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이 언니는 안 그랬는데...
"아이고, 왜 사람들이 개 내다 버리는지 이제 알겠어.
아주 난리다, 난리~~"
앞집 주민, 아버님 댁 갈 때마다 하소연이 끝이 없다.
한동안 안 보이던 갈매기떼가 아버님 이마 위에 날아다닌다.
아니나 다를까.
집안 곳곳에 배변 패드가 갈기갈기 찢겨 있다.
콩알이가 조각난 패드를 오물오물 씹어 삼킨다고
아버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무리 혼을 내도 소용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신다.
일부러 목소리를 더 높여 야단을 치자
막무가내로 핥아대고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달려든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그 모습에
아버님도 나도 다시 두 눈에 하트가 뜬다.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아주 능구렁이가 따로 없다.
딸내미가 핸드폰에 깔아준 카톡 D-DAY를 보니
콩알이와 인연 맺은 지도 벌써 75일째.
두 달 남짓,
이젠 콩알이 없는 집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사실 마냥 귀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빨이 나면서 가려운지 닥치는 대로 문다.
앙징맞은 외모와 달리 앙칼지게 짖으며 한 성질 한다.
간식 앞에서는 초롱초롱 까만 두 눈으로 귀여움을 쏟아내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뾰족한 이빨로 거침없이 입질을 한다.
소리에 예민해 문밖에서 작은 소리만 나도
흰자위를 번뜩이며 목이 쉬도록 짖는다.
사회생활 만렙.
집안 식구들 서열 파악도 끝냈다.
1순위 : 무늬만 호랑이, 맞춤 시봉꾼 이모
2순위 : 감정기복 들쭉날쭉, 럭비공 카리스마 오빠
3순위 : 쥐락펴락, 세상 만만한 몰캉몰캉 언니
4순위 : 이빨 빠진 최고 연장자 견공, 할아버지
‘개는 훌륭하다’에서도 말티즈는 출연 1순위다.
참지 않기로 유명한 견종이 아닌가.
우리 집에 2주 있었던 겨울이 언니는 정말 얌전했다.
크면서 나아질까.
어느새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엔 훌쩍 커버렸다.
윤기 나는 흰 털은 사방으로 자라
급기야 삽살개가 되어버렸다.
앞은 보이니?
눈 주변 털이라도 잘라주고 싶지만
까칠해서 언감생심 손도 못 댄다.
6차 예방접종을 마치고 첫 미용을 예약했다.
산책하며 눈여겨본 동네 애견미용샵이다.
손이라도 물면 처음이자 마지막 미용이 된다.
조마조마했다.
미친 듯 달려 나와 폴짝폴짝 뛴다.
분명 우리 콩알인데 낯설다.
"아버님, 우리 콩알이 드디어 이발했어요!"
"우리 콩알이야? 콩알이 맞아?"
"저도 처음엔 누군가 했어요. 흰 가래떡 같죠?
볼에 연지곤지도 했어요."
"아~~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아버님이 노천명 시인의 「사슴」을 읊으신다.
둘이 마주 보며 웃음이 터졌다.
털 찐 모습도, 털 깎은 모습도 좋다.
있는 그대로 아끼고 사랑할게.
제발, 입질만 좀 고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