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만 있어야 하는 사람들
제로(0)이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중국정부는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숫자를 0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공기로도 전파되는 바이러스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 그게 궁금했는데, 사람들을 집안에 넣어놓고 집밖으로 개미 한 마리 못 나오게 했다. 그 당시 감염자는 팡창(方舱)이라는 시설로 강제 이송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아픈 것보다 이곳으로 끌려가는 게 더 무서웠다.
체육관의 간의 침대에서 말 그대로 음성이 나올 때까지 갇혀 있어야 한다. 가장 큰 이슈는 부모와 아기를 따로 떼어 놓는다는 것이었다. 아기는 양성, 부모는 음성이면 아기만 팡창으로 이송되었다. 100명이 넘는 아기들이 10명도 안 되는 간호사들이 돌보고 있는 사진이 인터넷에 나돌았다. 혹시라도 우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누가 우리를 도와줄 수 있을까? 영사관?
내 딸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이 오기 시작했다. 무조건 안 걸려야 한다.
2022년 3월부터 봉쇄에 들어간 아파트들도 있었다. 단지 한 명의 양성자가 나왔다는 이유로. 획일적인 정책이 아니라 누구는 하고 누구는 안 하고, 지역 혹은 단지에 따라서 실행되는 정책이 달랐다.
외국에서 코로나 확산으로 봉쇄를 할 때 중국은 평화로웠다. 그 평화로웠던 2년간의 시간이 갑자기 상하이 봉쇄라는 강경책으로 바뀌고 나서 일상이 180도 바뀌기 시작되었다.
4월 1일부터 2주간 봉쇄를 한다고 했다. 나는 정말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설마 사람들을 몇 달간 집에 가둬두겠어?!!!’
그 당시 치치는 5개월 아기였다. 이유식을 앞두고 봉쇄가 시작되었다. 처음엔 무슨 모험을 떠나는 것 마냥 신이 났다.
남편이 회사를 안 가고 육아를 도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겼기 때문일까?
약속한 2주의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봉쇄를 했는데도 양성자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기저귀와 분유를 챙겨두지 못했다. 아니 챙겨두지 않았다. 2주간의 모험이 끝나고 주문하려고 했었다.
기저귀를 구할 수 없다면 내 티셔츠로 기저귀를 만들 생각이었다. 그다음 난제는 분유. 5개월 아기는 분유나 모유가 주식이었기 때문에 이유식으로 대체할 수 없었다.
-저번달에 단유 했는데. 단유하고 다시 젖을 물리면 젖이 나올까? 그다음에 다시 단유가 될까? 과연 치치가 젖을 다시 물것인가?
뭐 하나 확신할 수 없었다. 아직 남아 있는 분유 한 통을 다 먹이기 전까지 방법을 찾아야 했다.
초기 봉쇄 기간에는 상하이로 물건이 들어올 수 없었다. 물류가 묶인 것이다. 그야말로 고립. 분유, 기저귀를 살 수 있는 그룹이란 그룹엔 다 들어갔다. 매일 아침 눈뜨자마자 하는 일이 그룹 소식 확인하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오늘은 풀어진 물량이 있는지. 가뭄에 콩 나듯 조금씩 물류가 풀리긴 했지만 아주 소량이었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했다.
한국 엄마들은 띠별로 그룹을 만들어서 소통하고 있었는데 나는 소띠 맘 멤버였다. 새로운 소식이 전해지면 소띠만방에도 공유했다.
아침에 들은 내일 아침 9시에 압 * 밀분유가 풀린다는 소식을 전했다. 어떤 엄마가 나에게 톡을 보내왔다. 압* 밀 분유 미니 프로그램 상용 법을 물어왔다.(중국은 위챗 앱에서도 각 브랜드마다 미니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위챗 안에서 물건을 바로 구매할 수 있다. )
두둥! 8시 58분. 이게 뭐라고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이미 내 광클릭이 먹히지 않아서 구매를 몇 번 실패했었기 때문에 더 떨렸다.
진짜 59분에서 00으로 변하는 순간 구매 버튼을 눌렀다. 6통 구매 성공!!!!!!
안도의 미소가 절로 나왔다. 아기 배를 굶기지 않겠구나. 이제 걱정 없겠어!!
조금 뒤 그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혹시 구매 성공하셨어요?
-네. 저는 구매했는데, 그쪽은요?
-저는 실패…..
순간 나는 갈등했다. 분유를 한 통이라도 줘야 할까? 아니면 혹시 모를 장기 봉쇄에 대비해서 그냥 쟁여두어야 할까?
아. 너무 어렵다. 맘 같아선 두통이라도 주고 싶었다.
’ 정작 나중에 치치가 먹을 분유가 모자란다면?‘ 2초 되는 시간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리고 그 엄마는 한국촌에 살고 있어서 우리 집과 거리도 멀었다. 현실적인 이유로 분유는 공유되지 못하였다.
이게 진짜 나의 모습이겠지? 나도 어쩔 수 없구나. 내가 먼저, 내 아이가 먼저구나. 분유 구매 성공의 기쁨과 씁쓸함이 밀려왔다.
나를 시험에 들게 한 상하이 봉쇄가 미웠다..
기저귀, 분유를 구하기 위해서 사방팔방으로 고생하는 엄마들이 대단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치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 엄마는 새벽 5시 반에 일어나서 도시락 4개를 싸고 생계를 위해서 일을 했다. 엄마의 책임을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엄마가 생각이 났다. 임신했을 때 엄마의 사랑과 희생은 높게만 보였다. 과연 내가 우리 엄마처럼 자식을 위한 무한한 사랑과 노력을 할 수 있을까?
봉쇄를 겪으면서 나 역시 우리 엄마처럼 나의 아이에게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은 자신이 생겼다.
높게만 보이던 엄마의 사랑을 이해하는 마음이 조금 생겨난 것 같아서 기뻤다.
이렇게 나는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