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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What is 인민재판?

by 만숑의 직장생활

어느 날, 세 부서의 책임자들이 한 회의실에 모였다. 어떤 사업의 가능성을 검토하는 안건이 주제였다. 구성은 조금 묘했다. 두 명은 임원급이었고, 한 명은 팀장급이었다. 아마도 그 팀장의 상사는, 이 회의가 순탄치 않을 걸 알아채고 일정을 이유로 빠진 듯했다.


회의실 안의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기울어 있었다. 회의라는 무대에선 늘 낮은 직급의 사람이 더 오래 설명하고, 더 많이 방어하게 되어 있으니까.


주제는 단순했다.

“이 사업을 계속할지 말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아무도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수익성은 흐릿했고, 리스크는 선명했다. 특별히 욕심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선뜻 접기엔 이상하게 불편하고 찝찝한 전형적인 ‘판단 보류형’ 안건이었다.


대화는 점점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방향으로 흘렀다. A팀의 상무가 말했다.


“사업팀에서 시장성과 리스크 판단이 먼저 있어야 기반 위에서 저희가 의사결정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습니다.”


사업팀의 팀장은 조심스럽게 받아쳤다.


“네, 내부적으로는 계속 검토하고 있고요... 근데 고려할 요소가 많아서, 단정짓긴 좀...”


그때, B팀 상무가 묻듯이 끼어들었다.


“그런데, 난 정확히 사업팀에서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so what exactly are you suggesting? I mean, do you have a position or not?”


B팀 박 상무는 교포 출신이라 같은 문장을 한국어로 한 번, 영어로 한 번 꼭 두 번씩 말하는 버릇이 있다. 아마도 한국어만으로는 자신의 뜻이 완전히 전달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모양이었다. 이제는 다들 익숙해져서, 말이 두 번 나와도 굳이 반응하지 않고 흘려듣는다.


말이 오갈수록, 자연스럽게 A팀과 B팀이 사업팀을 몰아세우는 분위기가 되었다. 형식은 회의였지만, 실제로는 사업팀만 계속 얻어맞는 일방적인 스파링 같았다. 이 팀장은 점점 목소리가 작아졌고,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가며 “애매합니다...”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그리고 결국, 참다 못한 듯 이 팀장이 입을 열었다. 혼잣말처럼 조용했지만, 회의실에 있던 모두가 들을 수 있을 만큼의 목소리였다.


“이거, 참 이렇게 몰아 붙이시면... 마치 저 인민재판 받는 기분인데요.”


말이 끝나자, 회의실은 순간 조용해졌다. 의외의 공격적인 단어였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정적을 깨는 박 상무의 질문이 나왔다.


“인민재판? 뭐에요, 그게? What is 인민재판?”


그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고 주위를 둘러보며 답을 찾기 시작했다. 그게 모두를 더 난처하게 했다. 누가 설명해야 하지. 정확히 뭘 어떻게 번역해야 하지. 아무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다 옆에 있던 한 대리가 핸드폰으로 막 단어의 영어 표현을 찾아보더니 망설이다가 말했다.


“Um... it's like... people’s court.. mob trial... when someone is judged emotionally... no official process...”


말끝은 점점 흐려졌고, 영어는 불안했지만 그 불안함이 오히려 분위기를 더 뻘쭘하게 만들었다.


“Mob trial?” (의역: 폭도 재판)


박 상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되묻더니, 곧잘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같은 질문을 다시 던지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의미에요? Mob trial? 왜 갑자기? I don't get it"


그걸 한참 듣고 있던 김 상무가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친다.


Public attack! Personally attacking you!”


어디선가 풋하고 웃음이 터졌고, 회의실엔 묘하게 풀린 공기가 흘렀다.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회의는 곧 끝났다. 그 안건도 결국 결론 없이 사라졌다. 다만, 그날 회의실엔 ‘인민재판’의 영어 번역을 둘러싼 정적과 실소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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