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피 차일드, 그리고 대물림
엄마는 대학을 안 나오신 게 평생의 한이었어요. 지방에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엄마. 당시로는 대학을 들어가는 것이 꼭 당연한 것은 아니었는데도 말이죠.
종종 일어났던 아빠와의 갈등도 엄마의 학벌이 아버지보다 못해서라고 단정하셨어요.
아버지가 그럴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아니라고, 분명 '나를 무시해서 그런 거'라고 하셨죠.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한다. 틀린 말은 아니죠. 학교는 공부를 하러 가는 곳이고 시험은 잘 봐야 되고 성적은 늘 올라야 한다. 그런 거래요.
성적에 대한 부담은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예요. 1학년 때 틀린 시험 문제가 아직도 또렷이 기억나거든요.
엄마는 공부를 아주 잘했다고는 하지 않으셨어요. 수학은 잘하셨다고 했어요.
하지만 엄마 밑으로 동생들이 대학 갈 기회를 얻었던 것에 비해 기회조차 없었던 것에 무척 낙담하신 채로 결혼을 하신 거였어요.
게다가 엄마는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자책감도 있었죠. 딸 만 셋을 두었고 제가 맏이예요.
엄마는 딸이 대학을, 이왕이면 좋은 대학을 가야 엄마의 자존심이 회복된다고 생각하셨어요. 기억엔 없지만(!) 철이 들 무렵부터 제가 '아들 필요 없어! 내가 아들 몫까지 다 할 거야!'라고 했다는데 남아선호 사상이 너무 싫어서 제가 '아들무용론'까지 펼쳤었나 봐요.
그렇게 소원이라는데, 엄마의 소원은 꼭 들어드려야 한다. 전 어떻게든 모범생이 돼야 했어요.
엄마의 소원은 이뤄졌어요.
만족스러웠던 엄마는 입학 후 1년이 되도록 동네 미용실, 옷가게, 금은방 등에 가실 때 저를 데리고 다니셨어요. '우리 큰 애가 이번에...' 이런 얘길 하고 싶으셨던 거죠.
부끄럽긴 해도 엄마가 좋아하시니 못 이기는 척 따라다녔어요.
문제는 여기서부터예요. 입학은 했으니 앞으로 진로를 고민해봐야 하는데 엄마는 저의 진로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으셨나 봐요. 엄마가 세워야 하는 계획은 물론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다음 까지는 계획에 없었던 거죠. 엄마의 꿈은 딸의 대학 입학, 여기서 끝이었어요.
창피하지만 저 역시 갈팡질팡 했어요.
어라... 대학만 잘 들어가면 된다 생각하고 그 후는 뭘 할지 생각이 아예 없었구나...
어쩌다 떠밀려(?) 대학원에 진학하고, 또 갈팡질팡 하다 결혼을 해버렸죠.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궁금해졌어요. 차마 여쭤보지 못하고 있지만요.
엄마, 엄마는 왜 엄마의 꿈을 스스로 이루려고 하지 않았던 거예요?
그냥 엄마가 늦게라도 대학교를 가셨으면 됐을 텐데.
형편이 어려웠던 것도 아니었잖아요.
실제로 뒤늦게 대학을 간 친구분들도 계셨어요. 간혹 어떤 친구는 대학교 졸업장을 샀(?)다면서 비난하기도 하셨어요. (엄마의 개인적인 주장입니다!) 친구들이 졸업한 대학교조차 폄하하시는 것 같았어요. 왜냐하면 엄마에겐 ㅇㅇ대학교를 나온 딸이 있으니까요.
이렇게 독자분들께 토로를 하고 있지만, 저도 그랬더라고요.
안 그랬어야 하는데 생각해 보니 똑같았더라고요. 꿈이 좀 다른 성격의 것이라는 것 말고는.
딸이 성적에 대한 과도한 압박감에서 벗어나길 바랐어요.
공부 잘하는 범생이도 좋지만 내가 못했던 걸 잘하는, 이를 테면 (여자 부반장 말고) 반장을 도맡아 하고, 달리기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발표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아이. 내가 못해본 걸스카웃도 꼭 시키고 싶었어요. 공부로 1등 하는 것보다 다양한 방면에 능력이 출중한, 멀티플레이어 같은 아이가 더 부러웠었나 봐요. (그렇다고 제가 학창 시절에 줄곧 1등을 한 건 아닙니다만)
하나 더. 발레를 배웠으면 했어요. 레오타드에 토슈즈를 신은 발레리나, 제 꿈이었죠.
