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평범했던 나
나는 똑똑한 사람을 만나는 게 편하지 않다. 그들 앞에만 서면 한없이 쪼그라든다. 하지만 뭐 인생이 마음대로 될까.
도현을 만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을 때였다. "대학교 동아리 친구들 만나는데 같이 갈래?" 반짝이는 눈으로 그가 물었다. '다... 카이스트생이겠네?' 불편한 마음 89%, 궁금한 마음 2%, 알 수 없는 감정이 9%쯤 되었던 것 같다. 89%에는 모르는 사람 여럿이 있는 자리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 그것도 똑똑한 사람들을 특히나 마주치기 싫은 마음, 그 사람들 앞에 이름 모를 회사의 명함을 내밀기 부끄러운 마음, 도현과 나를 비교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되는 마음, 잘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뒤섞여 있었다.
내가 머뭇거리자 눈치 빠른 그는(연애 때는 참 세심했는데!) 불편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갔다가 재미없으면 바로 나오자며 나를 부추겼다. 그래서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왁자지껄한 모임이라면, 술이라도 한 잔 걸치면 나의 낯가림도 스르르 풀릴 테니 괜찮을 줄 알았다. 게다가 자신감 있고 당당한 현대 여성으로 보이고 싶던 시절이라, 싫다는 말이 쉽게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걱정이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은 채 웃으며 알겠다 말했다. 제발 괜찮기를 바라면서.
도현이 나를 데려간 곳은 한 커피숍이었다. 모임이라더니! 모임은 술 아닌가? 무슨 모임을 건전하게 커피숍에서 한단 말인가. 침착해야 했다. 나랑 다른 세계 사람들이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똑똑해 보이지라도 못하면 착해 보이기라도 해야 한다. 그래서 입꼬리를 잔뜩 올린 채 들어갔다.
똑똑해 보이는 카이스트생 몇이 동그란 테이블 2개를 붙여 앉아있었다. 여자는 한 명, 남자는 여럿이었다. 호기심 어린 눈빛과 어색한 인사가 지나가자 자기들끼리만 아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과거는 과거대로, 현재는 현재대로, 분명 한국말인데 아는 내용이 없다. 모르는 외국어를 대할 때처럼 점점 멍해지며 아무 이야기도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식은땀도 나는 것 같다. 나가고 싶다. 가야겠다. 분명 재미없으면 가자고 했으니 눈치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나를 꺼내달란 말이다! 속으로 말하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다행이다. 그가 나의 눈에 담긴 말을 무사히 해석했다. 밖으로 나오자 그제야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 뒤에 앉아 창문을 조금 열고 바람을 들이마셨다. 다시는 이런 자리 나가지 말아야지. 다시는, 모르는 똑똑한 사람들 무리에서 바보가 되진 말아야지. 이 남자는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앞날도 모르고 허망하게도 그런 다짐을 했다.
사실 나는 도현을 만나기 전까지,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를 2년 만에 졸업할 수 있는 줄 몰랐다. 고등학교는 무조건 3년 다녀야 하는 줄 알았다. 내 주변에는 다 그랬으니까. 그게 당연한 거였으니까. 그래서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도현은 나와는 다른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도현의 집은 부유한 편이 아니었다.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에게 도현의 부모는 원하는 대로 학원을 보내줄 형편이 되지 못했다. 유일하게 다닌 곳이 컴퓨터학원이었던 도현은, 중학교 3학년 무렵 과학고등학교를 가고 싶다며 엄마를 졸랐다. 몇 달 후에 형편 때문에 학원을 다닐 수 없게 되자, 학원 선생님이 도현을 무료로 가르치게 된다. 당시에도 과학고를 가기 위해서는 몇 년에 걸쳐 준비를 따로 하는 분위기였지만, 뒤늦게 시작한 그는 원하는 학교에 당당히 들어간다. 맨 똑똑한 아이들만 모아놓은 그곳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곧 적응했던 것 같다. 국제 수학경시대회에서 상을 받아 고등학교를 2년 만에 졸업했으니 말이다. (카이스트에는 그런 친구들이 영 드물지는 않다고 한다) 그래서 79년에 태어난 도현은 다른 친구들보다 한 해 앞서, 대학생이 되었다.
도현은 저렴한 학비로 대학을 다녔고, 교환학생으로 뽑혀 학교 지원으로 일본에 1년간 머물렀다. 언어 쪽에도 소질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그냥 머리가 좋은 건지, 단 1년 만에 도현은 일본어를 마스터한다. 그 경험은 후에 비즈니스로도 이어진다.
