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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May 15. 2024

우연히라도 볼 수 없음을.

대학생 때의 일이다. 대학교 단체 톡방에 메세지가 와있었다. 전공 교수님이 돌아가셨다는, 조의금은 정중히 거절하겠다는, 스물여섯 평생 남의 일인줄만 알았던 조문의 길로 나를 안내하는 글이었다.


형의 양복을 빌려 장례식장에 가니, 다른 교수님들은 먼저 오셔서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들어가니 교수님의 사진이 있었다. 사진 속 교수님의 밝은 미소는 내가 자리했다는 것만으로도 족하다고 말씀하시는 듯했다. 상주분께 인사를 드리고 교수님께도 인사를 드렸다. 떠나간 이와 남은 이들을 함께 보는 일은 아픈 일이었다.


육개장에 밥을 말아먹으며 생각했다. 볼 일이 없지만 우연히 볼 수도 있는 것과 우연히라도 다시는 볼 수 없는 것. 끝끝내 서로를 보지 못하는 것이 같다고 할지라도, 영원한 이별을 실감하는 과정이 얼마나 많은 차이를 불러오는가에 대해서. 꿈이 없는 잠에, 끝이 없는 잠에 드셨구나. 그 어떤 세상도 이젠 교수님에게 존재하지 않게 되었구나.


사후세계는 분명 존재하지 않겠지만, 빈소에 찾아온 제자들을 지켜보는 정도의 행복은 느낄 수 있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의 음성은 나긋하신 편이라 쉬이 눈이 감기곤 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의 황순원 연구 저작물들을 읽을 때면 언제나 감탄하곤 했죠. 언젠가 당신께서 황순원 작가처럼 자다가 죽고 싶다고 말하셨던 게 생각이 납니다. 덕을 쌓으며 살다보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말예요. 그렇게 가셨나요. 부디 그러셨길 바라요. 그리고 그곳에서는 평안하시길 빕니다.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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