, 그 때는 핸드폰도 없었다. 내가 믿을 것이라고는 여행책자, 전자사전, 그리고 중국어를 조금 할 줄 아는 도현이 전부였다.
북경에서는 쉬웠다. 남들 다 가는 유명 관광지 몇 곳을 돌아다녔으니까. 그 이후가 문제였다. 가장 먼저 우루무치로 가는 비행기를 끊었다. 중국 대륙에서 북서쪽,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행정도시인데 우리에겐 실크로드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지역이다. 사람들 생김새도, 말도 내가 알던 중국과는 다른 곳이었다.
우리 목적지는 그보다도 서쪽, 카자흐스탄 국경과 접해있던 한 작은 도시였다(구글맵을 뒤져봤지만 정확한 이름을 찾을 수가 없었다). 우루무치 역에서 버스표를 끊었다. 출발시간은 적혀 있었지만 도착 시간은 알 수가 없었다. 거리로 보니 5시간 정도면 도착하겠구나 생각할 뿐이었다.
버스를 올라타는데 두 발이 버스에 다 오르기도 전에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신혼여행과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그런 냄새. 쏠리는 시선을 의식하며 올라선 버스 내부는 신기했다. 좌석 버스가 아니라 침대 버스다. 앞에서부터 뒤에까지 3열, 2층으로 되어 있었고, 각 침대마다 베개와 담요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먼저 타 있던 사람들은 편안하게 누워 우리를 신기한 듯 쳐다봤다. 내 자리는 운전석 쪽 2층이었다. 침대에 눕긴 했지만, 도저히 냄새나는 담요에 손이 가질 않았다. 담요를 슬그머니 밀어놓고 누웠다.
한국의 빠른 속도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버스의 느긋함은 답답할 지경이었다. 속도도 느릴뿐더러 한 번 멈추면 한 시간씩 쉬곤 했다. 다들 익숙한 듯 보였다. 얼마가 지났을까. 내 코는 더 이상 아무 냄새도 느끼지 못했다. 슬쩍 만져보니 담요가 폭신하게 느껴졌다. 깨끗해 보이기도 했다. 어느새 나는 목까지 담요를 끌어올린 채 창 밖으로 풍경을 구경했다. 오른쪽은 대낮처럼 밝은데, 왼쪽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밤 10시가 넘어가는데도 여전히 밝은 하늘이 반이나 되는 모습이 퍽 신기했다. 근데 이 버스, 대체 언제 도착하는 걸까?
우리가 그 낯선 동네에 떨어진 시간은 새벽 2시경이었다. 어디인지 알 수는 없지만 넓은 주차장 한가운데 버스가 정차하자 느긋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어리바리해 보였던 사람들은 재빨랐고, 누군가의 차에 실려 빠르게 사라졌다. 넓은 주차장, 노란 전봇대 불빛 아래 우리만 덩그러니 남았다. 내가 믿을 사람이라고는 전자사전을 들고 있는 도현밖에 없는데, 이 사람 눈빛도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 버스기사 아저씨가 다가왔다. 우리를 도와줄 사람은 이 사람이로구나! 나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남편과 아저씨 사이에 짧은 대화가 오갔다. 도현이 여행책자에 쓰인 호텔 이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아저씨가 어디론가 전화했다. 그렇게 나타난 택시. 구세주였다.
따뜻한 느낌의 호텔이었다. 아무도 없는 새벽 공기를 가르며 밖으로 통하는 길을 따라 객실로 안내되었다. 나무가 많아 숲 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짐을 풀자마자 남편은 데스크로 향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다음날 필요한 차와 여행 가이드, 기사까지 일사천리로 고용하고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정해진 시간에 가이드가 나타났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나 싶을 정도로 어리게 생긴 남자아이였다. 새까만 머리칼에 그을린 듯한 피부, 서글서글하게 웃는 모습이 조금은 가벼워 보이는 인상이었다. 가이드는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갓 부부가 된 우리를 바라봤다. 외국인을 가이드하는 것이 처음이란다. 외국인을 만난 게 처음인 가이드라니, 걱정이 올라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가이드는 환하게 웃으며 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 끝엔 낡은 까만색 차가 서있었다. 운전석에는 50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웃고 있었다. 표정을 보니 어색하다. 나도 일단 같이 웃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웃는 수밖에.
우리 목적지는 숙소에서 두 시간쯤 떨어진 곳이었다. 평화로운 초원에 말과 양이 있던 사진 한 장이 내 눈길을 끌었었다. 즉흥적으로 정했던 목적지. 네 명을 태운 차가 출발했다. 운전사 아저씨 뒤에는 내가, 가이드 뒤에는 남편이 타고 있었다.