과학고등학교, 카이스트, SK텔레콤. 그의 주변엔 늘 그런 친구들만 있었을 거다. 친구의 기본값에 똑똑함이 너무도 당연하게 포함된. 그게 그의 세계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컴퓨터학원을 다니며 공대생의 길에 들어섰을 때, 나는 비싼 미술학원에 다녔다. 우리 집도 공부에 관심 없기는 매한가지였지만, 부모님은 원하는 건 모두 지원해 주시던 분들이었다. 도현이 없는 형편에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면, 나는 온실 속 화초처럼 애지중지 티미하게 자랐다. 그가 대학교 2년차가 되어 캠퍼스를 누리고 다닐 때, 나는 입시에 실패하고 기어이 재수를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간 곳이 덕성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과였다. (우리는 같은 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으나 도현은 97학번이고, 나는 99학번이다) 인서울이고, 친구들 사이에서 나쁜 편이 아니었음에도 도현을 만나자 내가 살아온 인생은 부끄러운 조각 같았다. 집에서 해주었던 지원, 공부 쪽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머리, 재수, 평범한 학교까지. 도현보다 앞서 있는 건 단 하나도 없어 보였다.
사실 친구들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도현과의 차이를 크게 느끼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저 평범한 연인이었고, 사랑하는 사이에는 그런 게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니까. 그가 여느 커피숍에서 여직원에게 당신의 잘못한 점에 대해 번호까지 달며 지적할 때는 뭔가 잘못됐다 싶긴 했다. 하지만 내가 당황하자 더 이상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후에 종업원 자리에 내가 서게 될 줄은 몰랐지만) 잠깐 그런 것일 뿐,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우리는 비슷한 사람일 거라는 큰 착각까지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까지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만큼 그의 주변인들과 나의 주변인들은 결이 달랐다. 25년간 머리와 가슴에 담은 생각도 달랐고, 단단하게 굳어진 그 생각들은 좁히기가 어려운 것이었을 거다. 이날 도현 친구들과의 만남은 우리 사이에 이런 벽이 있음을 어렴풋하게 깨닫게 해 주었다.
이 날 명확하게 깨닫게 된 건 나의 캐릭터에 대해서다. 이제까지는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와서 몰랐는데, 알고 보니 나는 아는 거 많고, 말 잘하고, 똑똑한 사람을 마주하는 걸 아주 불편해하는 캐릭터였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아, 저는 공부를 못해서요'라고 뻔뻔하게 말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니었고, 타고나길 다른 사람이 몹시 신경 쓰이는 내향인이었으며, 어버버 말 잘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격지심 비슷한 것도 있었으니까.
사람 성격 변하는 거 아니니, 사실 나 같은 캐릭터는 똑똑한 사람보다는 오히려 조금 모자란 사람을 만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논리를 앞세워 지적하기보다는, 따지지 않고 가만히 손 잡아주며 잘한다 응원해 주는 쪽에 더 힘이 나는 사람이니까. 굳이 내가 모자란 부분을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사람을 만날 필요는 없었으니까.
재미있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제 도현의 똑똑한 친구들이 더 이상 불편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그건 내가 변해서도, 나이가 들어서도 아니다. 글을 쓰면서 생긴 좋은 버릇 덕이다. 이전까지는 나와 결이 맞는 사람, 내가 말 걸기 편한 사람과만 대화하고 싶었다. 똑똑한 사람, 결이 다른 사람들과는 무슨 대화를 하면 좋을지 막막하기만 했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하지만 글을 쓴 이후 나는 모든 사람이 궁금하다. 그들의 인생이, 그들의 스토리가, 안에 담긴 생각을 알고 싶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자리를 피할까' 생각하기보다는 의자를 앞으로 바짝 붙이고 상대방의 눈을 보며 질문한다. 진심으로 너무나 궁금해서. 결이 다를수록, 나와 살아온 인생이 다를수록 그 답을 듣는 재미가 있다.
우리는 살면서 나와는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다.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아이 친구 엄마들 사이에서든, 심지어 가족 간에도. 만약 상대방이 나와 너무 달라서 불편하다면 굳이 이해하려 할 필요 없이, 제 3자가 되어 상대방을 인터뷰한다 생각하고 질문을 던져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