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컨설팅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 일이다.
내가 투입됐을 때는, 프로젝트가 정식으로 출범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 약 한 달 정도 남아 있었던 터라, 전체 프로젝트 멤버가 나를 포함해 김상무님, 김이사님 총 3명밖에 없었다. 그래서 약 한 달의 기간 동안 셋이서 오순도순(?) 넉넉하게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두 명의 시니어와 한 명의 주니어가 한 팀이다 보니,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았던, 상무님, 이사님으로부터 많은 관심과 트레이닝을 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상무님께서는 이렇게 여유가 있을 때, 실전에서 연습을 많이 해봐야 한다며, 작은 과제도 하나 맡겨주셨다. 나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나름 열심히 준비했다.
내 바로 위 직급인 김이사님께 가이드를 받아가며 과제를 진행했었는데, 어느 날 김상무님이 나를 따로 부르시더니, 요즘 어떤 식으로 일하고 있는지 물어보시는 거였다. 당연히, 김이사님께 확인받은대로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 있게 김상무님께도 설명드렸는데, 김상무님께서 얼굴을 찡그리시면서 반문하시는 게 아닌가.
"김선생,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저기 저 부분 다시 설명해 볼래?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어... 그건... 사실 김이사님께도 오케이 하신 부분이긴 한데..."
"아니 그거는 알았는데, 저렇게 하면 안 될 거 같은데? 김선생이 충분히 생각해 본거 맞아? 자, 봐라. 내가 봤을 때 뭐가 문제냐면..."
그렇게 김상무님 설교를 1시간 가까이 들었다. 나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탓하며, 김상무님이 말씀하신 방향으로 지금까지 작성했던 내용을 모두 수정했다. 내가 생각해도, 김상무님이 말씀하신 방향이 이전보다는 좀 더 괜찮은 것 같았다.
다음 날, 여느 때처럼, 아침에 김이사님께 지금까지 작성했던 내용 (+김상무님 피드백 반영 내용)을 점검 차원에서 공유드렸다.
"...김선생, 내용이 엊그제 본 내용이랑 완전히 달라졌네? 왜 상의도 없이 바꾼 거지?"
"아, 사실 어제 김상무님께서 한 번 봐주셨는데, 이런 식으로 수정해야 된다고 말씀 주셔서, 김상무님 피드백받고 고친 겁니다"
"아니, 김선생이 봤을 때, 저게 맞다고 생각해? 생각을 좀 해봐... 너 나한테 저거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겠어?
"네?... 아니 그건, 상무님이 일단 수정하라고 하셔서..."
"넌 수정하라고 하면 아무 생각 없이 수정하니? 이게 맞는지 따져봐야 할 거 아냐... 다시 한번 검토해 보고, 내일 다시 얘기하자"
상무님은 이사님 방식이 틀렸다고 하고, 이사님은 상무님 방식이 틀렸다고 한다. 나는 상무님 말씀에 따라 고쳤다가, 이사님 말씀에 따라 고쳤다가를 반복했는데, 점점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나의 이런 모습이 생각도 없고 일 머리도 없는 이미지로 굳어져 갈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굳이 나의 변명을 하자면, 상무님이나 이사님도 이런 상황을 뻔히 알 텐데, 왜 두 분이 직접 얘기해보지는 않느냐는 거였다. 아니, 우리 셋이서 매일 점심도 같이 먹는데, 왜 이런 얘기는 쏙 빼놓냐고.
결국, 이런 식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로 마음먹었다. 상무님과 이사님을 한 자리에 불러, 내가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고 못하는 상황과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일을 진행할 지에 대해 한 자리에서 두 분께 문의하는 시간을 갖으려 했다. 셋이 한 자리에서 같이 얘기해 보면, 두 분의 의견차도 자연스레 좁혀지지 않을까.
우리 셋만의 미팅이 시작되었고, 나는 계획했던 대로, 현재 나의 상황과 어려움을 설명드렸다. 두 분은 아무 말 없이 나의 얘기를 경청하셨고, 나의 얘기가 끝난 이후에도 잠시 침묵을 지키셨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김상무님이 먼저 말씀을 꺼내셨다.
"김선생, 이 과제 담당자가 누구야, 김선생이잖아, 그렇지? 나나 김이사님은 시니어로서, 김선생에게 조언을 줄 수도 있는 상황이고. 그러면 담당자로서, 두 사람의 의견을 종합해서, 어느 쪽이 더 옳은 선택인지 결정하는 거는 김선생이 해야지.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해서 다른 한쪽을 설득하는 것도 김선생의 몫이고. 그걸 어떻게 해야 되냐고 우리한테 물어보는 건 너무 무책임한 거 같은데? 이 문제는 좀 더 고민해 보고, 다시 얘기해 줘, 어떻게 풀어갈 건지. 그럼 난 먼저 일어날게"
김상무님이 먼저 일어나시고, 뒤이어 김이사님이 씩 웃으시더니 내 어깨를 툭 치시며 따라 나가신다.
"힘들지? 잘 고민해 봐"
상무님의 말씀이 다 맞는 말들이라 딱히 반박을 할 수는 없었지만, 내가 못나서 그랬을까. 뭔가 불합리한 느낌이 스멀스멀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아. 맞아요, 다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