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원봉사로 어떤 보상을 바라는 건 아니죠?

그렇다고 이타심만을 기대할 수 없는 까닭은

by 비터스윗

졸업한 지 한참을 지나 만난 초등학교 동창들과 봄과 늦가을, 일 년에 두 번 정기 모임을 갖고 있어요.

올해도 11월 초에 두 번째 동창회를 개최하는데 날짜를 정할 때부터 어려움을 겪더니 현재까지 참석률도 저조하고 여러 가지 삐걱거리는 모습이 보여요. 저를 포함하여 과거 동창회 운영진을 해봤던 친구들은 걱정이 태산이에요.

이번 운영진들이 많이 바쁘다고 하네요. 생각해 보면 무보수로 봉사하는 것인데 채근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원해서? 아니, 떠밀려서 억지로 하는 거야


거창한 모임은 아니지만 그래도 회칙도 있고 회장 이하 총무, 회계 등 몇 명의 운영진을 뽑아 꾸려나가고 있어요. 아무래도 스스로 하겠다고 나서는 친구들이 많지 않다 보니 친구들의 추천을 받아 선출되는 방식이죠.

현직에 있는 친구들도 있고 일찍 은퇴하고 개인적인 취미생활로 바쁜 친구들도 있고 전업주부들이야 늘 바쁘고. 어쨌든 자투리 시간을 따로 내어 동창들에게 봉사를 하고 있어요.

말하자면 자원(自願)이죠. 자원봉사. '어떤 일을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도움, 또는 그런 활동'.

영어로 volunteer라고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들은 비자발적(非自發的)으로 부여받았다고 생각할지 몰라요. 내가 한다고 했니, 너희들이 떠밀어서 하게 된 거지. 이런 거죠.

뭐 전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단 맡았으니 임기동안은 열심히 해주기를 바라는 것도 무리는 아닐 거예요.

그런데 올해는 상반기 봄 동창회 때부터 영 참석률도 저조하고 열기도 많이 식은 느낌이었어요. 원래 하반기 동창회에는 참여도가 높은데도 벌써 불참자들이 눈에 띄게 많더라고요.

운영진들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지 참석 독려도 안하고요.

ㅇㅇ이는 하루 종일 영업(?)을 한다고, ㅇㅇ이는 근무 중엔 휴대폰을 못 본다고, ㅇㅇ이는 하루 종일 운전하며 이동을 많이 해서 휴대폰 볼 시간이 없다더라 등등 하나같이 바쁘다는 말만 들려오네요.


운영진의 업무 태만(?)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경조사 때만큼은 공지가 잘 되어, 다들 잊지 않고 위로와 성의를 보내주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 커뮤니티 관리라던가 생일을 챙겨준다거나 소모임 공지 등 사실 일이 적은 게 아니다 보니 다들 걱정을 하는 단계까지 온 것이에요.

그렇다고 언제까지 그들의 이타심에만 기대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먹는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스스로 원해서 하는데 권위를 기대하다니


저는 가톨릭 신자예요. 일찍 세례를 받은 건 아니고 30대에 세례를 받고 30대 후반부터는 성당에서 봉사활동을 했었죠. 지금은 시간이 여의치 않아 적극적인 활동은 못하는 편이에요.

제가 사는 동네는 은퇴한 어르신분들이 많아요. 사실, 요즘은 어딜 가나 어르신들이 많긴 해요. 인구 감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갈수록 개인의 삶이 중요하다 보니 2030 세대들의 종교활동은 눈에 띄지 않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성당에서 봉사하시는 분들도 연세 드신 분들이 많아요. 여기서부터 딜레마가 시작됩니다.

그들 역시 자원봉사예요. 시간이 많아서든 없어도 쪼개서 하든 (아이러니하게 시간이 많아서 하신다는 분들은 없더라고요) 봉사라면 일반 신자들의 편의를 위해, 원활한 성당 운영을 위해 일하는 건데 그런 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어떤 권위를 지녔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간혹 계십니다.


어느 종교나 사실 마찬가지일 거예요. 어느 사회에나 있는 것처럼요.

이분들 역시 우리 동창회 운영진처럼 '내가 억지로 하는 거지, 누가 하고 싶을 까'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까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과감히 그만두셔야 할 것 같아요. 억지로 하는 것, 싫어도 하는 것이라면 보상을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요.


일반적으로 자원봉사는 재정적으로 기부를 하는 것과 달리 나의 재능을 기부하거나 나의 시간을 기부하는 것인데, 그것으로 어떤 보상을 기대한다면 이미 자원봉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벼운 칭찬이나 인정을 넘어서 권위, 영향력, 존경 등으로 기대한다면 특히나 위험하죠.

자원봉사는 대체로 나의 만족을 위해 하는 것 아닐까요. 만족도 없이 봉사를 한다면 그것은 일방적인 희생이고요.

아님 내가 도움을 받았던 대로 되갚는다는 생각으로 하는 것도 좋고요.

김장하 선생 말처럼 '갚아야 할 것이 있다면 이 사회에 갚아라'하신 것처럼 내가 이미 받았던 도움, 선한 영향력을 다음 세대, 다음 사람에게 나누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칭찬도 싫다, 욕 안 먹을 정도만 해야지'라는 생각, 혹은 '이 정도 하면 나를 좀 존경해 주겠지'라는 생각.

어쩌면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태도들, 나도 이미 드러냈을지 모르는 어쩔 수 없는 이기적인 태도들.

간밤에 고민을 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들었던 생각은 그래도 그들의 이타심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생각이에요.

이 역시 저의 이기적인 마음이니까요.


어차피 혼자는 힘든 세상. 누군가의 도움도 필요하고 선의도 필요한 세상.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봉사하는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그래도 조금만 더 힘을 내주길 바랍니다.

초심(初心) 기억한다면 더 좋겠지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