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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른다고 달라질 리 있겠어요

낮은 데시벨로 살게요, 예전처럼요

by 비터스윗

뭘 달라고 해 본 적 있었나.

뭘 해달라고 한 적이 있었을까.

왜 없어, 없을 리가 있어? 엄마한테 아버지한테.

한 번도 없었다고? 남편에게도 애들한테도 이런저런 요구, 한 적 없다고?


난 누구에게 조른 적이 있었나


갑자기 어떤 장면, 사물, 질문이 불씨가 되어 갖가지 추억이 몽글몽글 떠오르고, 추억에 실려온 감정 타래들까지 생각을 어지럽힐 때가 있어요.

마치 핀볼게임의 공이 순식간에 튀어 나가면서 여기저기 때리고 다니듯이.

핀볼 게임기라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아주 소형 장난감이 있었어요. 핀볼 게임은 상자 안쪽에서 공을 쳐서 튕겨 올려 보내면 그 공이 다양한 장애물에 여기저기 부딪치면서 점수를 내는 게임이죠. 여하튼 이번엔 어떤 질문 때문이었어요. 혼자 카페에서 글을 쓰던 중 갑자기 떠오른 질문.


난 누구에게 조른 적이 있었나


그러니까 그냥 단순한 요청, 호소가 아니라, 누구에게 '끈덕지게' 무엇을 자꾸 요구한 적이 있었나. 이거 해달라 저거 사달라 드러눕고 울고 악쓰고 떼쓴 적이 있었나.

거의 없는 것 같더라고요, 아마도.

'거의 없다'가 '참'이 되려면 다음 세 가지 전제 중에 적어도 하나에 해당돼야 할 거예요.


1. 조르기 전에 다 들어주는 부모님이 계시다

2. 졸라 봤자 절대로 안 들어주는 부모님이 계시다

3. 원래 조르는 성격이 아니다


1번은 부자(아주 부자) 부모님이라는 전제. 전 아녜요. 주변에 딱 한 친구 봤어요, 그 정도는.

그 친구 부모님도 척척 다 들어주시진 않았어요. 철저히 보상을 하시는 분들이었어요.

첫째 딸이라 늘 새것을 쓰긴 했어요. 원한 걸 다 사주신건 아니지 만요.


2번과 3번이 적당히 섞인 것 같아요.

일단 졸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어요. (그나마 조금 졸라서 사주신 것 중에 하나는 기타가 있었네요)

졸라봤자 안될 거라고 예상했던 건 고2 때 방송반에 들어가려 했을 때예요.

교내 방송반 PD로 뽑혔었어요. 방송원고 작성하는 시험도 봤거든요. 며칠 후 선배언니가 교실로 찾아와 제가 PD로 뽑혔다고 했어요. 팝송도 워낙 좋아했고 무엇보다 점심시간에 직접 선곡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기뻤어요. 하지만 엄마는 반대하셨어요. 예상은 했었어요. 성적이 떨어진다는 이유였어요.

엄마의 시각에서 공부 말고 모든 학과 외 활동은 학업에 방해가 되는 것이었어요.


탐貪하는 게 적은, 탐貪해도 티가 안나는


대체로 조른 적이 많지가 않았어요. 욕심이 많지 않은 편, 말하자면 물욕이 적다고 해야 하나.

어릴 때도 갖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그런 게 많지가 않았어요. 성인 돼서도 패션에 관심은 많아도 남이 입는 거, 남이 들고 다니는 거를 탐낸 적이 별로 없고, 자려고 누웠는데 천정에 갖고 싶은 핸드백이 떠다니고 뭐 그런 적은 없었어요.

지나치게 욕심을 내지 않는다는 뜻이지 그렇다고 '안빈낙도' 까지는 아니고요.

결혼할 때까지는 부모님과 살았으니까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필요한 걸 사고 용돈도 하고 그랬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부족의 척도는 물론 다르겠지만요;;;;) 살았던 것이 욕심이 적어서 그랬지 않나 싶어요.


한편으로는 정말 원하는 것이 있는데도 상대방은 잘 모를 때도 있었어요. 이건 대단히 치명적인 약점이죠. 10의 강도로 말해도 그냥 6이나 7로 받아들이니까요.

일단 목소리 데시벨이 낮으니까 누가 더 크게 치고 나오면 더 이상 조를 의지가 없어진다고나 할까.

내면의 감정이 밖으로 표출될 때 그 강도가 다른 이들과 좀 다른가 봐요.

막상 나는 아주 강하게 어필하고 있는데, 상대방은 "어 그래? 알겠어. 고려해 볼게." 하며 가볍게 무시해 버렸는지도 모르겠어요.

글을 쓰다 떠오른 건데 그렇게 조르고 떼쓰는 걸 절대 하면 안 된다고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아서였을 수도 있어요. 물증은 없지만 그렇게 키워진 것 같아요.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닌데, 그런 성격으로 만들어진 건 아닐까요. 좀 억울하네요.


조른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하던 대로 해야지 뭐


소탐대실이다, 절대 탐하지 마라... 그런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욕심 많은, 조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많음에 틀림없어요. 평생 탐이 많고 욕구불만에, 아등바등 자기가 원하는 게 안되면 앓아누울 정도로 괴로워하는 이들도 많이 봤어요.

욕심의 대상이 의식주만은 아니어서, 배우자, 자식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잡도리를 하는 사람도 있고요.

욕심을 줄이고 자신을 다스려야 하겠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요.


얼마 전에 이제 좀 컸다고 딸이 이러네요.


엄만 하고 싶은걸 좀 하면서 살아야 돼. 너무 참았어.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살아.


그래? 그렇게 보였단 말이지? 그럼 나야말로 이제 좀 조르면서 살아볼까?

나 이거 좋아해, 나 이거하고 싶어, 탕수육을 안 사주면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 저 가방 안 사주면 주부파업이다, 뭐 이렇게라도.

생각만 해도 기분은 좋네요. 난 됐어, 배불러, 난 아무거나 괜찮아... 매번 이러기만 했으니 말이에요.


그런데 어디다, 누구에게 조르나요. 조르고 떼쓸 대상도 없고 그러기도 싫네요.

그냥 하던 대로, 해왔던 대로 하면서 살게요. 갑자기 안 하던 짓 하는 건 힘들어요.

그런대로 만족할 만한 삶이에요. 살아온 대로 그냥 낮은 데시벨로, 좋아하는 글 쓰고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서 사분사분 얘기하고 그러면서 살려고요.


그들은 작게 말해도 잘 들어주더라고요. 조르지 않아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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