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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을 이긴 자리에서 피어난 배려

by 해피엔딩


타인의 삶을 향한 호기심은 인간의 본능이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서랍, 누군가의 노트북, 누군가의 바탕화면 앞에 서게 된다. 그 안에는 그 사람의 시간과 열정, 꿈과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닫힌 문이며, 그 문은 오직 주인의 손에 의해 열려야 한다.


나는 그 문 앞에서 잠시 흔들렸다. 클릭 한 번이면 알 수 있는 세계가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곧 생각이 이어졌다. 만약 누군가 내 폴더를 허락 없이 열어본다면 나는 어떤 기분일까? 답은 자명했다. 호기심이 잠시의 즐거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신뢰를 깨뜨리는 순간 그것은 후회로 남는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니다. 이해는 상대가 스스로 건네줄 때 비로소 가능하다. 기다림 속에서 얻는 앎은 관계를 살리고, 몰래 캐낸 앎은 관계를 해친다. 결국 나는 호기심을 접기로 했다.


그 대신 다른 선택을 했다. USB 포트가 부족해 불편할 그를 떠올리며, 서랍 속 새 USB 허브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호기심을 채우는 대신, 작은 도움을 건넨 것이다. 그러자 마음속에 의외의 충만함이 밀려왔다. 유혹을 이겨낸 자리에는 공허함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기쁨이 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칸트는 말한다. “타인을 결코 수단으로 대하지 말라.” 오늘의 선택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타인을 존중하는 윤리의 작은 실천이었다. 닫힌 폴더를 열지 않고, 대신 허브 하나를 올려놓은 일. 그것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신뢰를 지켜낸 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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