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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와테현와규 Jan 07. 2024

굳이 굳이 낭만 찾기

교통사고, 그리고 다른 나라.

 얼마 전, 서면의 롯데백화점에서 상상마당 쪽으로 영화를 보러 걸어가던 나는 트럭의 사이드미러에 왼쪽 견갑을 부딪혔다. 사실 교통사고라 하기에는 조금 거창한 느낌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차에 부딪혔으니 교통사고라고 하자. 아무튼 그 당시 내가 걷던 거리는 매우 좁아서 차량이 이동하기 힘든 곳이다. 성격상 길 한복판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딱 붙어서 걸어갔고 몸을 움츠린 채로 시간을 보기 위해 폰을 열었다. 그 순간 묵직한 물체가 나를 세게 밀쳤고 뭐지 하면서 나를 친 쪽을 바라봤더니 술을 배달하는 트럭운전사가 클락션도 울리지 않고 나를 밀치고 지나간 것이었다. 옷이 두꺼웠고 좁은 골목이라 속도를 크게 낼 수 없었기에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만약 여름이었으면 상당히 아팠을 것 같은 강도의 부딪힘이었다. 어쨌든 운전자의 부주의로 나를 쳤고 운전자는 주변을 전혀 살피지 않고 나를 쳤기에 바로 사진을 찍고 경찰에 연락을 하여 사고경위서를 썼다. 교통사고 조사팀에서는 내가 작성한 조서를 토대로 그 근처의 CCTV는 다 찾아보겠지만 확실한 각도의 영상증거가 확보되지 않으면 해당 운전자는 그 어떤 과태료나 벌점도 받지 않을 것이라 한다. 만약 병원을 방문하여 비용이 발생하면 그 부분을 청구하라고 했지만 그 또한 증거가 없으면 돌려받을 수는 없는 부분인 것 같았다. 차에 치였어도 사과 한 마디조차 받지 못한 것에 답답하던 나는 문득 4월에 방문했던 사이판이 생각났다.


 "여기는 어떠한 경우라도 사람이 우선이야."

 아침 일찍 일어난 현지인 친구와 나는 물놀이에 필요한 물건을 사러 '아이러브 사이판(I LOVE SAIPAN:  사이판 기념품을 판매하는 곳인데 화장품이나 의류, 다양한 잡화도 판매하여 중소형의 마트느낌이 난다.)'을 방문했다. 매장 영업시간이 10분가량 남아있어 옥상 주차장에 차를 대고 쨍하게 내리쬐는 하늘 아래의 도로를 바라봤다. 차가 없으면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이판의 도로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차가 많이 없었다. 좀 많이 평화롭고 조용했다. 한국이라면 교통체증으로 빵빵 울리는 소리가 가득할 시간이었는데 말이다.

아이러브사이판에서 바라본 사이판의 아침.

 사실 애초에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이 없다. 한국에서는 가끔 6-8차선에서도 차가 없으면 냅다 가로질러 뛰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말이다.(얼마 전, 퇴근길에 그 모습을 보고 경악을 했던 기억이 있다. 아직도 저러는 사람들이 있는가.) 또한 교통체증이 없고 주차공간이 넓다 보니 이러한 부분으로 인한 분쟁도 일어나지 않는다. 

"더 신기한 게 뭔 줄 알아? 이곳에서는 스쿨버스가 지나가면 모든 차가 멈춰야 해."

 교육 관련 부분에서는 예산이 많이 배정되어 있기 때문에 좁은 섬나라이지만 모든 어린 학생들이 평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도록 많은 부분들이 지원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섬마을 전 주민들이 노력할 뿐만 아니라 교통법으로도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부분이 제정되어 있다고 한다. 물론 이 부분은 현재 우리나라도 많이 개선이 되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집 앞 스쿨존에서 과속하는 일반 차량들을 볼 수 있고 간혹 중고등학생들을 태우고 나가려는 스쿨버스보다는 외제차가 먼저 치고 나가는 장면도 보인다. 횡단보도에서도 여전히 보행자는 달려오는 차의 눈치를 본다. 

 

 몇 년 전, 프라하에 갔을 때 겪었던 일이다. 대한민국 사람답게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차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당시 차는 분명 먼저 지나갈 기세였고 나는 조금 멀리서 그 횡단보도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차가 먼저 지나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운전자는 웃으면서 내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고 계속 기다리고 있자 건너가라고 손짓까지 했다. 그 순간 놀란 나는 고개를 꾸벅하고 뛰어 지나갔다. 얼마 전에 센텀홈플러스와 동해선 벡스코역 사이의 횡단보도에서 초록불이 들어와 건너던 나는 속도를 줄이지 못해 급정거하던, 나를 쳐다보며 클락션울 울리던 옆에 딸을 태우고 있던 모닝 운전자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몇 년 전에는 센텀 홈플러스 앞 신호등이 없던(현재는 신호등이 생긴) 커브길의 횡단보도에서 속도를 오히려 높이다가 급정거한 뒤 클락션을 울리며 입으로 욕을 하던 G80운전자의 선글라스 뒤에 가려졌지만 불타오르던 눈빛도 잊을 수가 없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사람보다 차가 더 세다.

긴장하며 방문했던 프라하 또한 사람이 우선인 나라이다.


 법이 아무리 강력해져도 오랜 시간 잘못 다져진 습관들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 같다.(왜 아직 한국이 혼자 여행하기 안전한 곳 10위안에 들지 못하는가에 대해 이러한 운전문화도 분명 반영이 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신호를 지키고 조심해도 아직 사람은 약하다. 운전자든 보행자든 선을 넘지 않는,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사람들이 억울하지 않은 그날이 얼른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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