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을 주고 싶지만, 정작 상대가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악의는 아니지만 선의조차 아닌 것,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인가.
사회복지를 공부하면서 가장 난감한 순간 중 하나는 ‘도움을 거부하는 사람’을 만날 때다.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기 위해 존재하지만, 정작 그들이 원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이때 사회복지사는 개인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윤리적 원칙과,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겪는 사례 중 하나가 대중교통에서 자리 양보를 할 때다. 버스를 타다 보면 어르신들이 많이 이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자연스럽게 자리를 양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때 어르신들의 반응은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고맙다며 감사 인사를 하는 경우다. 이 경우에는 양보한 사람도, 양보를 받은 사람도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남기게 된다.
두 번째는 오히려 젊은 사람에게 앉으라고 권하는 경우다. “괜찮다”며 거절하거나, “너도 힘들 텐데 앉아 있어라”라고 말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는 본인이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젊은이들이 더 힘들 수 있다는 배려에서 나오는 반응일 수 있다.
세 번째는 화를 내거나,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경우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늙었다고 무시하느냐”라며 불쾌해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아무 말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반응을 경험하면 ‘과연 내가 한 행동이 옳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도움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단순하지 않다. 그들은 정말로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걸까, 아니면 도움을 받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걸까? 몇 가지 이론적 접근을 통해 이를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자기 결정권(Self-Determination)의 문제다. 사회복지 실천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개인이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이 ‘도움을 받을 권리’뿐만 아니라 ‘도움을 거부할 권리’까지 포함한다는 점에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복지 서비스 제공자는 거리 노숙인을 위해 쉼터를 마련하지만, 일부 노숙인은 그곳을 이용하지 않으려 한다. 이를 강제로 이끌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하는가?
둘째, 낙인(Stigma)과 불신이다. 사회적 낙인은 사람들로 하여금 도움을 거부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 이는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나는 아픈 사람이 아니다”라는 자기 방어적 태도에서 비롯될 수 있다. 또한, 복지제도에 대한 불신이 깊은 경우, 도움을 받으면 오히려 더 큰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거부하는 경우도 많다.
셋째,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다. 반복적인 실패와 좌절을 겪은 사람들은 아무리 도움을 받아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빈곤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는 건 없다”라며 복지 서비스를 거부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경우, 단순한 설득이 아니라 장기적인 신뢰 형성과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도움을 거부하는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도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흔히 도움을 받지 않는 사람을 무책임하거나 게으른 존재로 낙인찍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그들이 도움을 거부하는 이유는 개인의 성향보다는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복지 시스템이 충분히 신뢰를 얻지 못하는 상황에서, 도움을 제공하는 행위는 단순한 선의로 해결될 수 없다. 예를 들어, 기초생활수급자의 선정 과정에서 개인의 재산을 철저히 조사하고, 조금이라도 기준을 초과하면 혜택이 박탈되는 구조는 수급자들에게 “도움을 받으면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불안감을 심어준다. 이러한 현실에서 단순히 “도와주겠다”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부담이 될 뿐이다.
또한, 정신건강 문제나 중독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강제로 치료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논쟁도 있다. 강제 입원이나 보호 조치는 개인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지만, 때로는 그들이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상황에서 필요한 개입이 될 수도 있다. 결국, 사회복지 실천은 도움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도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결국, 사회복지사는 ‘돕는다는 것’이 단순히 물리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도움을 받을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신뢰를 쌓고, 그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임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정말 도움을 주고 있는 걸까, 아니면 스스로를 위한 만족을 위해 돕고 있다고 착각하는 걸까? 이 질문을 계속해서 던질 때, 비로소 의미 있는 도움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