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순적인 조언 덕분에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아이가 프랑스어와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아이로 자라길 바랐다. 아이가 8개월이었을 때만 해도 내가 프랑스어를 배울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유치원에 가고 학교에 다니게 되면, 나도 어느 정도 프랑스어를 알아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은 필요 없다'는 이유로 프랑스어 공부는 계속 미뤄뒀다.
그날은 내 유일한 한국 친구이자 국제 육아를 실천하는 친구와 함께 영사관에 가는 길이었다. 차 안에서 내가 털어놨다.
"프랑스어를 배워야 하는데 시작이 안 되네."
그러자 친구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당황했다. 친구의 말은 마치 내 한국어가 부족하다는 듯했다. 한국어로 대화하고 있는 나에게 "모국어부터 배우라"고 말하는 그 모순. 내가 외국어를 배우기도 전에 모국어부터 익혀야 한다는 친구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사실 그 친구는 늘 나의 단점을 정확히 지적하곤 했다. 문제는 그 지적이 부드럽지 않고 때로는 날 서 있었던 것이다. 그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웃으며 넘겼다. 속에서 뭐라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지만, 입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웃음으로 무마하려 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그 순간이 떠오른다. 내가 왜 아무 말도 못 했을까?
"너나 잘해!"
웃으며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그때는 그러지 못한 게 자꾸만 아쉽다.
돌아보면, 그때 받은 그 말이 내가 글을 쓰기로 결심한 계기였는지도 모른다. 나의 생각을 더 잘 표현하고 싶어서, 내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리길 바라는 마음에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었다.
결국, 그날 내게 했던 친구의 말은 지금의 나를 만든 한 마디였다.
마음에 응어리로 남았지만, 그 모순적인 조언 덕분에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