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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Mar 03. 2024

08. 순례길 아니고 술례길

본 글은 작년 9월 중순부터 10월 중순까지 약 31일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발행했던 뉴스레터 [From Santiago]를 공개하는 글입니다. 1편부터 차례대로 읽어나가시길 권합니다.




Day 6. 에스테야(Estella) → 로스 아르코스(Los Arcos) / 21.5킬로 / 6시간 16분


오늘은 대장간과 와인수도꼭지를 지나가는 날. 각각 아예기(Ayegi)와 이라체(Irache)라는 마을에 있는 유명한 명소이다. 한국에서부터 이 날을 기다렸다. 출발하기 전 날, 와인을 받아갈 생수통도 챙겼다. 오늘은 아주 즐겁게 걸을 수 있겠다.


아예기(Ayegi) 대장간. 가운데 불은 진짜 불이다.





순례길 아니고 술례길 1 - 와인 Wine

이럴 줄은 몰랐는데 스페인은 와인이 정말 싸다. 도시 곳곳에 와이너리가 많고, 강렬한 태양과 바람을 맞고 자란 포도는 상상 그 이상으로 달다. 우리나라 포도도 맛있지만 그것과는 좀 다른 느낌. 세계적 와인생산지로 유명한 라 리오하(La Lioha) 주에 입성하면 순례길에서 포도밭을 정말 많이 보게 되는데 땅에 떨어진 포도송이들은 주워 먹어도 된다. 때마침 포도 수확철이라 잘 익은 포도들이 많았고 포도를 따는 일꾼들도 있었다. 나도 땅에 떨어진 포도송이를 주워 먹었는데 걷는 내내 먹고 싶을 정도로 정말 맛있었다.



이라체(Irache) 와이너리에서 순례자들을 위해 운영하는 와인수도꼭지(심지어 무료)

와인수도꼭지는 이라체(Irache) 마을 초입에 있는 한 와이너리에서 순례자들을 위해 만든 것이다. 와인샘, 와인약수터라고도 불리는데 나는 와인수도꼭지라는 말을 먼저 알아버린 탓에 계속 저렇게 부른다. 그리고 기억에도 깊게 남는다. 여하튼, 와인수도꼭지는 매일 100L의 와인을 채우고 순례자들은 여기 들러서 와인을 맛보고 받아간다. 모두가 빈 생수병을 손에 쥐고 걷는 게 너무 웃겼다. 오전 8시가 되지 않은 이른 시각에도 와인수도꼭지 앞에만 사람들이 바글바글, 나도 놓칠 수 없지. 준비해 온 생수병을 대고 레버를 돌리면 와인이 콸콸 나온다. 연한 로제와인 같았는데 적당히 달고 산미 있는 맛에 드라이한 끝맛까지 약한 취기가 바로 올라오는 갓 만든 와인이었다. 이 날 빨개진 얼굴로 걸었던 거 나야 나 볼 빨간 지영이. 그늘이 없는 코스를 걸으면서 너무 더울 때 이 와인을 마시면 부스터 단 것처럼 걸을 수 있다. 그리고 이후로 본격적인 술례길이 시작되는데... To be continue.


참, 스페인은 어딜 가나 순례자 메뉴(메뉴델디아, 오늘의 메뉴)를 시키면 무조건 와인을 병째로 준다. 심지어 레드, 화이트 고를 수 있음. 그리고 남는 와인을 가져가도 된다. 이게 바로 와인이 싼 나라의 위엄. 정말 질 좋은 와인인데도 한 병에 10유로 넘는 걸 본 적이 없다. 이러니 누가 와인을 잔으로 마셔? 무조건 한 병이지!




*순례자 메뉴란

순례자들에게만 저렴한 가격에 제공되는 오늘의 메뉴로 빵, 전채요리, 메인요리, 디저트 그리고 와인 한 병(또는 음료로 대체 가능)을 평균 12~17유로 사이에 제공한다. 순례길이 지나는 대부분의 레스토랑에서 시행하고 있다. 크레덴시알(순례자 여권)이 있어야 저렴한 가격에 제공이 가능하고 해당 레스토랑의 세요(도장)도 받을 수 있다.




9유로의 샹그리아, 와인, 와인, 와인... 또 와인




이라체(Irache) 와인수도꼭지 구경하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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