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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일 Apr 17. 2024

의미 없는 일이 없다는 생각.

영화 속 인물들은 대체로 잡생각이 없다. 일을 하든, 사랑에 빠지든 영화 속 인물들은 놀라울 정도로 눈 앞에 벌어진 사건 하나에 집중을 해낸다. 피터 파커는 벤 삼촌의 죽음으로 큰 힘에 따르는 큰 책임을 통감하여 스파이더맨으로 각성하게 되었고, 반지의 제왕 프로도 배긴스는 절대반지의 사악한 힘을 감당하지 못하는 유력자들을 마주하고 반지를 옮겨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다.  


나도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눈 앞의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 돌아오지 않을 옛 추억을 끊임없이 회상하거나, 불투명한 미래를 심각하게 걱정하거나, 남들과 자꾸 비교를 한다든가, 그런 것들은 잠시 나를 각성시키고 지나갈 뿐이며, 이윽고 사건이 진행되는 방향으로 금방 몰입하여 성취해내는, 놀라울 정도로 작가 편의주의적인 행동양식과 결과를 취하는, 테마가 정해진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거다. 하지만 그러기엔 나는 생각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 생각은 열심히 사는 게 싫어 지어내는 변명같은 생각들이다. 새로운 지식을 겉핥거나, 새로운 취미를 만들어내는 식으로 얇고 넓게 아는 척이나 하며 살고자 하는 내 하찮은 습성에서 비롯된 쓸데가 많지 않은 생각들이다. 


2018년 말, 병장을 단 나는 싸지방에서 유튜브만 주구장창 보고 있었다. 지금은 학교 선생님이 된, 가장 친했던 군대 동기가 내게 유튜브를 뭐 그렇게 많이 보냐고 물었다. 거기에 난 재밌어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냥 보고 싶어서 본 것도 맞지만 당시의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재미있는 영상을 보면 당연히 그 영상 속의 재치를 배우기 마련이니까. 


나는 무엇을 하든 그 모든 경험들이 내게 어떤 식으로든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중요도 차이는 있겠지만 의미 없는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는 거다. 짐짓 긍정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사고방식은 내게 많은 잡지식, 많은 영감을 안겨주었지만, 죄책감 없이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는 면죄부가 되기도 했다. 글을 써야 할 시간에 글을 쓰지 않고 10시간이 넘는 반지의 제왕 감독판을 밤새 정주행하는 것도 이런 논리로는 아주 쉬운 일이 된다. 


‘시간을 흘려보내며 노는 것조차도 내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니 한다’ 라는 논리는 노는 시간을 그 자체로 즐길 수 없게 만든다. 노는 행위 자체가 수단에 불과하게 되면, 시간을 죽이며 놀기 위함이라는 진짜 목적을 잊고, 노는 일 자체를 가치가 충만한 ‘일’로써 여기게 된다. 그러자면 영화를 보고, 만화를 보고, 책을 읽고, 위스키를 공부하고, 바에 가고,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기타를 치고, 노래방을 가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게임을 하고, 온갖 유튜브를 보는 모든 노는 행위들이 내겐 노력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노는 것이 내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렇듯 나는 노는 것에 교양을 쌓는다는 명목을 더해 일하듯 놀았다. 내가 지지부진한 인간이 되는 데에 큰 공헌을 한 것이 바로 이런 어줍잖은 사고방식이다. 의미 없는 일이 없다는 낙천적인 메타인지에 취해 할 수 있는 데까지 의미를 부여하면, 놀지 않아야 할 시간 따윈 없는 것이었다. 


매사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 말인즉슨 순수를 잃는다는 것이다. 가령 내가 너무 슬픈 일이 있어 눈물이 나올 것 같을 때, 눈물을 흘리려는 내가, 어쩌면 눈물을 흘리는 내 모습에 도취하기 위해 그러는가 하고 슬픔보다는 자괴감이 더 커져버려서, 그러자면 내 눈물샘을 자극하려는 그 어떤 것에도 진심으로 대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가령 내가 이렇게 글을 쓸 때에도, 어쩌면 돈을 벌든 벌지 못하든 ‘작가’라는 타이틀에 만족하기 위해 억지로나마 글을 쓰는 게 아닌가 싶어, 빠르게 글을 쓰던 손을 멈추곤 하는 것이고, 반지의 제왕을 보면서도 언젠가 이러한 영웅 서사를 바탕으로 소설을 써보면 어떨까 생각을 하다 영화의 흐름을 놓쳐버리곤 하는 것이다. 


매사 의미를 부여하는 습관 덕분에, 어두운 글을 잘 쓰게 되긴 했다. 같은 주제로 소재만 바꾸어 이건 이래서 노력이 어렵고, 돈은 쉽게 벌고 싶고,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고, 이젠 달라질 거며, 나의 쓸모를 어떻게든 증명하겠다는, 공수표만 주구장창 써대는, 써도 써도 쓰는 내가 지치는 글밖에는 나오지 않게 되었지만, 이런 우울한 심상의 찌꺼기도 담을만한 의미가 있다고 스스로를 달래다보면, 이런 글이 겨우 써지기도 한다.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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