흙길을 조금만 벗어나니 사방이 초록이었다. 도로가를 따라 높은 나무들도 심어져 있었고 멀리 물이 흐르는 모습도 보였다. 마주치는 차도 거의 없었다. 창문을 내리니 기분 좋은 바람이 들어온다. 손을 가만 내밀었다. 손등 위로 나무와 해가 만들어낸 그림이 수시로 바뀌었다. 아이팟을 꺼내 담아 온 노래를 틀었다(에어팟 아니고 음악만 나오던 아이팟이다). 바비킴과 윤도현이 함께 부른 ‘여행길’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남편과 이어폰으로 노래를 나눠 들으며 바람이 기분 좋게 지나다니는 것을 느꼈다.
그때 차가 속도를 줄였다. 앞을 보니 도로를 다 차지하고 걷는 양 떼가 있다. 양 무리 사이에 혼자 높이 솟아있는 아저씨는 양의 속도대로 걷는 말 위에서 어린양 한 마리를 끌어안고 있다. 이 초록색 풍경과, 기분 좋은 바람과, 바쁠 것 하나 없는 말의 속도가 완벽하게 조합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우리는 목적지까지 갈 수 없었다. 중간에 흙더미가 길을 막았다나. 대신 가이드가 급하게 하루 묵을 수 있는 곳을 찾아냈다. 흡사 동그란 텐트 같은 모양의 게르(Ger)였다. 게르는 몽골족의 이동식 집으로 나무로 뼈대를 만들고 천으로 덮은 형태의 집이다. 가이드를 따라가니 게르가 몇 채 있었고, 아이도 여럿 보였다. 우리는 그중 한 곳으로 안내되었다. 안에는 생각보다 꽤 넓고 아늑했다. 여기서 하루 묵고 다음날 오토바이를 빌려 다시 출발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화장실처럼 보이는 곳이 없다. 물어보니 손가락으로 코앞의 풀밭을 가리킨다. ‘응? 저기 풀밭에다가 싸라고?’ 아무리 그래도 허니문인데 사방이 뚫린 풀밭에서 엉덩이를 보일 수는 없지 않은가? 순간 북경에서의 칸막이 없는 화장실이 그리워졌다. 아니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싶어 불쌍한 고양이 눈을 하고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더니 이번에는 더 먼 곳을 가리킨다. 손가락을 따라가니 나무판자로 3면을 가린 간이 화장실이 서있었다. 이미 화장실은 포화상태고 냄새는 코를 찔렀지만 개의치 않았다. 막혀 있는 게 어딘가!
다음날 킁킁대는 소리에 눈을 떴다. 게르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을 반질한 코 하나가 가로막고 있었다. 이렇게 기분 좋은 알람이라니. 저절로 웃음이 났다. 슬며시 문을 열고 나가자 게르 주인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내 얼굴만큼 크고 납작한 빵 하나를 내민다. 따끈하다. 맛도 있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아줌마에게도, 옆에 웃으며 바라보는 아이에게도 고맙다고 말했다. 마음으로 전해질테니까.
이런 여행이 좋다. 타이트한 스케줄과 정해진 목적지가 없는 이런 즉흥적이고 여유로운 여행을 사랑한다. 촘촘하게 짜여진 여행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해 줄 수는 있겠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정해진 것 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출발하는 여행은 결이 다르다. 마음은 차분해지고 서두를 일 없이 여유롭다. 정해진대로 되지 않을까 불안할 필요도 없다. 더 많이 보려고 욕심내지 않아도 된다. 그저 앉아서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도 그 조용한 정적이 주는 행복이 있다.
평소라면 계획이 어긋났을 때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거다. 매일 할 일을 촘촘하게 짜는 성격이니까. 하지만 여행이니까, 예상치못한 모든 일들이 나는 즐겁다. 행복하다.
이 날도 길이 막힌 덕분에 게르에서 자는 행운을 얻었다. 길이 막힌 덕분에 가이드는 어디선가 오토바이 두 대를 빌려왔고(남자도 한 명 더 데리고 왔다), 그 덕에 허니문에서 생판 모르는 남자의 등에 매달리는 웃지 못할 일도 생겼다. 길이 막힌 덕분에 눈 쌓인 초원을 바람을 가르며 달려봤다. 양말을 여러겹 손에 끼고, 가지고 있던 옷을 겹겹이 입고도 덜덜 떨릴만큼 추워도봤다. 겨우 도착한 목적지는 정작 외국인이 허가없이 숙박할 수 없던 곳이라 호텔에서 나갈 수도 없었다. 그래도 뭐, 다 추억이니까 마냥 좋다.
남들이 보기에는 다소 특이한 신혼여행. 우리가 결혼한 지 17년이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신혼여행에 대한 기억을 종종 꺼내본다. 그러면 살며시 미소가 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