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몽 Dec 03. 2024

결혼식 준비도 일종의 프로젝트 아닌가요

우리가 결혼을 준비하며 싸울 수 없었던 이유


다른 사람들은 결혼 준비를 어떻게 시작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결혼준비는 도현이 다니던 SK텔레콤 회의실에서 시작되었다. 경비 말고는 보이는 사람 하나 없던 어느 주말 아침, 도현의 손을 잡고 을지로입구에 있던 SK텔레콤 1층 게이트를 통과했다. 나는 바로 옆 하나은행 건물에서 일하고 있었으니 오며 가며 매일 보던 건물이지만 실제로 안에 들어와 본 건 처음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가 근무하는 사무실을 그대로 통과해 회의실에 들어갔다. 사무실 구경도 좀 시켜주고, 도현의 자리도 좀 보여준다던가, 하물며 탕비실 구경이라도 좀 시켜주리라 기대했던 나는 맥이 빠졌다. 회의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임원진 앞에서 발표를 하는 자리도 아닌데 그는 비장했다. 그 어떤 프로젝트를 대할 때보다 진지해 보였다. 


그는 익숙하게 노트북을 열더니 엑셀 프로그램을 펼쳤다. 결혼식장, 가구와 가전 같은 혼수, 웨딩사진, 부산에서 서울까지 대절하는 버스, 전세금 등 결혼식에 필요한 항목이 차례로 나열됐다. 그리고 '총 자산'과 '예산'이라는 항목도 추가되었다. 나는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바로 내가 모은 돈을 오픈하는 일. 도현에 비해 많이 모자랄 내 월급을 저기 어딘가 입력하는 일. 결혼하기로 한 이상 언젠가는 거쳐야 할 일이었다. 연애 때는 그가 굳이 묻지 않았기에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어 보였다. 월급이 지난 인생에 대한 성적표라도 되는 양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긴장을 감추기 위해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툭 말을 뱉었다. 


막상 말하니 별 일 아니었다. 도현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숫자를 합치는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어차피 기대도 안 했다는 듯이. "통장을 하나로 합치고 시작하는 게 좋아."라는 그의 말에 나는 그 자리에서 그러겠노라 약속했다. 무언가에 홀린 것만 같았다. 엑셀에 숫자가 합쳐졌으니, 통장도 합쳐지는 게 맞지. 암, 네 말이 다 맞지. (당시 나는 하나은행 사이트 개편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고, 이전까지 하나은행 앱은 지금과는 그 모습이 확연하게 달랐다.) 

도현은 즉시 다음 단계로 이동하고 있었다. 바로 총자산에 맞춰 대략적인 예산 짜는 일. 그는 자신의 목표를 '최대한 돈을 아껴서 현금화 만들기'에 있다고 했다. 즉, 결혼식에 돈을 많이 쓰지 말자는 뜻이었다. 묘한 설득력을 가진 그의 단호한 말에 나도 모르게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 그래, 그럼 좋겠네, 그게 다 맞지, 이번에도 네가 다 옳아, 하고. (이건 두고두고 잘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다음 한 일은 결혼식장을 고르는 일이었다. 도현은 네이버를 열고,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대충 쓱 쓱 보았기에 오래 걸리지 않았다. 후보는 3곳, 위치도 제각각이었다. (후에 알게 된 건, 도현은 검색에 나오는 상위 3개에서 선택하는 사람이었다. 결혼식장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전화로 방문 
시간을 잡은 후 우리의 첫 번째 미팅은 막을 내렸다. 그렇게 도현의 주도 하에. 





