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명상일지, 나를 세우다

- 온전한 내 편을 만나고, 아이들의 편이 되기로 했다

by 서니온

"스님, 제가 집에 돌아가서도 배운 대로
잘할 수 있을까요? 벌써부터 걱정이 올라오네요."


"그럼요, ○○씨는 충분히 잘 해낼 거예요.
정 그렇게 불안하면, 매일 명상일지를 써보면 어때요?
분명 도움이 많이 될 거예요. 일지를 보내주면 내가 봐줄게요."


4박 5일의 상담 기간 동안 과분할 정도로 스님께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 명상일지까지 봐주신다는 말씀에 죄송하면서도,

내심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든든했다.
이번에는 도무지 혼자 헤쳐나갈 자신이 없었다.


아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생애 첫 단독 상담을 했다.
그로부터 5년 만에 두 번째 명상심리상담을 받았다.
그 사이 아들은 어느덧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공포의 코로나 시기,
절정으로 치닫는 ADHD 사춘기 아들의 반항과 난폭함으로
가족 간의 골은 점점 더 깊어져 갔다.




우선 아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스님께서 알려주신 핵심 지침 세 가지를
명상노트 맨 앞장에 또박또박 크게 적었다.


1. 잔소리 금지

2. 묵빈대처 默賓對處

3. 묵언수행 默言修行


결국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모두 침묵으로 대처하라는 뜻이었다.
늘 입이 화근이었다.
길길이 날뛰는 아이 앞에서 화를 낸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서로 마음만 더 상할 뿐이었다.


가장 오래된 불경, <숫타니파타>에도 '입안의 도끼'를 항상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언젠가 그 도끼로 자신을 찍고 만다는 것이다.


두 번째 상담 후, 하루도 빠짐없이 100일 넘게 명상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마다 스님께 명상일지를 보내드렸다.
다 쓰고 보니 노트 4권 분량이나 되었다.


들숨, 날숨, 멈춤…
내 호흡을 가만히 바라보는 호흡 명상을 통해
과거와 미래로 자꾸 흩어지던 마음을, 지금 이 순간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이제껏 스스로 낸 상처로 만신창이가 된 나 자신도 발견하게 되었다.


크고 작은 사건이 생길 때마다 마치 임금님께 상소문을 올리듯이 하나하나 상세히 적었다.
입을 다물수록, 일지 내용은 점점 더 늘어났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날 때는 후다닥 그 자리를 피했다.
끓어오르는 분노로 몸을 부르르 떨며 무작정 내 방 작은 책상 앞에 털썩 앉았다.


숨을 코로 크게 들이마시고, 입으로 길게 내뱉기를 반복하면서
성난 마음도 차차 잠잠해졌다.
그러곤 볼펜을 잡자마자
미주알고주알 신들린 듯 일지를 빽빽이 채워나갔다.


자제력을 잃고 내 마음속 미친 원숭이가 뛰쳐나온 날에는
'조금만 더 참을걸' 하는 후회와 반성으로 일지를 가득 채웠다.
다음에는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다짐하며
색색으로 밑줄을 치고 크게 별표도 그려 넣었다.


그러는 동안, 언제부턴가 신기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명상일지를 기록하면서 매번 비슷한 일들이 반복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황별 대처 방법을 정리하고 실천했다.
스님께 확인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화를 내는 횟수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내 말과 행동을 돌아보았다.
무엇보다 일일이 일지를 읽고 정성껏 답장을 주시는 스님께
실망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았다.


온전한 내 편 하나만 있어도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 했다.
만약 혼자 명상만 했다면, 이런 변화는 없었으리라.
변함없이 따뜻한 마음으로 격려해 주시는 스님이 계셨기에
가능했던 작은 기적이었다.


그제야 나도, 우리 아이들의 온전한 편이 되어주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