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이 출산우울증인가요?
출산을 상하이에서 혼자 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여서 엄마가 상하이로 올 수 없었다. 출산 후 내가 끓인 미역국으로 산후조리를 집에서 했지만 엄마가 되는 것이 실감은 나지 않았다.
나는 마흔에 출산을 한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잠들어 있는 아기를 보면서 나의 미래를 생각했다.
‘다시 인테리어 디자인 일을 할 수 있을까? 부모님의 도움 없이 늘 마감에 쫓기고 야근 다반사의 삶을 이 아기와 함께 할 수 있을까?
아이(중국에선 시터님을 아이[阿姨]라고 부른다.)를 고용하면 물론 출근은 할 수 있다.
8시가 다 되어서 집에 오는 엄마. 늦어도 9시에는 자야 하는 아기.
바쁜 엄마는 아기를 볼 시간이 많지가 않다. 그리고 중국 아이 손에서 커야 하는 상황이 탐탁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아이를 고용했다. 디자이너 워킹맘으로 살아갈 자신은 없었지만 도전해야만 했다. 아기가 5개월일 때 찾아온 상하이 봉쇄. 점점 안 좋아지는 상하이 상황. 그리고 회사의 해고 통지.
반은 등 떠밀려 시작된 나의 독립. 내 이름으로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생각은 예전부터 있었다.
이번이 기회다. 도전해 보자.
마흔의 출산은 실패하면 안 되다는 압박으로 다가왔다. 생각만큼 쉽지 않은 나의 브랜드 만들기. 집에서 디자인하고 집에서 혼자 고민하고. 나는 점점 고립되어 갔다.
아마도 그때 산후 우울증이 왔던 것 같다. 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받지 않아서 병명은 없었으나, 나는 알고 있었다. 마음도 몸도 지쳐있었다는 것을.
치료도 상담도 없이 혼자서 감정들을 쌓아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멈추지 않는 눈물.
유튜브에서 누구의 출산 이야기를 들어도 주르륵
육아 서적을 읽어도 주르륵
친구의 유학 얘기를 들어도 주르륵
자전거로 아이를 등원시키고 집에 오는 길에서 주르륵
인스타그램에서 본 글을 보고 주르륵
몸이 아파서 찾아간 병원에서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선생님의 질문에도 눈물이 주르륵.
눈물 수도꼭지가 고장이 났다. 눈물을 멈추게 하려고 시작한 글쓰기. 쓰면 쓸수록 눈물이 더 났다.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니 그때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가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필라테스. 주 2회를 꾸준히 1년을 했다. 몸이 좋아지면 마음도 좋아진다고 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주르륵.
작은 일에도 요동치는 마음. 생각들. 감정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
외국인으로 상하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일까?
왜 내 브랜드는 인기가 없지? 중국에서 판매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인스타그램을 시작해야 하는데, 뭐부터 시작해야 하지?
답을 찾지 못하는 질문들에 나도 지쳐가고 자신감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포기하지 않고 원인을 찾고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것이다. 인정하긴 싫지만 나는 지금 경력단절 여성이다. 이 타이틀을 벗어내기 위해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할 것이다. 글쓰기, 달리기 그리고 방구석 디자인.
꾸준히 하다 보면 다시 길이 보이고 이 길고 긴 터널에 한줄기 빛이 보이길 기대해 본다.