사실 주변에서 결혼 준비하며 싸웠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다. 이유도 다양하다. 신혼집을 남자 쪽 직장 가까운 곳에 잡을 것인지, 여자 쪽 친정 가까운 곳에 잡을 것인지. 누구는 남자 쪽에서 24평짜리 신혼집을 사줬다는데, 왜 당신네는 전세밖에 못해주는지. 결혼식 규모는 어떻게 할 것인지, 축의금은 누가 가져갈 것인지. 여자는 스테이크는 썰 수 있는 결혼식을 원하는데, 남자 쪽에서 뷔페면 됐다며 싸웠다는 친구도 있고, 하물며 집에 거는 옷걸이 하나 가지고도 다툰 친구도 있다. 몇십 년 남으로 살아온 사람과 단기간에 수십 가지의 결정을 거치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거다. 겹겹이 쌓인 피로에, 돈 문제가 얽히니 예민해질 수밖에 없을 거다. 게다가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니까. 
하지만 우리는 싸우지 않았다. 결혼식만큼은 일사천리였다. 막상 같은 집에 산 후에 참 많이도 싸웠던 걸 생각하면 신기한 일이다. 대체 뭐 때문에 싸움 한 번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면 네 가지 이유가 가장 큰 것 같다.
첫째, 돈을 하나로 합쳤으니 예민한 줄다리기가 필요 없었다. 둘째, 목표가 돈을 아끼는 데 있었으니 선택의 기준이 분명했다. 셋째, 내가 잘 맞춰주는 편이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양가 부모님에 있었다. 


남편은 부산에서 자랐다. 위로는 누나 둘과 형이 하나, 그는 넷째이자 늦둥이로 태어났다. 우리가 연애하던 당시 형은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였고, 어머님은 순서를 지키기를 바라셨다. 전에 말했지만 난 연애를 오래 하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더 늦추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형이 만나는 여자도 없는 상황에서 어느 세월에 그걸 기다리나 싶었다. 그래서 도현에게 말했다. "나는 (한국나이로) 29살에 결혼하던가, 34살에 결혼할 거야." 근거도 없다. 당장 하지 않으면, 5년 뒤에 할 거라는 암묵적인 협박이었다. 그리고 그 협박은 통했다. 당장 결혼하겠다며 부산 어머니를 설득한 거다. 만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지만, 양가에서 허락이 떨어졌으니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 

상견례는 서울의 한 한정식 집에서 이루어졌다. 총 6명, 식탁을 가운데 두고 3명씩 짝을 지어 앉았다. 전형적인 상견례 대형이었다.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결혼식은 서울에 한다는 둥, 신혼집은 도현이 미리 마련해 둔 행신동 집으로 들어간다는 중, 미리 입을 맞춘 이야기가 양가 어른들의 입을 통해 확정되었다. 그리고 어머님은 마지막으로 못을 박으셨다. "결혼식에 들어갈 돈으로 전세금 보태는 게 맞지요?"라고.  

양가 부모님은 각자 3천만 원가량의 돈을 해주셨다. 하지만 시기는 달랐다. 도현은 일찌감치 그 돈을 받아 아파트를 사는 데 사용했다. 그 이외에는 받지 않기로 한 것 같았다. 전세를 끼고 산 것이기에, 우리가 행신동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입자에게 줄 전세금이 필요했다. 시어머니는 우리가 결혼식에 큰돈을 쓰기보다 전세금을 빼주는데 그 돈을 쓰길 바라셨던 거다. 
출처와 사용처가 명확해지니 
더 이상 양가 부모님이 간섭할 여지도,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결혼 준비는 오롯이 우리 둘의 결정에 의해 이루어진 셈이다. 결혼반지는 종로 금은방에서 큐빅이 박힌 커플링으로 대체했으며, 전자제품도 한 LG 매장에 들어가 한번에 구매했다. 결혼식을 서울에서 하는 대신 식비는 우리 집에서, 부산에서 오는데 드는 비용은 도현네 집에서 부담하기로 했다. 결혼식장은 셋 중 가장 넓다는 이유로 강남역에 있는 '과학기술회관'으로 결정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2017년 6월 10일, 부부가 되었다. 고작 만난 지 9개월, 세 개의 계절을 함께 한 뒤였다. 이 남자가 여름에 땀을 얼마나 많이 흘리는지 알지도 못한 채, 앞으로 핑크빛 미래만 펼쳐질 거라는 착각 아래 올린 행복한 결혼식이었다.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