마침 동네에서 요리강습을 받던 중에 강사님이 어릴 때부터 발레를 했고 전공도 하셨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분께 딸아이에게 발레를 시키고 싶다고 하니까 이러시더라고요.
"애가 키 커요?"
"아뇨. 좀 작은 편인데."
"너무 어릴 때 시작하면 키 안 커요. 저 보세요."
진짜 그분은 나보다도 작은 키였어요. 당시 아이 키가 작아서 고민이었던 까닭에, 또 프로의 '고견'은 철석같이 믿는 편인 나는 그 후로 발레는 꿈도 꾸지 않았어요.
어쨌든 아이는 어느 정도 제 욕심을 채워줬어요. 일단 저는 운동은 젬뱅인데, 어릴 때부터 달리기를 잘했어요. 아이 스스로 피아노, 바이올린, 미술 뭐든지 하고 싶다고 나서는 아이였어요.
훗날 미국에서 잠시 학교를 다니는 동안, 펜싱, 치어리딩까지 딸이 뭐든 하고 싶다고 하면 형편 닿는 대로 뒷바라지해 줬어요.
오로지 공부 말고는 승부를 걸만한(?) 분야가 없던 아들은 자신이 원한 대로 국내 대학에 들어갔고 딸은 외국에서 연극연출을 전공했어요.
어쩌면 딸은 제 꿈을 어느 정도 이뤄준 거예요. 대한민국의 대학 서열과 상관없는, 그래서 현실적으로 보면 한국에서 인정해 주는 커리어로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그간의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어요.
흔히 한 우물만 파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세 사람은 그랬어요. 엄마, 아빠, 거기에 오빠까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러지 않았던 딸이 가장 경쟁력 있고, 위기대처 능력도 제일 뛰어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 생각엔 그래요.
아차, 지금 이게 주제가 아닌데...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트로피 차일드. 제가 그거, 트로피 차일드였나 봐요. 동생들도 공부는 잘했지만, 어쨌든 맏딸인 제게 엄마의 기대가 가장 컸었고 그 트로피도 가장 빛나게 보였을 거예요.
부모 자신의 충족되지 않은 욕망을 자녀에게 투사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아이는 자신의 꿈이 아닌 부모의 꿈을 이루기 위해 길러지는 것이죠. 저는 끊임없이 성적에 대한 압박감을 느꼈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그렇게 엄마의 꿈이 투사되어 자란 내가, '자, 이번엔 내 차례다' 하면서 제 딸에게도 그런 투사를 대물림했나 봐요.
'네가 원했잖아'라고 말하면서도 잠재적으로는 내가 원하는 것들을 이루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최근에 어떤 어머니들은 회사원인 자녀가 연차를 신청할 때 직접 연락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제 주변에도 자녀의 직장생활을 죄다 꿰고 있는 분들이 있어요. 이 사람 때문에 괴롭다더라, 상사 때문에 승진에 지장이 있다더라... 이러시더라는.
이게 관심일까요. 이젠 그 트로피를 장식장에서 꺼내 안 보이는 곳에 보관만 하면 되지 않을까요.
아이의 미래를 위한 조언을 해줄 수는 있겠죠. 그리고 아이가 필요로 할 때 아주 최소한의 지원은 해줄 수도 있고요.
하지만 나의 나침반으로 방향을 맞추고 나의 속도계로 속도를 맞추고 나의 내비게이션으로 길을 알려주는, 그런 일은 안 하려고요.
내 꿈은 내가 이루기 위해- 아직 늦지 않았는지 모르지만-노력해 볼게요.
나이가 들면서 나의 한계가 너무도 뚜렷해져서 자괴감을 매일 느끼며 살고 있긴 하지만, 그것 또한 받아들여야 할 거예요.
넘치도록 채우는 것보다 비우고 편안해지는 쪽을 택할게요, 현명하게.
성인 발레를 가르치는 곳이 있더라고요. 이젠 키 안 클까 걱정할 나이도 아니니, 한 번 도전해 볼까요.
뭐 그게 안되면 못 다 이룬 다른 꿈을 찾아볼게요.
하다 그만둬도 괜찮을 거예요. 1등 해서 뭐 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