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기 위해 글을 썼다

- 자격증 18개와 100일 도전 사이에서 찾은 숨구멍

by 서니온

"뭘 매번 그렇게 열심히 해? 얼굴도 전보다 많이 상했네.

바깥일 하고 애들 건사하는 것도 힘든데... 너무 무리하지 마."


"뭐든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내가 숨을 쉬지.

○○이랑도 덜 부딪치고... 살려고 하는 거야."

스님 동생은 늘 뭔가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던 나를 몹시 걱정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눈앞의 답답한 현실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매사 비판적인 친정아버님과 ADHD 사춘기 아들 사이에서

풀리지 않는 스트레스는 겹겹이 쌓여만 갔다.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난 지극히 내향적 성격의 개그우먼을 닮았다.

낯가림이 엄청 심하고 소심했지만,

일단 친해지면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재미와 웃음을 선사하였다.

내가 슬며시 던진 개그가 빵 터질 때면 내 볼의 보조개도 활짝 만개했다.


가장 큰 고민은 타인의 시선이나 주목을 받게 되면 불타는 고구마가 되는 것이었다.

금세 홍당무처럼 빨개지는 얼굴이 너무 창피하고 싫었다.

한창 예민할 때에는 온몸의 피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빼냈으면 좋겠다는

무서운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마음과 다르게 장기자랑 때마다

두 눈 질끈 감고 과장된 몸동작으로 흥겨운 트로트나 CM송을 불렀다.

친구들의 까르르 숨 넘어가는 웃음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무아지경이 되었다.


하지만 20대 마지막을 장식한 결혼을 시작으로

불행한 일들을 연달아 겪으면서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특히 사람과 관계 맺는 일은 어렵고 불편하기만 했다.

부득이하게 사회적 가면을 쓴 채 크고 작은 만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밀려오는 자괴감과 괴리감으로 더욱 현실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되도록 외출을 삼가고 사람과의 접촉을 피했다.

집과 직장을 오가며 내 역할과 의무를 수행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러곤 방전된 몸으로 내 방에 틀어박혀 읽고 쓰고 공부했다.

길고 캄캄한 터널 속에 갇혀있던 20여 년 동안, 취득한 자격증만 해도 18개다.

보육교사,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명상심리상담사, 감정코칭전문가, 에니어그램 상담사...

자격증이 쌓여갈수록 한동안 자신감이 회복되는 듯했다.

하지만 그 기쁨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다양한 100일 동안의 활동도 시도해 보았다.

간절한 마음을 담아 절과 기도를 올리기도 하고,

아침저녁으로 명상 후 일지를 작성하기도 했다.

마음근력 강화를 위해 강의를 듣고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노트에 적었다.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천재'라는 수식어로 불리는 가수 양준일 님의 열렬한 팬이 되기도 했다.

간신히 붙들고 있던 작은 희망이 무참히 사그라들던 코로나 시기,

그와 함께하는 동기부여 플랫폼 '카카오 프로젝트 100'은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양준일 님과 100 명의 참가자들이 매일 다채로운 글을 써서 올리고,

서로의 글로 울고 웃으며 따뜻한 공감과 위로를 나누었다.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블로그도 늘 진심이었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마음 가는 대로 끄적이기도 하고,

좋은 책으로 필사도 하고 느낀 점도 적었다.

장르별 벽돌책을 골라 열심히 읽고 정리해서 올리기도 했다.


몰입해서 글을 쓰는 동안 부정적인 감정은 서서히 옅어졌다.

어느샌가 글로 소통을 주고받는 고마운 이웃도 생겼고,

함께 나눌수록 블로그 포스팅의 즐거움은 배가 되었다.

그 시간들이 나를 조금씩 제자리로 돌려놓고 있었다.


공허한 인간관계에서 발 물러나 말을 줄이고 꾸준히 글을 쓰자,

한쪽으로 기울었던 마음이 균형을 되찾기 시작했다.

엉망진창 꼬여 있던 내 인생도 서서히 풀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