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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나는 나를 인정하기 시작했

by 해피엔딩

서울로 향하던 아내의 그 겨울의 연수,
혼자 보내기 뭔가 마음에 걸렸던 나는 출장을 핑계로 아내를 따라 나섰다.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내고, 같은 지역에서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꽤 따뜻했다.

그런데 그날, 아내 학교의 한 선생님이 던진 한마디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어이구, 남편이 여기까지 데려다줬어요?”
말은 가볍게 흘러갔고, 주변 사람들은 웃었지만… 아내는 웃지 못했다.
그 말은 아내의 마음 어딘가를 콕 찔렀다. 그리고 그 작은 찔림은 긴 그림자가 되어 아내의 마음 안에 남았다.


아내는 그때 그 말이 ‘꼽 주는 말’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선생님은 아마 그 말을 한 기억조차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결국 관계가 전부였던 거다.

비슷한 농담이라도, 관계가 다르면 다르게 들린다.

며칠 전, 어떤 선생님이 “각시 도망갈까 봐 데리러 왔나 봐요”라고 농담을 했을 때는
아내도 웃을 수 있었다.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그냥 정겨웠다.
왜일까? 그 선생님과는 마음의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중요한 건 상대의 의도가 아니었다.
그 말이 아내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가 더 본질적인 문제였다.
그 말이 아내를 웃게 했는지, 상처를 줬는지, 나의 ‘무언가’를 건드렸는지.

그리고 그 ‘무언가’는 다름 아닌, 아내의 콤플렉스였다.


누군가의 보호 아래에 있다는 시선,
남편이 데려다줬다는 말에 스며든 ‘의존적인 존재’로 보이고 싶지 않았던 감정들.

사실 그건 단순한 열등감이 아니었다.
내가 나를 아직 온전히 어른으로 인정하지 못한 채, 타인의 시선을 통해 나를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그 선생님의 말을 듣고 기분이 상했지만,
정작 아내가 아내 자신보다 더 약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무시를 하고 있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인사를 받아도 눈을 안 마주치고,
“아이고, 저래서 그만두지…” 같은 말을 습관처럼 내뱉고,
다른 이들의 삶을 평가하며 스스로 우위에 있는 듯한 착각을 했던 아내.

그런 스스로를 마주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인정했다.

"나는 사람을 무시했다."

그 순간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다.


“인정”이라는 단어는 참 강력하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내가 어떤 말을 했고 어떤 생각을 품었는지,
그걸 나 자신에게 숨기지 않고 말하는 것.


마치 아이에게
“니가 한 걸 직접 말해봐. 그게 제일 중요한 거야.”
라고 이야기하는 교사의 목소리가, 내 안에서 나에게 들렸다.


“너, 무시했잖아.”
“너, 부러워했잖아.”
“너, 무서웠잖아.”


그걸 말한 후에야, 아내는 그 다음 질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비폭력 대화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걸 ‘대화 기술’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이건 자기 수양이고, 내면과의 깊은 만남이다.
타인을 분석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작업이다.

나는 사람들을 판단하면서 살아왔고,
결국 그 판단의 화살이 다시 나를 겨누고 있었다.
강하게 보이려 애썼던 나,
남을 돕고 싶은 척 하며 사실은 위에서 내려다보던 나,
그 모든 무게를 내가 감당하고 있었던 거다.

그럼에도 오늘, 나는 한 번 일어났다.
비록 그 파도는 크고 거셌지만, 나는 서 보았다.
넘어졌어도 괜찮다.
다음 번에는 조금 더 오래 서 있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으니까.


이제 아내는 말할 수 있다.
"나는 그 순간, 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게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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