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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평탄하게 살고 싶어요

굴곡 없이 잔잔한 삶이 부럽다는

by 비터스윗

'평범함을 거부한다'. 이런 문구가 유행인 때가 있었어요.

대량생산 시대,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 같은 사람들, 몰개성, 대체가능한 개인들.

뭐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평범해선 안된다고 생각했죠. 공부도 더 잘해야 하고 돈도 더 벌어야 하고 특별한 기술이나 능력을 가진 이들은 그것으로 세상에 승부를 걸어봐야 하고.

평범한 삶은 사람들의 상식 선에서 뒤처지지 않는 정도의 적당한 삶, 달리 말하면 평균적인 삶이라고 봐도 무방할 거예요.


산이 높으면 골도 깊더라는


무난하게 사는 게 꿈이라는 사람들은 좀 무시하기도 했어요. 한 번 사는 인생, 욕심도 부려보고 도전도 해보고, 가끔 실패도 해보고 그래야지, 어떻게 적당히 벌고 적당히 놀고 적당히 애들 키우고 적당히 노후를 보내고 재미없어서 어떻게 산담. 이러면서요.


저는 굳이 말하자면 시험에 특화된(?) 사람이라 대학입시는 성공한 편이었어요. 결혼은 연애로 했으니 잘한 건지 아닌지, 그건 잘 모르겠어요.

남편의 첫 월급은 그 당시 대기업 보다 높았었고, 신혼 집도 비교적 넉넉하게 준비했었어요.

그리고 1남1녀를 낳았죠. 아이들은 학업 스트레스가 비교적 심하진 않았으리라 제 맘대로 생각해 보면서 한편으로는 공부가 아니라도 다른 분야에서 두각을 좀 나타내면 어떨까 하는 기대가 아주 없었다고 할 수는 없어요.

어쨌든 큰 애는 지금 평범한 삶을 살고 있고 둘째는 좀 독특한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있긴 하네요.


결혼생활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비교적 빨리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었지만 중반 이후 운 좋게 좋은 기회도 얻었던 반면 불운도 찾아오면서 점차 '우하향'(右下向)으로 그래프를 그렸어요.

아이들은 해외에서 공부하는 경험도 가져봤지만 그에 상응하는 만큼 귀국 후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그 후로도 부모의 삶의 궤적에 따라 그들의 삶도 함께 오르락내리락하게 됐어요.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합니다. 남보다 앞서 나가서 먼저 자리 잡고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결혼생활을 할 거라 자만하던 저. 현재는 다시 올라갈 수 있을지 염려하고 있습니다.


무난하고 평범한 것이 부러운 나이가 됐어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


이런 말들은 고난을 감수하더라도 성공으로 골인하라고 담금질하는 격언들이죠.

틀린 말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성공을 꼭 해야 하는지, 남보다 더 뛰어나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요.

지금도 인생역전을 꿈꾸며 대박을 노리는 이들이 많더라고요.

노력한 만큼 인생에 결실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과도한 투자나 성급한 선택 등은 결국 중년 이후 오히려 나의 삶에 독이 될 수도 있음을 간과하면 안 됩니다.


평온하고 평탄한 삶은 이미 훌륭한 삶입니다.

평범하게 학창 시절 보내고 평범하게 아이들 낳고 평범하게 노후를 보내는 친구들을 보니 이게 행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크게 굴곡 없이 잔잔하게 살아오는 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당신의 '화양연화'는 언제였나요.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행복한 시절 말이에요. 일반적으로 외모, 성과, 실력 등이 가장 최고였던 전성기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아직 오지 않은, 나 자신이 가장 만족하는 시절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흔히 말하는 '리즈 시절'은 다시 오지 않지만 화양연화는 과거의 아름다웠던 순간일 수도 있고, 지금일 수도, 미래일 수도 있답니다.


평탄함을 유지해 온 이들의 화양연화는 어쩌면 지금부터 일 수도 있어요. 앞으로도 그들은 쭉 잔잔할 테니까요.

저도 꿈은 꾸어보려고 합니다. 또다시 출렁거리는 일은 없겠죠. 아니 있어선 안 되겠죠. 더 욕심부리지 않고 지금에 만족하며, 심심하지만 아주 고요하게 살아보겠습니다.


무탈하게, 무심하게, 무념무상...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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